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6 20:02최종 업데이트 25.04.1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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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 나눔과나눔이 만든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하는 시민나눔과나눔

얼마 전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상담센터에 전화한 이유는 자신이 세운 계획이 차질 없이 실행될 수 있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내담자는 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두었습니다. 아직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아님에도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 둘 정도였으니까요.

내담자는 자신의 계획대로 미리 장례를 준비할 수 있을까요? 내담자가 원했던 것을 살펴보고, 유언장 속 계획을 따라가면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우리는 원하는 장례를 치를 수 없을까

내담자가 바랐던 핵심적인 것은 이렇습니다.


1. 가족에게 부고를 알리지 말 것
2. 함께 살고 있는 동성 배우자가 모든 장례를 주관하게 할 것
3. 유골은 바다에 뿌릴 것

내담자는 가족으로 부모님과 동생이 있지만 관계가 소원했고, 그래서 자신의 부고가 그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애초에 가족이 자신의 장례를 치러줄 것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았고요. 대신 함께 살고 있는 동성의 배우자가 장례를 치러주길 바랐습니다. 배우자라면 자신이 생전에 원했던 대로 장례를 치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유골은 바다에 뿌려지길 바랐고요.

경제적으로는 소박해 보이는 바람입니다. 매장이나 봉안을 원한 것도 아니고, 넓은 빈소와 화려한 제단을 원한 것도 아니니까요. 실제로 내담자는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충분히 벌고 있고, 장례 비용으로 얼마 남겨두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돈은 해결되었으니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따져봐야겠네요. 과연 내담자의 유언장은 공증을 받아 법적인 강제력을 가지게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럴 수 없습니다.

내담자가 원했던 것 중 생전에 법적인 강제력을 얻어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선, 장례에 대한 바람을 유언이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유언의 능력과 내용은 민법이 정하고 있는데,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상속과 친생부인(親生否認), 인지(認知)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면 모두 참고 사항에 불과합니다. 유언장에 '가족에게 부고를 알리지 말고, 동성 배우자가 장례를 주관하게 하며, 유골은 바다에 뿌려줄 것'이라고 적어도, 이는 법률상의 유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유언장이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하나 따져보며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일단 첫 번째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가족에게 부고를 알리지 말 것"이요. 이 또한 불가능한 바람입니다. 동성 배우자는 법률혼의 배우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연고자들에게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내담자의 부모님과 동생이지요.

내담자가 사망했을 때 동성 배우자는 바로 장례를 치를 수 없습니다. 결국 장례식장은 지자체로 공문을 보내게 될 것이고, 지자체는 내담자의 부모님과 동생에게 시신 인수 여부를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이 절차는 생략될 수 없습니다. 내담자가 생전에 강력히 원했다고 하더라도요. 만약 내담자의 연고자가 장례를 치르겠다고 말한다면, 내담자의 생전 의사와는 관계없이 연고자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만약 연고자들이 시신을 인수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제야 동성 배우자에게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제 동성 배우자는 지자체가 요구하는 서류와 자료를 준비해서 연고자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한 달입니다. 하루 안치 비용을 10만 원으로 잡아도 벌써 300만 원의 안치료가 발생했습니다. 경제적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내담자에게도 부담되는 비용입니다. 아직 장례를 시작도 안 한 것이니까요.

게다가 이 모든 절차는 사후사무이므로, 동성 배우자가 해야 합니다. 자신이 미리 해둘 수가 없어요. 따라서 돈 뿐 아니라 배우자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동반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한 달의 시간 동안 분투를 겪어야 하니까요.

이 모든 절차를 밟은 후에야 동성 배우자가 장례를 치르고, 유골을 바다에 뿌릴 수 있습니다. 내담자의 첫 번째 바람은 어떤 방법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고요. 결국 내담자가 계획한 대로 장례가 치러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사후자기결정권이 없다

서울시 공영장례에 참여한 시민들이 고인께 올린 국화꽃김민석

이건 내담자만의 특별한 경우가 아닙니다. 만약 내담자에게 가족이 있고, 사이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내담자의 바람이 지켜지려면 그들이 그 바람을 따라주어야 합니다. 바다에 유골을 뿌리지 않고 기일을 챙기기 위해 봉안당에 봉안하더라도 그걸 제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내담자는 이미 죽었고, 장례에 대한 내용은 참고 사항일 뿐이니까요.

그 예로 '무연고 사망자' ㄱ님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연고 사망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봉안당 자릿세와 40년 치의 관리비를 미리 내는 등의 준비를 하셨지요. 그는 자신의 예상대로 사망한 뒤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지만, 준비해 두었던 봉안당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곳에 모시고 갈 가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되었고, 올해 여름이면 봉안 기간이 끝나 다른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과 함께 합동 매장될 예정입니다.

우리에겐 상속과 친생부인, 인지 외에 죽음 이후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상담 전화가 늘고 있습니다. 대부분 홀로 살고 있는 노년, 중장년의 사람들이지만, 최근에는 청년의 상담 전화도 걸려 오고 있습니다. 청년 내담자는 말합니다.

"저는 외동에 결혼 계획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아직 정정하시지만, 제가 사고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저보단 먼저 돌아가시겠지요.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장례는 당연히 제가 치를 것이고요. 그런데 그 이후는요? 제 장례는 누가 치러주지요?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말고 다른 대안은 없나요?"

사후자기결정권이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지요. 당장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거나, 스스로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아무런 걸림돌 없이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장례가 치러질 수 있을 것 같은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만 해도 자신이 없습니다. 제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생각하면 막막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은 위안이 됩니다. 2020년만 해도 동성 배우자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제한적인 방법으로나마 가능하니까 5년의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이 바뀐 셈이지요. 사후자기결정권을 보장받는 일도 아주 요원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법을 비롯한 많은 법률이 개정되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의 요구는 늘고 있고, 우리의 관심이 이제 삶을 넘어 죽음 이후로까지 확장되고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내담자의 상담 내용은 개인을 특정 짓지 못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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