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4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배포된 전남일보 호외를 시민들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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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최근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볼까.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드디어 탄핵당했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이 선포한 계엄의 부당성을 인정했다. 또한 발표한 포고령의 내용과 정치인 및 법조인 체포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 판결했다.
소위 얘기하는 국회의 "입법 독주(역대 최대 거부권을 쓰면서 법안을 모두 돌려세웠는데 무슨 독주인지 모르겠다)"와 연쇄 탄핵이 계엄 선포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비유하자면 말로 타이르고 협상할 일에 주먹부터 휘둘렀다는 뜻과 같다. 대통령이 생각하고 실행할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끔찍할 정도로 무능하다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이 내용들은 행정부 수장으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모욕이라 생각한다. 물론 자초한 모욕이긴 하지만.
탄핵 인용 전에야 기각이나 각하를 기대할 수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인용 결정이 내려졌다. 공개된 결정문에는 윤석열의 자기변명을 모조리 반박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이 결정문은 대통령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성적표이기도 했다. 나라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사람도 못 만났을 것 같다.
하지만 윤석열은 탄핵 다음 날 관저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을 만나 차담을 나누었고 심지어 만남을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 의원에게 나라의 어려운 상황과 조기 대선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고 알려졌다. 이 어려운 상황과 조기 대선 국면이 누구 때문에 생겼는가. 염치가 있고 분수를 안다면 입이라도 닫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근엄한 척 애국자 행세를 하면 사람들에게 정말 그렇게 보일 줄 알았나.
윤석열만이 문제 아니다
윤석열은 이후에도 윤상현 의원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만나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이 소식들이 보도되면서 언론들은 윤석열이 사실상 관저 정치를 이어가고 분석했다.
그런 분석이야 할 수 있지만 윤석열 또한 자신이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곤란하다. 최악의 성적표를 받고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긴 상태에서 쫓겨난 대통령에게 무슨 정치적 자산이 있나. 현직에서 물러난 정치인들이 원로 역할을 하는 건 하다못해 임기 동안 큰 사고라도 치지 않았을 때다. 윤석열은 분수에 맞지 않는 행세를 하고 있다.
이런 식의 행보는 한덕수 총리 또한 만만치 않게 보이고 있다.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았으면 직분에 맞게 현상 유지나 잘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윤석열 탄핵 인용 전에도 한 총리는 쟁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여야 합의를 주문까지 했었다.
총리가 그것도 궐위한 대통령을 대행하는 자가 국회를 향해 이런 요구를 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잠깐 가게 좀 지키라고 앉혀놨더니 사장 노릇을 하는 모양새다. 무조건 근엄한 태도만 하면 없는 자격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결국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다 본인의 탄핵 소추안까지 국회에서 가결되지 않았나.
자기 분수를 아시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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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탄핵되어 대통령 자리에서 완전히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한덕수 총리는 여전하다. 끝이 예고된 정부의 대행이 되었으면 가장 중요한 일인 대선을 잘 치르고 정권이 잘 이양될 수 있도록 준비하면 된다. 그것만 해도 바쁠 시국에 한 총리는 뜬금없이 헌법재판관 후임자를 지명했다.
지명된 두 사람 자체도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한덕수 총리의 지명권 행사는 너무나 문제가 있다. 해당 지명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민의를 대변하는 통치권자의 권한이다. 하지만 총리는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다. 그런 총리가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대행하는 게 말이 되나. 아니나 다를까 헌법학자들이 이 지명권 행사는 월권이라고 들고 일어나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사심 없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슬기로운 결정을 내리고자 최선을 다했"고 "결정의 책임은 오롯이 제게 있다"고 했다. 전제부터 모조리 틀린 발언이다. 책임도 그걸 지기에 적정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질 수 있다. 나라를 위한 특정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그걸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한 결정에는 당연히 사심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당연한 것에 무슨 최선까지 다하나.
애초에 자격도 없는 사람이 짐짓 모든 걸 감당하는 척 책임진다고 해봐야 그 말은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무게 잡고 "국민께 드리는 말씀" 같은 걸 읽어봐야 꼴만 우습다. 지금 한덕수 총리에게 필요한 조언은 딱 이것이다. 분수를 아시라. 그렇지 않으면 우습게 보인다. 마무리라도 모양새 없이 짓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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