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에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함께지난 18일 오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집무실에서 퇴임식을 앞두고 문형배 권한대행과 함께 찍은 사진.
김용국
어떻게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건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첫째,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였다고 생각한다. 서로 단 한 번도 사적인 부탁을 하거나,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고 싶다. 그는 기자들을 이용하는 '언론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특정 기사나 논조를 요구한 적이 없다. 나 역시 그의 조언만을 참고하였을 뿐 기자로서 '특종', '단독'을 의식하면서 그를 '활용'하려 하지 않았다.
둘째,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덕분이다. 그와 나는 20년간 만나면서 차를 마시며 대화하거나 전화나 메일, 서류 등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뒤에는 집무실에서 몇 차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기도 했지만, 진행 중인 특정 사건에 대한 언급은 철저하게 삼갔다.
그는 술을 즐기지 않는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낮이고 밤이고 술친구가 넘쳐났지만 그에겐 술친구 자체가 없다. 개인적으로도 그와 술 한 잔을 한 기억도 없다. 그는 본업 외에는 독서와 문학을 좋아하고, 테니스를 좋아하고, 야구 경기를 즐겨 보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공적인 담론을 주고받았을 뿐 사적인 생활에서는 서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득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법부가 지금보다 더 믿음을 얻고 사랑을 받으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데 서로 뜻을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원이 신뢰를 얻고 일반 시민들이 법원을 제대로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통했다고 본다. 다만, 그는 법정 안이, 나는 법정 밖이 주무대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그는 법관이라는 신분 때문에 법정 밖에서 자유롭게 주장을 펴기엔 한계가 뚜렷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하기도 어렵고, 왜곡된 주장에 반박할 방법도 거의 없다. 그는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는 이유로 색깔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근에도 그렇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판사의 좌경화, 편향 판결 운운하면서 다양한 공격을 받아왔다. 2010년 참다못한 그는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해야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당시 여당과 보수 언론의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당시 나는 공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의 동의를 얻어서 그의 주장과 입장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관련 기사:
"우리법연구회 없애도 무죄판결 못막는다" http://bit.ly/bJWM7k)
퇴임식 전 집무실에서 나눈 말
지난해 11월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듬해 돌아올 퇴임 이후를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될지 고심이 많다고 여러 가지 선택지를 들려줬다. 그 선택지는 모두 백지로 돌아갔다. 지금 보면 한가하게 들리겠지만, 불과 한 달 뒤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고 대통령 탄핵심판을 맡게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으랴. 그 뒤로는 엄중한 상황에 소장 권한대행으로서 얼마나 책임이 막중할지 알기에 아무런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4일 오전 11시 혼자서 숨을 죽이며 문 대행의 결정문 낭독에 귀 기울였다. 초조한 마음이 든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헌법재판은 재판소장(권한대행)의 뜻대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재판관 8인이 각양각색이고 각자의 의견이 있는 만큼 당시의 선고 결과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행히 중반이 넘어가자 결과가 가늠이 갔다. 온 국민이 알고 있는 대로 11시 22분 탄핵 인용(파면).
퇴임식 당일 오전 집무실에서 만나 임기를 마치는 소회를 묻자 그는 "미련이나 섭섭한 감정은 전혀 없고, 아주 홀가분하고 시원하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차라리 (대통령 탄핵사건) 선고를 하지 말고 그냥 떠나라는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면서, 다만 "설득과 통합을 결정문에 담기 위해서 (선고까지) 시간이 걸린 측면도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의 신중함을 엿볼 수 있었다.
2013년 5월 부산고법 부장판사 시절 그는 '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글에서 그는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글을 언급하면서 "판사가 불의를 저지르는 삶을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의를 묵과하는 삶을 사는 것은 가능하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지위와 역할을 소명으로서 받아들이고 소명을 실천할 자질과 역량이 있는지 늘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까이서 본 그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다만, 판사를 천직으로 여기면서 보통 사람들이 법 때문에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성찰하고 고민하는 법조인일 뿐이다.
'자연인' 문형배와 하고 싶은 것
▲퇴임 축하 꽃다발퇴임축하 꽃다발.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헌법재판관으로서 역사적 소임을 다하신 문형배 헌법재판소장님의 퇴임과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법원공무원 김용국"
김용국
그와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응원팀은 다르다. 그가 무슨 팀을 좋아하는지는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10여 년 전 그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한가해지면 부산 사직야구장에 함께 야구를 보러 가자"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평생을 법관으로 살아온 그가 아직 한 번도 한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해는 법정이 아닌 사직야구장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간 그와 함께 야구를 보고 싶다. 비록 응원팀은 달라도 함께 즐기고 응원하며 서로 상대의 승리는 축하하고 패배는 위로해 주고 싶다. 지역과 성별이 달라도, 생각과 주장이 달라도 관용과 배려를 우선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되 결과에 승복하는 사회, 법관 문형배가 꿈꾸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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