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9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해임 무효확인 소송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수원지방법원에서는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원고'인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해병대사령관, 소 제기 취지는 '해병대 수사단장 및 군사경찰 병과장 보직해임 무효 소송'이다. 박 대령이 2023년 8월 소장을 제출하고 1년 6개월 만에 어렵사리 열린 첫 공판이었다. 그동안 수원지방법원은 항명죄 사건 진행 추이를 살피며 눈치만 보다가 1심 군사법원에서 무죄 선고가 나자 부랴부랴 기일을 잡았다.
보직해임 무효 소송은 행정소송이고, 항명죄 사건은 형사소송으로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반드시 행정소송이 형사소송 결과에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군사법원이 그랬듯 수원지법도 박정훈 대령과 해병대수사단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기록을 경상북도경찰청에 이첩한 행위가 적법절차에 따른 것이 맞는지, 보직해임 사유가 될 수 있는지 따져봤으면 될 일이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재판은 1년 6개월 만에 열린 것치고는 짧게 끝났다. 재판부는 이날 바로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 기일을 잡을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군사법원에서 보직해임의 원 사유가 되는 항명이 형사상 무죄 판결이 났고, 도리어 피고 해병대사령관의 이첩 중단 지시가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결론도 난 바 있다. 이 밖에도 박 대령 측에서 1년 6개월간 수원지법에 제출한 무수히 많은 증거와 의견서를 종합해 볼 때 보직해임이 부당하다는 판단은 명약관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피고 해병대사령관 측 대리인은 재판을 더 천천히 진행해달라는 요구부터 꺼냈다. 항명죄 항소심 재판이 4월 18일에 시작되니 항소심 결과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박 대령이 최근 인사근무차장이라는 비편제 보직에 임명된 사실을 언급하며 이 점 역시 검토해서 의견서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물론 수사단장, 군사경찰 병과장 보직해임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재판과 보직해임 이후 새로운 보직에 임명된 사실은 법적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문제다. 뿐만 아니라 박 대령 측에서 제시한 증거와 서면을 검토해 의견서를 제출하려면 시간이 넉넉히 필요하다는 요청도 덧붙였다. 재판장은 이에 대해 "그 동안 안하고 뭐했나?"라 지적했고, 5월 28일 한 기일을 더 진행한 뒤 선고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소송을 질질 끄는 배경에는 국방부의 의중이 깔려있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령의 대령 계급 정년은 2027년 12월 31일까지다. 이날이 지나면 박 대령이 소송에 이겨도, 어떤 자리에 복귀해도 전역해야 한다. 보직해임 무효소송은 이제 1심 단계에 있으니 형사소송 최종심 판단을 핑계 삼아 항소심, 상고심까지 끌고 가면 1년 이상은 족히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끝까지 괴롭히겠다는 국방부
보직해임의 원인이 되는 항명죄를 사실상 국방부가 '뒤집어씌웠다'는 판결이 국방부 관할의 군사법원에서 나왔지만 국방부는 당사자인 박 대령에게 사과 한마디, 유감 한 줄도 표명하지 않았다. 그간 겪은 불이익한 처우에 대한 원상복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국방부는 한술 더 떠 항명죄 형사 소송과 보직해임 무효소송 모두 끝까지 가볼 심산이다. 끝까지 괴롭히겠다는 것이다.
이런 걸 두고 '괘씸죄'라 한다. 국방부와 군 수뇌부에겐 박 대령이 죄를 지었건, 누명을 썼건, 부당한 명령과 외압이 있었건 말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박 대령은 상관의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불편한 부하이고, 군 조직을 들쑤셔놓은 배신자일 뿐이다.
그뿐인가. 군에는 박 대령이 제 자리를 찾아 복귀하길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다. 가까이로는 해병대사령부의 주요 간부들로부터 국방부 곳곳에 포진한 군법무관들과 수사관들, 멀게는 파면된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박 대령에게 항명죄를 덮어씌우고,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철판 깔고 위증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침묵해 온 모든 이들에게 박 대령의 군사경찰 수사업무 복귀는 불편을 넘어선 두려움이나 다름없다.
