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며 정부의 대북정책과 북미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남소연
남북 대화에서도 커피는 종종 공적 음료로 등장한 바 있었다.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에도 북측 수행원들은 우리 측 담당자들에게 종종 커피를 요청해 함께 마심으로써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남과 북이 교환한 공식 선물에 커피세트가 포함되었던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시민저널리즘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가 창간된 2000년 한 해 동안 한반도는 통일 열기로 가득했다. 자고 나면 통일로 가는 길이 한 뼘씩 열렸고, 전쟁의 불안은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갔다. 누구나 다가오는 평화를 느끼고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떠나는 날 아침 김대중 대통령이 아침 식사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북을 다녀온 언론인들 입을 통해 북에서는 커피가 매우 귀하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그해 여름 커피를 좋아하던 신상옥 감독이 북에서 만든 영화 <불가사리>가 큰 관심 속에 남에서 개봉되었다. 북녘 영화가 남쪽 극장에서 개봉되던 때였다.
남북정상회담 한 달 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 참석했던 남과 북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다. 회담이 열린 호텔에서 마주친 태국 주재 북측 대사관 직원들은 남측 기자들에게 커피를 먼저 권하는 등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커피는 어색함을 풀어주는 신기한 음료였다.
남과 북이 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하던 당시 북한 시장을 노리던 미국 기업들의 관심 물품이 곡물, 커피, 그리고 석유류 순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커피는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을 상징하는 물품의 하나였고, 자본주의의 대표 소비품이었다.
그해 남북정상회담의 주역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평화는 오지 않았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타협과 양보의 가치를 잊은 우리 민족 탓이다. 분단의 비극, 통일의 가치를 잊고 지내는 우리 탓이다.
커피는 원래 개인적인 기호품, 즉 사적인 음료로 등장하기 이전에는 공적인 음료였다. 즉,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고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는 자리에 맞는 음료가 커피였다. 혼자 즐기는 음료는 아니었다. 혁명가들이, 상인들이, 문인들이, 시민운동가들이 모여서 이성적인 논의를 할 때 함께 하는 음료가 커피였다.
지금도 커피는 가장 좋은 아이스 브레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낯선 만남의 자리에서 커피는 대화의 문을 여는 음료로 매우 적절하게 활용된다. 어떤 커피를 드실지를 묻는다든지, 커피 맛은 어떤지를 물음으로써 어색한 분위기를 녹일 수 있다. 커피가 얼어붙은 남과 북 관계를 녹여주는 아이스 브레이커 음료 기능을 발휘할 날이 찾아올 수 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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