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8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먼저 윤석열의 퇴장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종말을 알립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박근혜와 윤석열의 공통점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갖고 있었고, 그 점을 알면서도 국민이 그들을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점입니다.
윤석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은 '카리스마'였습니다. 실제로 2021년 더불어민주당이 당시 야당 예상 대선 후보군에 대해 이미지 면접조사를 통해
알아본 결과, 그를 상징하는 긍정적 이미지는 "강인함·카리스마"였습니다. '카리스마'의 사전적 뜻은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이지만, 결단력이 있고 위압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정치인들에게 주로 붙는 말이기도 합니다. 윤석열이 어퍼컷 세리모니를 즐겨한 것은 그러한 '카리스마형 리더'로서의 존재감을 더 강화하고자 한 것일 테고요.
국민들은 분명 윤석열의 '결단력과 보스 기질'(연합뉴스)이 국정 난맥상을 풀어나가는 원동력이 되길 바랐을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검사 동일체 원칙'하에서 상명하복에 길든, 심지어 '검찰주의자' 그 자체였던 윤석열이 민주 정치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로 인해 수많은 문제가 속출했습니다.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 바이든-날리면 사건,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정갈등을 비롯해 수많은 외교참사·인사참사가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를 정치적으로 타개할 능력이 윤석열에게 전무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강한 결단력은 협치나 협상을 하는 데는 쓰이지 않았고, 자신과 대립하는 이들을 압박하거나 '입틀막'하는 데만 쓰였습니다.
'수직적 관계'가 기본값이었던 그에게, 참모들의 조언이 통했을리도 만무합니다. 2013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하면서 기자에게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비켜"라고 하는가하면,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도 대변인에게 반말을 했던 그입니다. 안 보이는데서는 오죽할까요.
윤석열은 대의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의 말을 듣지 않았고, 참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면 숨기거나 '남 탓' 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제 마음대로 안 되니, 한 방에 모든 상황을 뒤집기 위해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붕괴시키는 '계엄'을 선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는 대통령직 파면과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로 전락하는 것이었고요.
이는 한국 사회가,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권위주의적 리더를 더 이상 용인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통령이 불법 및 탈법을 저지르는 것을 마냥 참아주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은,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이나 홍장원 국가정보원 제1차장 등의 존재가 잘 보여줍니다.
나아가 대통령이나 대통령 측근이 민주적 절차를 무너트리거나 비위 행위를 저지른다면, 완벽하게 숨기는 것도 어렵습니다. 보는 눈이 너무나 많은 데다가 대통령이 절대권력이라는 인식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대통령이면 말 그대로 '제왕'이라고 착각을 한 겁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유권자들을 설문조사해서 낸 리포트
<20대 대선을 통해 살펴본 유권자의 권위주의 성향>은 "위협 인식이 높아질수록 내가 속한 집단의 존속을 위해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수호하게 되고, 이러한 위협 상황을 해결해 줄 강력한 지도자와 권위를 원하는 권위주의 성향이 나타나게 된다"라며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국민들로부터 여전히 각광받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이어 "최근 여러 번의 정권교체 속에서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보다 극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권위주의적 리더·정당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대두"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유럽, 미국, 남미 등에서도 관찰되는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권위주의적 리더가 결국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무참히 짓밟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강력한 권위, 강인함, '보스' 기질로는 수많은 현안들을 도무지 풀어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도 실감했습니다. 동시에 이는 국민과 참모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고통스럽더라도 끊임없이 타협과 조정을 되풀이하는 '수평적 리더십'이 없다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면교사이기도 합니다. 정훈님,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한칼에 난국을 헤쳐 나가는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선망이 사라져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회복이 불가능한 국민의힘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한 가지 언급할 만한 지점이 있다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국민의힘이 몰락했다는 사실입니다. 보수정당으로서의 책임감은 찾아보기 어렵고, 헌정질서를 위협한 윤석열을 두둔하기 바쁜 모양새입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당시와 비교해 볼까요. 탄핵을 찬성했던 비박계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새누리당 또한 '자유한국당'으로 개명을 하는 등 쇄신을 위한 표면적인 노력은 했습니다. 자유한국당 또한 박근혜와 거리를 뒀고, 대선 이후에는 출당까지 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지난 1월 5일 45명의 국회의원들은 마치 극우 집회 참가자들처럼 윤석열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관저 앞을 막아섰습니다. 몇몇 중진 의원들은 아예 극우 집회의 연사로 참여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82명은 "설령 계엄이 헌법 또는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의 의회 독재의 심각성을 고려해서 기각 결정을 해달라"(나경원)는 말과 함께 헌재에 탄핵 심판을 각하·기각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탄핵 인용 이후에도 이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탄핵 인용 이후에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라고 하면서도,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의회 폭주와 정치적 폭거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점도 반성한다"라며 교묘하게 남 탓을 했습니다. 파면된 당일 당 지도부가 윤석열을 찾아간 것도 황당한 일입니다. 심지어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인 그에게 "대선 준비 잘해서 꼭 승리하길"이란 말을 들었다고 전하기까지 했습니다.