2024년 3월 5일, 박 대령은 2023년 8월 30일에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염아무개 군검사를 허위공문서작성, 감금미수 등으로 고소했다. 구속영장에는 박 대령이 한 적 없는 행동과 말은 물론, 국방부검찰단이 한 적 없는 수사까지 했다고 하는 등 총 17가지의 거짓말이 적시되어 있다. 염 군검사와 국방부검찰단은 이 영장청구서를 들고 박 대령을 연행해 인치하고, 구속영장실질심사까지 받게 했으나 결국 영장이 기각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염 군검사가 영장청구서에 쓴 거짓말의 대부분은 영장을 심사하는 재판부로 하여금 박 대령이 증거인멸 중이고 항명 혐의도 분명하다는 인상을 갖게 할 목적이었다. 박 대령 휴대전화를 포렌식 해서 여러 증거들을 확보해 놓고 포렌식 결과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허위 사실을 적시한다든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비화폰을 포렌식 한 적도 없으면서 임의제출 받은 사진 캡처를 '포렌식 자료'로 둔갑시켜 국방부검찰단의 수사에 신빙성을 더하는 식이다. 누가 봐도 허위임이 분명한 것들뿐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한 국방부조사본부는 지난 3월 28일, 염 군검사를 불기소 의견으로 국방부검찰단에 송치했다. 국방부검찰단이 허위 작성한 영장청구서와 관련된 범죄의 기소 여부 판단을 국방부검찰단에 맡기는 것도 황당한 촌극이지만, 국방부조사본부에서 쓴 '불기소 의견서'란 것은 한층 더 가관이다. 조사본부는 17개 고소 사실을 낱낱이 반박하여 사실상 염 군검사를 위한 변호인 의견서나 다름없는 문서를 군검찰로 보냈다. 물론 반박의 내용은 대부분 억지에 가깝다.
김계환 사령관 비화폰 포렌식 문제는 '포렌식을 한 적은 없지만 포렌식에 준하는 수사 절차를 거쳤으므로 허위 아님'이라 정리했고, 박 대령이 부하들에게 거짓말을 시켰다는 허위사실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시킨 적은 없지만 거짓말을 하게끔 상황을 조성한 것'이란 염 군검사의 변명을 그대로 실어줬다. 실제 박 대령 부하들은 거짓말을 한 적도 없지만, 문구만 보더라도 '거짓말을 시킨 행위'와 '거짓말을 할 상황을 조성한 행위'는 구속 여부 판단에 있어 엄연히 다른 무게를 갖는 일이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을 바로 잡지 않는 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정식 형사재판이 열리는 14일 오전 윤 전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항명죄 무죄 선고로 채 상병 사망의 진실과 양심을 지켰던 박 대령의 누명은 벗겨졌지만, 외압에 부역했던 국방부엔 달라진 것이 없다. 외압에 관여한 자들이 모두 처벌은커녕, 수사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않고 그대로 자리보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군문 안에서 박 대령은 여전히 괴롭힘의 대상인 것이고, 진상 규명을 위한 수사 역시 여기저기서 틀어막힐 수밖에 없다.
박 대령 문제뿐 아니라 채 상병 사망 사건 자체도 여전히 수사가 중단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이 와중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건설사 사장이 책임 없듯, 나도 없다'는 얘기를 버젓이 하고 다닌다. 이 모든 문제를 풀자면 윤석열이 임기 중 세 번, 한덕수 권한대행이 한 번, 도합 네 번 거부권을 행사한 '채 상병 특검법'의 조속 처리가 불가피하다.
지난 14일, 윤석열 내란죄 사건 첫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특전사 대대장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상관의 지시를 부하들에게 끝까지 전달하지 않았다. (12월 3일로부터) 얼마 전, 군검찰이 박정훈 대령에게 항명죄로 징역 3년을 구형한 걸 봤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했다.
부당한 명령을 부하들에게 전달하면, 부하들에게도 그 명령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몫이 생긴다. 따르면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것이고,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처벌받는 세상이니 아예 부하들에게 자기가 받은 명령을 하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법부당한 명령이 난무하고, 그 명령을 두고 항명죄로 보복당할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의 군대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을 바로 잡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군인들에게 명령의 위법성을 판단할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애초에 적법한 명령만 발령되는 군대를 만들면 된다. 그 첩경은 위법한 명령을 발령한 군인들을 엄히 단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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