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오후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경찰 병력이 여의도 국회를 에워싸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유성호
- 12월 3일 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전혀 상관없는 프로그램에 자막으로 '비상계엄 선포'라고 떠서 '몰래카메라인가?' 하던 중에 기자들로부터 계속 전화가 왔다. 그 다음에 채널을 돌려가며 상황을 보는데 TV조선에서 '국회에 국회의원들이 지금 못 들어가고 있다. 아마 비상계엄 포고령에서 정치 활동 금지라는 내용이 있어서 그에 따른 조치인 걸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마침 한 기자한테 전화가 와서 '이런 보도가 나가는데 명백한 오보다. 다른 기자들에게 이렇게 보도하면 안 된다고 알려달라. 국회는 비상계엄을 선포해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기관이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를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관이 국회이고, 그러려면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막는 것 자체로 중대한 헌법 위반이다. 포고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공유해달라'면서 밤을 보냈다."
- 그리고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국회 쪽 법률대리인단이 됐다.
"제가 헌법전문가이고 헌법재판 사건도 제법 해서 연락 올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고, 그러면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청래 법사위원장을 만났더니 총괄을 맡아달라고 해서 고민했다. 제가 변호사 경력은 길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커다란 사건의 대리인 구성을 법원장 출신이라든가 유명한 변호사로 하게 되면 중요한 헌법적 관점을 놓친 채 진행될 수 있다. 그러면 제가 중심을 잘 잡고 가라는 소명이겠거니 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맡았다.
그 다음 요청은 '팀을 구성해달라'였는데, 더 부담이었다. 일단 제가 좋아하고, 실력도 제일 좋고 믿을 수 있는 장순욱 변호사가 떠올랐다. 장 변호사는 판사 출신이고 변호사 경력도 많으니 증거조사 부분은 아예 맡겨도 됐다. 또 아주 성실한 사람들로 팀이 만들어졌다. 정말 팀워크가 좋았다. (탄핵심판 기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에 모여서 3시간씩 회의를 했고 증거조사팀과 본안팀으로 나눠서 증거조사팀은 장 변호사, 본안팀은 저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영상 공개 없었다면 설득력 떨어졌을 것… 전 국민 다 봤다"
- 사실상 첫 기일이었던 2차 변론 PPT가 화제였다.
"전 국민이 다 보는 재판이라는 점을 계속 염두에 뒀다. 재판부 설득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이 사안이 어떤 사안이고 대통령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국민 눈높이에서 잘 설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쉽고,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헌정질서, 국헌문란 등을 굉장히 커다란 일로 이야기하지 않나. 정작 그게 무엇인지는 법률가한테 물어봐도 막연하다. 국헌문란이 중대한 범죄, 중대한 헌법 위반인 까닭은 단지 헌법이 최고법인데 위반해서, 국가기관을 침범해서가 아니다. 헌법은 우리를 지키는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을 가장 해로운 방법으로 붕괴시키는 것이 국헌문란이고, 중대한 범죄이자 중대한 헌법 위반이다. 이걸 막지 않으면 또 다른 권력자가 비슷한 행위를 할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다시 한번 우리와 자손들의 자유가 침범당한다. 지금 막지 않으면 큰일이다. 그것이 헌법의 기능이다. 이 설명을 하고 싶었다."
- 박근혜 사건과 다르게 이번에는 전체 변론이 유튜브로 공개됐다. 부담스럽진 않았나.
"그렇지는 않았다. 국민들이 혹시나 영상을 볼 기회가 있다면, 헌법을 좀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교육자료가 됐으면 했다.
또 헌재가 전체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이 헌법재판의 설득력은 상당히 떨어졌을 거다. 상대방(대리인단)도, 피청구인 스스로도,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을 충분히 밝힐 기회를 줬고 영상이 국민 모두에게 전달되는 통로였다. 적법절차 원칙이 굉장히 중요했고, 헌법재판의 결론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중요한 포인트였다는 점에서 (영상 공개는) 꼭 필요했다. 다만 변론준비절차는 양측이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지 협의하는 과정인데 그것까지 공개되니 저쪽에서 선동의 장으로 활용했다. 공개할 부분과 하지 않을 부분을 나누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맨날 우는 사람 아닌데…" 그가 울컥했던 이유

▲"(경고성 계엄은) 원래 논박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하지만 국민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방치할 수 없었다. 또 선거 부정은 쟁점이 아니었다. 그런데 가만 놔둘 수 없었다. 국민들이 점점 부정선거 주장에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지식인들조차."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의 국회 측 대리인단을 총괄한 김진한 변호사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이정민
- 윤 대통령 쪽이 '경고성 계엄'을 운운하고 부정선거에 하이브리드전까지 말하는 모습은 재판관을 설득할 목적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상대방으로서 여기에 논박을 해야 했는데.
