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관계자들이 봉황기를 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일 윤석열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시민들의 힘으로 윤 전 대통령의 임기는 종료되었고, 이제 대통령비서실, 경호처, 국가안보실 등의 대통령 기록들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된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한 경우라면 대통령 퇴임 전 1년 동안 대통령실과 대통령기록관이 협의를 통해 이관을 준비하고 실행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궐위 상태에서는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장이 즉시 이관 대상 기록물을 확인하여 목록을 작성하고, 인력 배치 등 이관에 필요한 조치를 수행해 차기 대통령 임기 시작 전까지 이관을 완료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기록관장은 비서실에서 기록물을 반출하거나 임의로 비공개 설정을 하지 못하도록 이동 및 재분류 금지를 요구하고 현장점검을 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 때문에 지금과 같은 예외적 상황에서 대통령기록관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국면에서 대통령기록관은 관장 교체를 단행하고 있다. 전임 관장이 사의를 표명하였다는 이유다. 문제는 신임 관장 최종 합격자 두 명 중 한 명이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2년 7월부터 지난 2월 20일까지 대통령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정아무개씨라는 점이다. 이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관장 최종 합격자 가운데 한 명을 임명하는 절차만 남았다.
박근혜 파면 후 지정기록물 봉인시켜 은폐 지적 제기
윤석열 대통령실에서 근무했던 관장 후보 정씨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에서 대통령 기록 업무를 담당한 바 있다. 특히 지난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파면 직후 그는 청와대 행정관으로서 대통령기록물 이관 작업을 도맡았으며, 이 과정에서 국정농단 관련 기록과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생산된 보고 문서들을 모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시켜 증거를 은폐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범죄를 조사하던 중 영포빌딩에서 청와대 문서 상자 17개가 발견되어 밝혀진 대통령기록물 무단 유출 사건 당시, 정 후보자는 대통령기록물 이관 업무의 실무 담당자로서 직간접적인 연루 의혹을 받았다는 점이다. 해당 건과 관련하여 그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로부터 대통령 기록물 유출 혐의로 고발된 바 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죄에 대해 검찰의 공소장에 증거자료 등이 너무 길게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공소기각' 되어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 기록물 이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한 대통령비서실 기록관리 담당 행정관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적극적인 가담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각종 비위 기록을 빼돌리게 방기했던 공무원이 '대통령기록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파면된 대통령 기록을 보존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에 있는 대통령기록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기록물은 비상계엄 관련 기록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용산 이전, 부정·특혜 채용, 이태원 참사, 해병대 수사 외압 사건, 명태균 게이트, 대왕고래 프로젝트 등 각종 의혹에 대해 그동안 은폐된 사안들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관련해 내란죄와 권력남용, 각종 비위 수사가 앞으로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실 실무담당자였으며 과거 대통령실 비리 관련 기록 무단 유출로 논란이 있었던 인사가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된다면 12.3 비상계엄 기록을 비롯한 중요 역사 기록물의 온전한 보존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크게 우려된다.
최대 15년(사생활 관련 정보일 경우 최대 30년) 동안 비공개할 수 있는 대통령기록물 보호기간 지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건별 기간의 검토는 대통령기록관과 대통령실 실무자들이 논의해 분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임기 내내 ' 향후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될 예정이기에 비공개한다'는 황당한 논리로 여러 정보공개 소송에서 전부 패소해 왔던 대통령비서실 기록담당 출신이 대통령실에 과도한 비공개를 하지 못하게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고 공정하게 이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 후보자가 지금 상황에서 이관의 총책임자를 맡는 것은 대통령기록관 및 이관 절차의 신뢰성과 전문성,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파면된 대통령의 기록을 제대로 보존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그리고 대통령기록이 과도하게 봉인되지 않고 시민들의 품으로 갈 수 있기 위해, 정 후보자는 자신의 자격을 돌아보고 사퇴하여야 한다.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다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러한 부적절한 인사를 임명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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