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
Nobel Prize Outreach
250년 전 애덤 스미스의 답 역시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유 그리고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계급에 가장 높은 번영을 보장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경제학의 고전 <국부론>이 제시한 바로 이 답을 경제이론과 통계적 분석을 통해 검증한 것이 2024년 세 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현대 경제학이 이룩한 성과다.
정치 강자와 경제 강자의 지배와 억압이 만연한 특권 질서가 정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착취 제도를 만든다. 그래서 강자의 폭력을 견제하고 특권 질서를 방지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법치주의 그리고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이 국가 번영의 필수 조건이다.
전 세계 175개국 데이터를 분석한 아세모글루와 로빈슨의 연구에 따르면 민주화는 25년 후 1인당 GDP를 20% 이상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의 경우 그 영향은 훨씬 컸다. 민주화 25년 후 1인당 GDP(2024년 실질가치 기준)는 약 600%(6배) 상승하여, 1987년 약 5000달러 수준에서 2012년 약 3만 달러 수준이 됐다. 비슷한 시기 민주화한 대만도 1인당 GDP가 약 500% 상승했다. 특권 질서를 해체하고 착취 제도를 혁신할 때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이, 한국과 대만 같은 성공적인 나라에서 얼마나 큰가를 이 수치는 잘 보여준다.
윤석열의 위헌적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는 바로 이런 특권세력의 저항이 일으키는 국가 폭력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다. 윤석열 일당이 북한군을 자극해 전쟁 위기까지 초래했다는 외환죄 혐의도 짙다. 이 사태를 단순히 몇 사람의 정치적 오판 혹은 개인적 일탈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이런 명백하고도 중대한 반 헌법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보수 정치를 대표한다는 대다수 정치인이 내란의 우두머리를 비호하고 내란 세력의 복귀를 꾀했다는 사실이 바로 이 사태의 본질을 말해준다.
윤석열 정부는 초반부터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비판적 의회정치와 비판적 언론에 대해 무도한 압수수색과 수사권 남용을 자행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공권력의 폭력이 지속된 것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 중 절대다수가 행정부의 오만과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입법부 일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되어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짓밟는 폭력을 두둔했다.
윤석열 정권은 언론 탄압을 일삼은 전력을 가진 사람을 언론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국가기관에 임명하고, 사회적 약자와 보편적 인권의 가치에 반하는 언행을 일삼았던 사람을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국가기관에 임명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사람을 독립을 기념하는 기관의 기관장으로 임명하는 등 집권 초반부터 대한민국 75년의 특권 질서, 그 뿌리 속까지 썩은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내란 사태의 직접적 경제적 손실은, 이 사태 후 공개된 한국은행의 작년 말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통해 추계하면 약 6조 3000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실추된 민주주의의 가치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스웨덴 국제정치연구소와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트 유닛(EIU)은 각각 비상계엄과 그 이후 지속한 정치 불안정을 이유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강등시켰다. 특히 EIU가 평가한 한국 민주주의 지수는 이 지수가 집계된 2006년 이래 최젓값을 기록했고, 순위도 전년 대비 10단계나 추락했다. 내란이 그들의 계획대로 이뤄졌다면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이 이룩한 경제발전의 성과를 단기간에 모두 잃게 되는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
특권 질서 지키는 정치 청산해야 할 때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모임에서 나경원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자본주의는 여전히 재벌 대기업집단과 같은 경제 강자의 특권이 지배한다. 재벌가의 2세, 3세 경영의 특권 질서가 혁신적 중소벤처기업의 기회를 박탈한다. 불공정한 시장질서가 기업 간, 부문 간, 노동 간 격차를 키우고 인적, 제도적 역량을 훼손하여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을 잠식한다. 한국 정치도 식민지 파시즘과 군사 독재의 기나긴 권위주의를 지내오며 쌓이고 쌓인 정치 특권이 지배한다. 언제라도 파시즘이 기승을 부리게 할 수 있는 특권의 존재를 윤석열과 그의 지지 세력이 증명했다.
기나긴 권위주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침략자에 부역하고 때로는 독재자를 우상화하며 힘을 키워온 족벌 언론도 2대, 3대 세습을 거듭한다. 탐욕의 특권 질서는 금융, 교육, 종교, 복지와 의료 영역에까지 뻗쳐 세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특권 질서 속에서 돈과 자본의 꿀이 흐르는 길목 길목을 지키며 특권의 창과 방패로 기생하는 검찰, 사법, 관료 조직의 슈퍼 엘리트 집단이 있다.
이제는 마땅히 해체돼야 할 특권 질서를 지키려는 수구 정치의 끝없는 탐욕이 그 정점에 이르렀음을, 그래서 언제든 나라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제2, 제3의 내란을 도발할 수 있음을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내란 사태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특권 세력이 재집권을 위해 국지전까지 불사했던 1997년 북풍 공작(이른바 총풍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2000년대 중반 '차떼기'로 불법 정치자금을 동원하며 재벌 총수들과 수구 정치가 유착했던 사건도 있었다. 수구 정치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중대 범죄자를 배출했고 이제는 내란 사태의 우두머리까지 배출했다. 대한민국 특권 질서의 탐욕은 친위 쿠데타는 물론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특권 질서를 지키는 정치를 이제 청산해야 한다. 국민을 공평하게 대표하는 포용 정치가 특권을 해체하고 완전한 정의, 완전한 자유, 완전한 평등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매진할 때 국가 번영의 길이 만들어진다.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소셜 코리아 자문위원)
주병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과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 캔자스대와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재직했으며 한국응용경제학회장,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시경제학, 재정학, 정치경제 등이고 분배적 정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공정한 경제기제 등의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분배적 정의와 한국사회의 통합>,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시간>, <혁신의 시작>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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