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1 12:20최종 업데이트 25.04.1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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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시장도 놀랐고, 필자도 당황했다. 트럼프 본인의 강한 지도자상을 위해서라도 최소 몇 주간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갑작스러운 후퇴였다.

왜 갑자기 물러섰을까? 혹자는 트럼프가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획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중국을 옭아매기 위한 함정이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진짜 이유는 시장 신뢰의 급격한 추락에 있다. 특히 미국 국채 시장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는 점이 핵심이다. 트럼프의 오락가락 정책이 미국 금융 패권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채권 시장의 복수'

월가에는 '채권 시장의 복수(bond vigilantes)'라는 표현이 있다. 정부가 무책임한 경제정책을 펼치면, 투자자들이 국채를 대거 매도해 금리를 급등시키고, 이를 통해 정책 수정을 강요하는 현상을 말한다. 트럼프가 갑작스럽게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한 배경에도 이 채권시장의 반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전조는 지난 2월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 대한 관세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통상 주식이 흔들리면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미 국채로 몰린다. 그러나 4월 2일,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전 세계에 적용하겠다고 선언하자 사태는 반전됐다. 주식과 국채가 동시에 급락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시장은 '설마' 했지만, 그 '설마'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이 발표 이후,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단 며칠 만에 0.4% 이상, 30년물은 0.5% 이상 급등했다. 이는 1982년 이후 가장 빠른 상승 속도였다. 얼핏 보기엔 아주 작은 이자율 변동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미국 금융시장 전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연방 부채는 36조 달러를 넘는다. 여기에 매년 약 4조 달러의 새로운 국채가 발행되고, 기존 채권의 차환까지 포함하면 시장에 풀리는 국채 규모는 더욱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0.5%포인트만 올라가도 수년 내 수천억 달러의 추가 이자 부담이 발생한다. 이는 결국 세금 인상이나 복지 삭감,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금리 급등의 배경에는 단순한 투자 심리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시장을 뒤흔든 보다 구조적인 원인이 있었다. 바로 '베이시스 트레이드(basis trade)'라는 투자 전략이다. 쉽게 말해, 이 전략은 같은 국채를 두 가지 방식으로 동시에 사고파는 것이다. 하나는 지금 당장 사고파는 '현물 거래', 다른 하나는 나중에 사고팔기로 약속하는 '선물 거래'다. 이 둘 사이에 생기는 아주 작은 가격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예컨대 지금 국채를 99달러에 사서, 석 달 뒤 100달러에 팔기로 약속된 선물을 동시에 판다면, 그 차액이 수익이다. 미국 국채가 오랫동안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전략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익 수단으로 통했다.

문제는 지나친 레버리지였다. 투자자들은 1달러의 자산을 담보로 50달러, 심지어 100달러 규모까지 거래를 확장했다. 미 국채에 대한 과신이 불러온 과잉 투자였다. 그런데 트럼프의 관세 발표로 국채 가격이 흔들리자, 연쇄 반응이 시작됐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자, 빚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이 추가 담보를 요구했다. 유동성이 부족한 펀드들은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문제는 모두가 파는 상황에서 사려는 이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국채 가격은 더 떨어졌고, 담보 부족은 더 심해졌다. 매도는 매도를 불렀고, 악순환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이자율은 오른다. 결과적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했고, 시장 전반에 위기감이 번졌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던 미 국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트럼프가 4월 9일 전격적으로 '상호관세' 유예를 선언한 것도 이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장의 징벌을 견디지 못한 대통령의 불가피한 항복이었다.

소탐대실의 관세 정책, 달러 패권까지 흔들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 대응센터의 모습. 달러가 쌓여있다.연합뉴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시장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 이유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미국 무역 구조에 대한 본질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상품 수지에서는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해 왔다. 그 규모는 연간 1조 달러를 넘어설 정도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심각한 문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조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미국 경제의 또 다른 축과 맞물려 작동한다.

바로 서비스 수지다. 미국은 서비스 분야에서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으며, 이 부문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는다. 반면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1960년대 40%에서 현재 10% 미만으로 줄었다. 제조업 경쟁력 하락은 수십 년에 걸친 구조적 변화이며, 단기간의 가격 경쟁력만으로 쉽게 뒤집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관세를 급격하게 올린다고 미국 제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급증할 것이라는 발상은 환상에 가깝다. 핵심은 생산성이다. 중국, 독일, 한국, 일본과 경쟁하려면 제조업 생산성을 높여야지, 가격 장벽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착각은, 트럼프가 "관세는 외국이 낸다"고 주장하며 이를 정당화했다는 점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관세는 미국의 수입업체가 부담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실제로 지난 2월, 후버연구소와 유고브(YouGov)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관세를 외국이 낸다고 믿고 있었다. 이들 상당수가 트럼프 지지층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이 잘못된 경제 인식을 확산시키고, 그 위에 정책을 세운 것이다. 거짓 위에 쌓인 구조는 언제든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 사기이기 때문이다.

무역 구조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상품수지 적자를 무조건 줄여야 할 문제로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미국은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를 세계에 공급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달러가 글로벌 통화로 기능하려면 세계 시장에 충분한 양이 풀려야 한다. 그리고 그 주요한 경로가 바로 상품수지 적자다.

미국이 수입을 통해 세계에 달러를 공급하면, 그 달러가 다시 미국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으로 되돌아오는 구조가 그동안 미국이 추진해 온 세계적 수준의 금융자유화 전략의 핵심이다. 즉, 미국의 금융 패권은 달러 패권 위에 세워져 있고, 그 달러 패권은 상품수지 적자라는 통로를 통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 무역 구조의 이 정교한 균형을 무시한 채, 상품수지 적자만 줄이겠다며 관세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금융시장이 즉각적으로 보여줬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리면서 미국 국채 시장은 요동쳤고, 달러화 가치는 급락했다.

일각에선 달러 약세가 수출 경쟁력을 높여 무역적자 축소에 도움이 된다며, 트럼프의 의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미국은 제조업 기반 수출 국가가 아니다. 달러 약세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달러의 신뢰 하락은 미국의 금융 패권 토대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 '신뢰'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아무리 초강대국이라도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잃으면 시장은 가차 없이 반응한다. 미 국채 금리의 급등, 달러 가치의 하락 등 '상호관세' 이후의 이 모든 분란은 시장이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강력한 경고다.

정책에는 찬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오락가락하는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가계는 소비를 멈춘다. 이처럼 변동성이 클 때 조급하게 움직이면 오히려 더 큰 손실을 부를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 해법이 아니라, 긴 호흡의 전략적 인내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덕수 대행체제가 트럼프 정부와의 속도전 협상에 나선다면, 이는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되는 졸속 외교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조급하면 잃는다. 지금은 지켜볼 때다. 새 정부가 정식 출범한 뒤, 보다 안정적이고 신중한 조건에서 외교 협상에 임하는 것이 국익에 훨씬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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