"(경고성 계엄은) 원래 논박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너무나 비헌법적인 이야기였고,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조차 너무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하며 들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그냥 방치할 수 없었다. 언젠가 제가 헌법 위반의 중대성에 관한 PPT를 한 다음 어느 기자가 전화해서 '감사하다. 이번 PPT를 보고 역시 (윤 대통령은) 탄핵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더라. 그래서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라면 전문성이 있는 분인데 왜 이제야 느꼈냐'고 물었더니 '저쪽에서 계속 저런 얘기를 하니까 헷갈린다'더라. 그러니 국민들은 얼마나 더 헷갈리겠나.
더군다나 헌법 전문가라는 분들이 글 쓰고 인터뷰하면서 '대통령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 상황이니까, 우리가 재판과정에서 국민들을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에 경고성 계엄 이런 부분은 따로 떼어냈다. 진술보다는 효과적인 PPT로 했고, 저쪽이 하도 엉뚱한 비유를 들어서 공격하니 우리도 '맥베스가 왕을 칼로 찌르고 5분 있다가 다시 빼라고 해서 뺐는데 무슨 죄라고 하냐고 주장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또 선거 부정은 쟁점이 아니었다. 만약 선거 부정이 만연했다면 수사와 재판을 통해 교정되어야 하는데 군 병력을 선관위에 침입시킨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가만 놔둘 수 없었다. 국민들이 점점 부정선거 주장에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지식인들조차. 본격적인 문제를 제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거 부정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대통령이고 권력이다. 선관위야말로 선거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기관인데 지금 거꾸로 권력자가 선관위에 선거 부정 혐의를 뒤집어씌워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
직접 나와 '부정선거' 꺼낸 윤석열...국회측 "기이하고 무책임" https://omn.kr/2byhr).
효과가 있었는지, 당시 대통령 윤석열이 출석한 첫 기일이었는데 '제가 음모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팩트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가보라고 했다'고 하고, 대리인단의 톤도 낮아지더라. 아마 선거 부정 주장이 본인에게도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피청구인 스스로 볼륨을 조절한 것 같다. 그래도 계속 그 주장이 나와서 이원재 변호사가 증인신문을 제대로 준비해서 상대방을 공박했다."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제1경비단장이 2025년 2월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 '국회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지시를 증언한 조성현 대령(수방사 1경비단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재판 후 재차 소회를 밝히며 눈물도 보였더라.
"조성현 대령이 아니었다면, 그와 같은 군인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위험했다. 부하를 지키고자 하는 지휘관의 마음, 시민들도 지켜야 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군인으로 평생 살아온 사람이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갈등을 이겨내게 만들었다. 그 결단이 너무 고마웠다. 그들이 혹시나 잘못된 길로 갔다면 순식간에 상황이 뒤바뀌고 우리나라 헌법은 거기서 무너져버릴 수 있었다. 심한 갈등 속에서 그 판단을 해줘서 꼭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 대령 이전에 이진우 전 사령관 증인신문을 보며 깊은 연민을 느꼈다. 동생 같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 평생 군 복무를 열심히 했던 사람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서 구속됐다. 또 증언을 들어보니까 나름 균형을 지키려고 애를 썼던 측면도 있더라. 그게 안타까워서, 헌법에 규정된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무시하고 명령을 내린 권력자들에게 여러 감회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불행한 군인'이란 표현을 썼다. 그런데 굉장히 반발하더라. 이 전 사령관도 처음에는 반성하는 입장이었고 수사기관에서도 그런 진술을 했는데, 구도가 출렁인다고 생각하니 입장을 바꾼 걸로 보였다.
반면 조 대령은 훨씬 더 당당하게 진실을 밝혔고, 처신도 너무나 용감해서 꼭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는 울컥했다. 하지만 밖에 나왔을 때 눈물은, 사실 그날 바람이 많이 불고 날이 차서 글썽글썽한 거였다. 그런데 '눈물을 보였다'는 동영상이 나오면서 '울보 변호사'가 됐다."
