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약국에서 약사가 약을 정리하고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시민단체인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건강보험 곳간 재정을 훔쳐 가는 도둑을 잡지 않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2019년에 공익감사청구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숨기려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판했다. 정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복지부는 '급여 적정성 재평가'를 통해 효과가 불분명한 약제들을 다시 살펴보겠다면서 첫 번째 약제로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지목하였다.
2020년에 발표된 재평가 결과는 뻔했다. 당연히 검증가능한 효과는 없었다. 다만 오랜 기간 사람들이 먹었기 때문에 사회적 요구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여 급여 삭제가 아니라 본인 부담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급여 축소 결정을 하였다. 결정 과정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단체와 공급자단체, 정부 관계자가 함께 사안을 논의했고 급여 축소를 결정했다.
효과도 없는 약의 사용을 통제하려는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콜린알포세레이트로 돈을 벌던 제약사들은 즉각 반발하였다. 대웅바이오 등 39개 회사는 법무법인 광장과 함께, 종근당 등 45개 회사는 법무법인 세종과 함께 법적 대응에 나섰다. 대형 로펌들은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 축소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급여 축소 결정에 대해 집행정지도 청구했다.
재판부는 집행정지에 대해 대형 로펌의 편을 들어줬다. 대형 로펌들은 매년 400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약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때, 제약사들이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받아준 것이다. 반대로 불필요한 약에 구매를 지원해야 하는 건강보험 재정의 손실과 그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의 이익은 고려되지 않았다.
집행정지 결정 이후에 본안소송은 흡사 전쟁터였다. 대형 로펌들은 소송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본안소송 결과가 하루만 지연되어도 제약사는 약 14억 원을 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연되고 지연되던 소송은 5년 만인 지난달에 결과가 일부 나왔다. 종근당과 법무법인 세종에서 제기한 급여 축소 취소소송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였다.
하지만 대웅바이오가 제기한 소송은 여전히 2심에 머물러 있다. 만약 대웅바이오마저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5년이 넘는 지연을 통해 제약사들은 2조 원 넘는 매출을 얻었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형 로펌의 법 기술과 고위공직자들의 줄서기
대형 로펌들은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최근에 제약회사와 정부 기관 간 소송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과거에 특허 관련 소송만 진행했지만, 최근에는 불법 리베이트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위반에 의해 행정처분을 받아도 소송을 제기한다. 제도가 유리하게 바뀌면 소급 적용해야 한다고 소송하고, 불리하게 바뀌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한다. 그리고 소송에서 지더라도 지연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한다.
이런 소송이 늘다 보니 대형 로펌에서 헬스케어팀을 엄청나게 강화하고 있다. 김앤장은 정해민 전 건강보험공단 약제관리실장, 곽명섭 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 등 고위공직자들을 영입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낸 김강립 전 식약처장의 영입도 "기정사실화 된 상황"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를 보도한 언론은 "의약품 인허가 등을 관장하는 식약처장을 역임해 로펌 업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법무법인 세종, 양성일 전 보건복지부 차관은 법무법인 화우의 영입이 유력하다고 보도되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서 일했던 고위공직자들이 대형 로펌으로 대거 들어가고 있다. 제약기업의 이익에 충실한 로비스트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질병 치료에 필수적인 약을 적정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이유는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노력으로 약제급여제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의약품의 가격과 급여 결정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게다가 약가협상도 로펌이 대리하여 참여한다. 의약품 관리 제도의 사법화를 통해 대형 로펌은 엄청난 시장을 창출했으며, 이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들을 고액의 돈으로 매수하는 모양새다. 매년 5000억 원이 팔리던 콜린알포세레이트의 급여 축소 지연을 통해 제약사의 꼼수, 대형 로펌의 법 기술,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의 줄서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 끝을 우리는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보험 재정은 누군가의 주머니에 채워질 것이고 우리의 건강은 분명 위협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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