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1 06:52최종 업데이트 25.04.11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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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 후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둘 다 맞다. 관세는 영구적일 수도 있고, 협상이 이뤄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관세를 넘어서 필요한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그는 관세가 영구적인지 아니면 협상 대상인지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는 9일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 동안 전격 유예하였다. 그는 아직 중국에 대해서는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과 일본 등과는 분명하게 협상을 의도하고 있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부터 그의 관세 계획은 성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런데 트럼프가 성공하였던 날이 하루 있었다. 지난 2일이다. 이날 그는 매우 호기롭게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음악을 배경으로 등장하여 한 시간 동안 관세 부과 서명 행사를 했다. 그리고 이날을 미국이 외국의 약탈에서 벗어나는 '해방일'이라고 불렀다.

상식 있는 교양인이라면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하지 않을 단어를 써 가며 외국을 비난했고 자신을 미국 국익 수호자로 불렀다. 그러면서 자신이 매기는 상호관세를 '친절한' 상호관세라고 불렀다. 왜? 자신의 계산법에 따르면 더 매겼어야 할 관세를 절반이나 깎아 주었으니 친절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친절 뒤에는 엉터리 산수가 있었다. 한국에 대해 계산했다는 '50%'('친절하게도' 그 절반만 부과했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단지 미국이 한국과의 상품 무역에서 본 무역적자 금액이 미국이 한국에서 수입한 상품 총액의 절반이라는 것이 유일한 계산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서비스 분야에서 보고 있는 막대한 흑자는 아예 빼먹었다.

트럼프는 오직 관세 부과 서명식을 치르는 데만 성공하였을 뿐이다. 그는 미국 무역적자가 국가 비상사태로 이어진다는 논리로 관세를 부과하였는데 막상 러시아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못했다. 또한 취임 초부터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부르는 등 강하게 압박하였던 멕시코에도 상호관세를 부과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 무역적자의 17%나 차지하는 멕시코와 캐나다는 상호관세에서 제외되었다.

트럼프 한 사람 또는 미국이라는 한 국가가 1947년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래 형성되어 온 국제 경제 분업 질서를 뒤엎을 수는 없다. 세계적인 코로나 대유행에서도 진단 시약과 백신 등 필수적 의약품을 조달할 수 있었던 데는 국제 분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트럼프는 마치 상호관세를 한국에 때리기만 하면 SK 하이닉스나 현대차가 관세를 피하기 위하여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 제조업을 부활시킬 것으로 생각하나, 산업 생태계는 트럼프의 골프장이나 부동산보다 훨씬 복잡하다.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부품이 2만 가지가 넘는다. 미국이 효율적인 생산기지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 공장이 없다. 트럼프의 상호 관세는 영구적일 수가 없다. 만약 영구적이라면 그것은 미국민의 영구적 피해를 의미한다.

누구나 예상하듯 트럼프는 결국 한국과 협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 앞에는 멕시코가 보여 준 해결 사례가 존재한다. 나는 트럼프 취임 전부터 멕시코가 미국과 어떠한 통상 모델을 만들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여러 자리에서 발표했다.

왜냐하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멕시코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USMCA)을 맺고 있다.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에 따르면 트럼프의 상호 관세는 협정 위반이라 허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유무역협정은 관세 철폐 협정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던 관세 수준을 올리는 반대 방향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새로운 관세를 만들어 매긴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멕시코는 어떻게 트럼프와 협상하였나

3일(현지시간)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멕시코시티의 인류학 박물관에서 열린 경제 강화를 위한 멕시코 계획 발표에서 주먹을 치켜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트럼프가 상호관세 행정명령 서명식 행사를 하고 있을 때, 백악관은 USMCA의 적용을 받는 멕시코 제품에 대해 무관세가 유지된다고 발표했다. 멕시코에 대해서는 자유무역협정 체제를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한국의 대응은 멕시코 방식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멕시코가 어떻게 트럼프와 협상했는지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애초 트럼프는 지난 1월 20일 취임하자마자 멕시코에 대하여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명백한 자유무역협정 위반이었다.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대응의 기본 원칙을 세우고 끝까지 견지했다. 그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주권 존중이 아닌 일방적 굴복은 거부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천명했다. 미국이 멕시코를 존중하지 않으면 멕시코도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매일 국민과 언론을 만나 원칙을 설명하고, 소통하며, 국민적 단결을 호소했다. 그는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꿔 부른 트럼프에 맞서, 미국 독립 이전의 북미 대륙 지도에 지금의 미국이 멕시코로 표시되어 있음을 보여 주면서, 미국을 '멕시코 아메리카'로 부르는 것이 어떻겠냐며 품위 있게 대응했다.

동시에 그는 트럼프와 직접 소통했다. 트럼프가 멕시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핵심적 관심 사항을 피하지 않고 정면 대응했다. 미국·멕시코 국경에 방위군을 배치했다. 그리고 트럼프에게 직접 97% 감소한 불법 멕시코 이민 숫자와 41.5% 감소한 펜타닐 압수량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이메일로 직접 자료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 트럼프에게 상호 협력을 설득했다.

멕시코는 성공했다. 처음에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무역협정을 적용하는 잠정적 해결안을 도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적으로 현행 무역협정 체제를 그대로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멕시코 대통령은 이 최종적 해결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멕시코 국민과 국회와 적극 소통했다. 아직 자동차 철강 등 특정 품목 관세 문제는 남아 있으나, 상호 관세라는 괴이한 투망식 계산에서 멕시코는 완전하게 벗어났다.

새 대통령 당선인의 과제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금융지구에 있는 뉴욕증권거래소 앞 '겁 없는 소녀' 동상연합뉴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트럼프에 대응하는 기본 원칙이다. 트럼프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지키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에 FTA에 따른 무관세 대우를 제공하는 만큼 미국도 동일한 무관세 대우를 한국에 제공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 트럼프가 내세우는 상호관세에서 진정한 상호성 원칙이다. 트럼프가 한국에 부과한 25% 상호관세는 한미 FTA와 양립할 수 없는 괴이한 산수임을 말해야 한다.

미국이 오랫동안 한국에 요구해 온 개별적인 통상 현안을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는 트럼프 상호관세를 해결할 수 없어 보인다. 한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구글 등 빅테크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문제,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문제, 유전자조작 감자 수입 문제 등 개별적 통상 사안을 한국이 알아서 먼저 해결해 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것으로 트럼프가 달라지지 않는다. 한미 FTA 틀 안에서 해결한다는 기본 원칙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2개월 후 새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다. 한국의 새 대통령 당선인은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핵심적 관심사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 사이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면 트럼프도 자신의 핵심적 요구를 정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 많은 것을 해 주었고, 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다. 트럼프의 핵심 요구는 한국의 선박 건조 기술과 시스템을 미국으로 통째로 이식시키려는 것일 수 있고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심지어 북한 원산항을 비롯한 대규모 부동산 투자 개발을 북한에서 해 달라는 것일 수도 있다. 아직은 트럼프가 한국에 대한 핵심적 요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야 러시아를 통한 북한의 요구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검토될 것이다.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이 그랬듯이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원칙을 지키면서 트럼프의 핵심 요구를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 대통령은 국민, 국회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핵심은 한미 동맹의 내용과 한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이다. 한미 동맹을 정립하는 것이 국민의 삶에 이로운 것인지 치열하게 토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 통합을 끌어내는 내치가 중요하다. 그래야 외교가 살아난다. 한국은 멕시코 사례를 넘어 한국 모델을 만들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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