- 선고 날 장순욱 변호사랑 포옹하면서는 안 울었나.
"그때는 안 울었다. 제가 맨날 우는 사람은 아닌데(웃음), MBTI 검사를 해보면 아마 F는 확실할 것 같다. 감정이 풍부하긴 하다."
화제의 최종변론, 사실은… "오디션 합시다"

▲"제일 자랑스러운 부분이 최종변론 기획이다. 제가 좀 혼날 각오를 하고 '다양하게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각각 원고를 읽고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지적하면서 키워달라고 했고 다들 고쳐줬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건 국회 대리인단 총괄을 맡은 김진한 변호사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 최종변론도 화제였다. 민주공화국과 헌법의 가치와 원칙만이 아니라 군인 아들을 둔 아버지의 걱정, 아이들과 역사, '시인과 촌장'의 노랫말까지 언급했는데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제일 자랑스러운 부분이 최종변론 기획이다. 우리는 항상 저쪽이 언제든, 어떻게든 소송을 파탄시켜 정당성을 떨어뜨리는 시도를 하리라고 우려했다. 그런데 변론 막바지에 문형배 재판관이 '다음 변론에서 중간 정리를 하면 좋겠다'고 하기에 '재판부는 상대방의 최종변론 거부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렇다면 실질적인 최종변론으로 준비하자'고 계획해서 그동안 못했던 쟁점 주장 PPT를 하고 김이수 대표가 마지막 발표를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저쪽에서 최종변론에 순순히 응하더라. 또 박근혜 탄핵사건에선 최종변론에 1시간을 줘서 우리는 거기에 맞추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저쪽이 '2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문형배 재판관이 '그러면 여기(국회 쪽)도 2시간 하세요' 했다. 고민이 시작됐다. '이미 최종변론을 했는데 같은 내용을 반복하면 국민들한테 예의도 아니고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어떻게 채우지?'
그런데 저는 예전부터 대표 세 분(송두환, 김이수, 이광범)만 하면 너무 밋밋하겠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문제, 헌법을 지키는 문제는 다음 세대한테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또 거리에서,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분들의 구성을 봐도 젊은 여성이 많다. 그들의 목소리를 담기에는 세 분 대표만으로는 상징성이 부족하다 싶어서 젊은 사람들을 넣고, 여성 변호사들도 같이 최종변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변론) 시간이 탁 늘어나니까. 제가 좀 혼날 각오를 하고 '다양하게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 왜 혼날 각오까지 했나.
"불쾌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다들 흔쾌히 동의해서 제가 '대표 세 분 제외하고 나머지는 오디션 합시다' 했다. 최종변론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각자 원고를 보내라고. 대표까지 총 17명인데 모두 다 사실은 참여하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다 할 수 없으니까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관점, 개인적인 이야기,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각각 써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탄핵심판에 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다 비슷하다. 비상계엄이 느닷없이 있었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고, 헌법을 사랑한다고 끝난다. 이대로면 8명이 다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아무런 설득력이 없고 지루한 변론이 된다. 그런데 도착한 원고들에서 그런 방향이 느껴졌다. '또 중복되고 있구나.' 그래서 각각 원고를 읽고 제가 거기서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여태까지 하지 않았거나 설득력 있는 부분, 국민에게 감동 줄 부분을 지적하면서 키워달라고 했고 다들 고쳐줬다."
- 반면 대통령 쪽 대리인단에선 김계리 변호사의 '저는 계몽됐다'는 말이 주목받았다.
"그쪽 주장은 우익들, 어쩌면 극우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호소력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변론을 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변론을 하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무너뜨리는 변론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저쪽 변론 중 일부는 그런 변론이었다. 선거 부정이라든지, 계몽령이라면서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는 변론들은 헌법에 대한 국민들의 신념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변론이다. 더군다나 온 국민이 보는 변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변론을 해선 안 됐다."
[인터뷰 ②]"내란죄 철회 입구 넘는 순간… 이기겠구나"로 이어집니다.
▲국회측 변호인단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이 선고 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영민, 전형호, 이원재, 김현권, 성관정, 장순욱, 이광범, 김정민, 김이수, 김남준, 송두환, 서상범, 박혁, 김진한, 김선휴, 이금규, 권영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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