▲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강리 전국대학원생노조 수석부지부장.
이슬기
내가 강리씨를 처음 본 것은 지난 2월 9일, 서울 안국역 동덕빌딩 앞에서 열린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집회에서다. 연대 발언에 나선 그는 스스로를 "단 한 번도 대학 본부를 이겨본 적 없는 졸업생"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17학번이다. 여성학을 전공할 생각으로 동덕여대에 입학했는데, 입학 후에야 여성학 전공이 폐지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복수전공, 부전공으로만 진입이 가능하던 동덕여대 여성학 전공은 2015년 폐지됐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한복판에 대학생이 된 그는 2019년 학내 여성학 동아리 WTF(What the Feminism)의 대표를 지냈다. 같은 해 학내 학생자치기구인 성인권위원회 설립 준비서부터 2022년 해단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저는 동덕여대 안에서 '학생 사회를 꾸리는 일원'으로 생각을 하며 학교를 다녔고, 일종의 '실패를 했다'고 생각을 해요. 사실 이번에도 남녀 공학 전환 얘기가 나온 게 친자본적이고 반여성적인 어떠한 일관된 기조 안에 있는데요. 그때 '잘 싸우지 못했다', '그때 계속 싸울 사람들을 내가 만들어가지 못했다'는 생각을 조금 해요.
학생들이 비리 사학 재단에 문제 제기하거나, '학생 참여를 보장하라'며 점거 농성을 하는 등의 이벤트가 늘 있었어요. 이번에도 반복되면 그건 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 졸업생연대 활동가로서 뭔가를 많이 했다기보다는 조력자의 역할로서 옆에 있습니다."
입학 이래로 겪은 학교 본부 측의 '친자본적이고 반여성적인 기조'를 그는 쭉 설명했다. 그가 2학년이던 2018년 3월, 문예창작학과 하일지 교수의 성폭력 사건이 폭로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학교에 무단 침입한 20대 남성이 자신의 나체 사진을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린 이른바 '알몸남 사건'이 터졌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불통의 대학 본부에 대항해 지난 11년간 총 9번의 학생총회를 성사 시켰다. 그가 말하는 '부끄러움이자 자랑스러움'의 이유다.
- 학교 본부 측은 여전히 '공학 전환' 논의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외부 컨설팅 업체가 참여한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대학 본부가 이렇게 나올 줄을 몰랐던 것이 아니에요. 아마 지금 당장 철회 입장을 내더라도, 2~3년 후에는 다시 할 거예요. 그래서 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대학 거버넌스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학 전환 반대뿐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어떻게 관여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논의들을 이제 막 학생 사회에서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이 윤석열 탄핵 광장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제가 가장 감사하게 느끼는 것은 전장연과 거통고(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와 세종호텔인데요. 지난해 12월 25일 전장연에서 탈시설 장애인 이야기 마당 행사를 할 때 참여한 학생들이 처음으로 '저는 동덕여대 재학생입니다'라고 밝혔어요. 그때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동덕여대는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를 물어보셨어요. '곧 혜화 캠퍼스 앞에서 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니까 '그러면 저희도 그날 출근길 시위를 하니 끝나고 가겠습니다'라고 했고 그날 정말 와주셨어요. 저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라고 느끼고요.
다음으로 세종호텔 허지희 동지가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세종호텔 재단의 모습과 동덕여대가 유사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발언문을 보내주셨고요. 거통고의 김형수 동지는 지난 3월 동덕여대 집회에서 거통고지회가 낸 연대 성명문을 낭독해 주셨죠. '옵티칼'(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에서, 혹은 또 다른 노조, 시민단체에서 동시다발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게 제게는 처음과는 다른 형태로 이 국면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장면들이었어요."
그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현장에 직접 가서 투쟁하는 이들을 만나 우리만 싸우는 게 아님을, 우리의 싸움들이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정서적 공감대'를 이야기했다. 이 풍경이야말로 '윤석열 탄핵 광장을 2016년과는 다른 모습으로 상상하게 한 가장 큰 포인트'였다.
'돌봄'하는 공간으로서의 광장

▲지난 3월 8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발언에 나선 김강리 대학원생노조 수석부지부장.
김호세아
'말벌 동지'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그는 말벌이었다. 2022년 SPC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는 집회에도 그는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15년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시에도, 거리 캠페인이 열리던 광화문 광장에 나가 유족들과 군번줄에 노란 리본을 끼웠다. 최초로 사회적 문제에 분노한 기억은 2009년 용산 참사다. '왜 사람들은 옥상에 올라가 있고, 경찰들은 사람을 때리지?' 싶은 '감당할 수 없는 이미지'들을 보고 국가 폭력이라는 부조리를 직관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내란 사태 속 광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깃발과 응원봉보다 핫팩과 은박 담요"다. 남태령과 한강진에서 보낸 밤의 기억이 그 시초가 됐다. 주머니에서 끝도 없이 나오던 핫팩과 보조 배터리, 그리고 담요. 돌아가며 서로의 끼니와 체온을 살피던 순간들.