정훈님, 이 정도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위헌·위법하다는 헌재의 결정을 무시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에 더해 대선에 승리하면 윤석열을 복권시켜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내란죄 처벌은커녕 '윤석열의 상왕정치'가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길 수밖에요.
헌재는 파면 결정문에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여,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렸다"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지도부부터 "왜 비상조치가 내려졌는지 한 번쯤 따져봐야 한다"(권성동 원내대표)라며 민주당 탓을 하고, "제가 국회 현장에 있었더라도 표결(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에는 참여하지 않았을 것"(권영세 비대위원장)이라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반복해 왔습니다.
지난 넉 달 간 국민의힘의 '윤석열 감싸기'를 보면, 사실상 '위헌 정당'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극우 세력 또는 윤석열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거나, 이들의 정치적 화력을 등에 업으려는 속셈이 큰 나머지, '헌정 질서 수호'라는 정당의 기본적인 의무마저 저버린 모습입니다. 이쯤 되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산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기우가 아닙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년간 세 명의 대통령을 탄생시켰고, 그들 중 두 명이 파면되었고 한 명은 비리·횡령으로 17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수권정당'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 꽤 명백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전처럼 쇄신도, 반성도 하지 않고 '이재명 탓' '민주당 탓'만 반복합니다. 탄핵을 찬성한 김상욱 의원에게는
"정의로운 척은 혼자 다 한다"라며 대놓고 탈당하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대체 이 당에 무슨 미래가, 희망이 있겠습니까.
국가와 국민을 배신한 한국의 엘리트들

▲2022년 6월 4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김대중 칼럼 '左·右 두 날개'로의 복귀'
조선일보 PDF
"윤석열의 등장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정 환경과 전문 교육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들이 리더로 부상(浮上)한 일이다. (...) 윤 대통령은 대학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70년 건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서울대를 제대로 나온 대통령이 됐다(YS가 있다지만 그것은 6·25전쟁 혼란 중의 상황). 이것은 우리나라의 지도자상(像)을 정상화하는 의미가 있다. " (2022년 6월 4일 자 '김대중 칼럼' 중)
김대중 전 <조선일보> 주필은 서울대 법대 후배인 윤석열의 당선을 두고, '엘리트 리더'의 부상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3년 동안 윤석열과 윤석열 주변의 엘리트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겁하고, 국가의 안위마저 위협하는지 똑똑히 봤습니다. 특히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을 감싸고 두둔하던 주요 공직에 포진된 한국 엘리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참담해 했습니다. 이처럼 이번 '내란 정국'은 철학도 신념도 없는 한국 엘리트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줬습니다.
내란에 가담한 군 장성들과 경찰 수뇌부, 갑작스럽게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니라 '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며 '구속 취소'를 결정한 판사, 항고를 포기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하면서 윤석열을 풀어준 검찰총장... 이뿐만이 아닙니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다가 탄핵 소추당한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위헌'을 저지른 최상목 경제부총리. 두 대통령 권한대행의 부끄러움도, 염치도 모르는 행태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2024년 3월 26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돼 권한대행으로 복귀한 한덕수는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지난 8일,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대통령 추천 몫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겁니다. 이미 대통령이 파면되어서 대통령의 권한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권한대행' 역시 대통령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떻게 봐도 월권이자 초법적 행위라는 이야기입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학회의 다수 견해"라고 강조했습니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한 대행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진영'의 이익일 겁니다. '공공선'의 추구는 그에게는 안중에도 없던 것이죠. 특히나 한 대행이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은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에서 진행된 '안가 회동'에 참석했던 4인방으로서 '내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한 대행이 대놓고 윤석열의 사람을 '알박기' 하는 것은, 앞으로 다양한 정치적 쟁점에 대한 헌법 심판에 대비하기 위함일 겁니다.
그는 그렇게 가장 뻔뻔한 권한대행으로 역사에 남을 것도 각오한 채로, 국민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 세력에 충성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오는 '이익'이 있다면 상식과 규범을 무참히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공직자들에게, 국민들이 나랏일을 어떻게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정훈님, 2023년 8월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하버드대학교 셔츠를 입은 잼버리 대원에게 한 대행이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I'm a graduate of Harvard(나 하버드 졸업했다)"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타공인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한 대행의 지금 모습은 어떻습니까. '후안무치'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앞서 김 전 주필이 언급한 "보편적인 가정 환경과 전문 교육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들" "제대로 된 서울대 출신"이 주름 잡은 윤석열 정권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슬프게도 앞으로 우리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지금도 남기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느라 많은 시간을 써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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