"내 것뿐만이 아니라 옆 사람까지 챙긴다는 것은 어떠한 책임감을 나에게 주고, 책임감의 확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윤리적 감각들을 되살릴 수 있는지를 감각적인 차원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게 이번 광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파면 이후, 반대편 광장에 있던 이들과 공존하는 방법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지난해 여름에 제가 만들었던 전시 제목('곁을 공유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저는 우리가 곁을 공유하는 방법을 이번 광장에서 배웠다고 생각해요. 저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거친 이미지지만, 누군가의 아버지·어머니고 누군가와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고요. 지금은 그 친밀함을 나누는 사람들의 자리를 '해킹'한 것이 극우 기독교이고, 남성들에게는 남초 커뮤니티인데요. 우리가 그 자리를 어떻게 다시 해킹해서 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설득이라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언술로 불가한 것이어서,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라포'와 '정동'에 관심이 많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강리씨는 예술을 공부하고, 석사 논문 주제로 '정동 이미지'를 선택했다.
정체성이 아닌 관점으로서의 '논바이너리'
'논바이너리(여성/남성으로 구분된 이분법적인 성별정체성에서 벗어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페미니스트'인 그는 3·8여성의날 여성 1만인 선언의 최초 제안자다. 그에게 '논바이너리' 또는 '여성'이라는 발화는 정체성이 아닌 관점의 세계다.
"이번 광장에서는 '여성'이라고 호명되었을 때 일종의 피해자 의식을 강화하는 형태로, 전체 운동이 아니라 부문 운동으로 남게 될 것에 대한 우려들이 있었어요. 저는 페미니스트로서 성별 이분법적으로 구축된 세계를 다시 쓰는 작업부터 해야 된다고 느꼈기 때문에 '논바이너리'라는 이야기를 조금 더 크게 하고 다녔습니다.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논바이너리인 것이죠."
그래서 그는 누군가의 '논바이너리'라는 발화에 '알아두겠다'는 답변, 그 너머를 꿈꾼다.
"우리가 반자본주의에 대한 노동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는 그 사람의 관점을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 생각하잖아요. 근데 '여성 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때는 그걸 나의 정체성으로만 봐요. 그건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개입과 기획의 지점들을 보여주는 정치적인 수사인 데도요. 저는 이것이 일종의 전체 운동과 부문 운동을 분리하려고 했던, 기존 사회 운동에서의 가부장적인 모습들 속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느껴요."
용기는 '지연된 두려움'

▲지난 3월 8일 서울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서 열린 세계여성의날 기념 정의당 당원대회에 참가한 김강리씨.
박세영
동덕여대 졸업 직후, 그는 정당(정의당)에 가입했다. 늘 고립이 뒤따르는 분리주의 전략·전술에 대항해 외연의 확장을 고민하던 학생운동의 연장선에서 벌인 일이었다.
"우리가 그 어떠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는 정치의 영역에서 결정이 되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지금도 소속되어 있어요."
그나마도 광장에서는 활발하게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얘기를 하다가, 일상에 오면 '뚝' 그치는 게 현실이다. 이같은 광장과 일상의 낙차를 두고 나는 '정치를 사갈시(蛇蝎視)하는 한국 사회 특유의 풍토'(
'호외 이후의 시간' <미디어오늘>, 2025/04/08)라고 썼는데, 그가 뉴스레터 <서대_moon>에 쓴
'왜 학생사회는 정치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보고 그게 '사갈시'가 아니라 '두려움'임을 알았다.
그에게 '일상에서 정치를 안 두려워하며 사는 방안'이란 뭘까.
"'안 두려워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 지도 교수님이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해둔 말을 좋아하는데요. '용기는 이겨낸 두려움이 아니라, 세계가 행위하는 자와 함께 있다는 직관으로 인해서, 항상 지연되는 두려움이다'라고 써두셨거든요. 두려움을 잠시 미뤄둘 수 있는 게 저는 용기라고 생각하고, 일상에서도 그것을 미뤄두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 두려움은, 실재한다기 보다는 '감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가 차별과 배제를 경험해 왔던 순간들은 고차원적이지 않아요. 제가 실제 마주하는 건 바로 옆 사람이 저에게 '너 동덕여대생이야?'라고 물어보는 거거든요. 그 상황에서 두려움을 미룰 수 있게 하는 건 바로 옆에 있는, 최근에는 '동지'라고 많이 쓰고 저는 '친구'라는 단어를 사실은 조금 더 좋아하는데, 그들밖에 없죠. 그래서 저도 혼자 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세요?'하고 넘어가지만, 제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을 때는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선'을 그어요. 옆 사람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라도 '아니요, 그건 틀렸습니다' 하는 거죠. 그때 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이제 좀 더 늘어난 거예요. 내가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가 분명하고, 친구들도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강한 신뢰가 있는 거죠."
'X'에 남긴 그의 '메인트'(메인 트윗)는 이것이다. "저는 굳셀 강(姜)과 이로울 리(利)로 이루어진 이름을 꽤 좋아합니다. 한 글자는 나를 위해, 한 글자는 친구를 위해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와 함께 이롭게'가 곧 '정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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