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0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돌입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강당에서 긴급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있다.
권우성
전공의들이 병원을 뛰쳐나가고, 의대생들이 학교를 떠난 지 꼬박 1년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의료가 붕괴할 것이라 걱정했고, 응급실 뺑뺑이로 고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 지면을 수놓았다. 동시에 사람들은 당연히 그로 인해 죽는 사람이 크게 늘었으리라 짐작했다.
심정지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와 심폐소생술을 받고 생명을 구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의료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 밖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5~10%에 불과하고, 병원 내 심정지라 해도 20% 내외에 그친다. 그럼에도, 의료와 생명 구조의 이미지는 대중의 인식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의료인 파업의 역설: 사망률이 왜 늘지 않았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의료인 파업과 사망에 관한 연구 결과들은 상식을 뒤집는다. 의사의 의료가 멈춰도 죽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는다. 즉, 의료인이 파업하더라도 사망자는 늘지 않는다.
의료인의 파업 문제는 생각보다 학술적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 그리니치대학의 라이언 에섹스 박사는 이 주제를 집요하게 탐색해 온 드문 연구자 중 한 명이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2021년까지 출간된 다양한 학술문헌을 검토하여 의료인 파업의 건강 영향을 종합한 연구(
의료 파업이 환자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관찰 연구의 체계적 검토 및 메타 분석)에 따르면, 의료인의 파업이 병원 내 환자사망률 증가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0년 의사 파업의 영향을 분석한 연구(
의사들의 파업이 의료기관 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는 파업 기간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2024년 의료대란의 영향을 분석한 최근 연구(
전공의 진료중단이 한국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2024년)에서도 해당 기간 사망이 증가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왜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걸까? 완전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지만 하나하나 검증해야 할 몇 가지 설명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 설명은 병원들이 전문의, 중증응급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진료 효율성이 올라간 덕분에 이런 큰 난리에도 환자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갈등을 빚어온 정부와 의사 모두가 이 결과를 자신들의 노고로 돌릴 수 있는 해석이기도 하다.
대형병원 환자들의 숫자는 줄었지만 중증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의료 대란 상황에서 실제로 많은 의료진이 평소보다 더 높은 업무를 부담했을 것이다. 전공의가 '배우는 중인 의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진료의 주체가 전공의에서 전문의나 교수로 바뀌는 상황은 어느 정도 의료대란의 영향을 완화했을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의 지식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의료진의 노력만으로 의료대란으로 인한 사망률 증가가 완전히 상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다 타당한 설명은 의료대란으로 인해 일부 환자들은 더 위험해졌지만, 또 다른 일부는 오히려 위험이 감소했을 가능성이다.
과잉의료의 함정: 더 많은 치료가 더 좋은 것은 아니다

▲ChatGPT를 이용해 생성한 과잉의료 이미지
ChatGPT 생성
오히려 의료서비스 제공량이 감소하면서 환자에게 실제로 이익보다 잠재적 위험이 더 컸던 불필요한 의료행위가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의인성(의료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 감소했을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이 기존의 지식과 더 부합한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료서비스가 도움도 되지만 해로울 수도 있는 양날의 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마취시켜 배를 여는 일이나, 심장혈관에 가는 관을 집어넣어 조작하는 일에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복잡한 치료를 받기 전에 치료의 목적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상세히 적힌 동의서에 서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환자가 시술 또는 수술을 받은 결과 이득보다 손해가 클지는 미리 알기 어렵다. 물론 명백하게 구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 대부분이 마주하는 현실은 회색지대에 놓여있기 마련이다. 특정 시술이나 검사가 환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할지는 사전에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래를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의료체계의 구조적 경향이 작용하곤 한다. 현대 의료체계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검사와 시술에 따른 보상이 더 크고, 의료소송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도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확률이 반반이라면 대체로 의료행위를 '하는 쪽'으로 결정이 기울기 마련이다. 그 결과 실제로는 환자에게 이익보다 손해가 클 수 있는 의료서비스들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미국 하버드대학 의료정책교수인 아누팜 제나 박사도 흥미로운 연구 방법으로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전국 심장중재학회 기간의 급성심근경색 사망률). 그는 많은 심장전문의들이 학회에 참석하느라 병원을 비우는 전국 심장중재학회 기간을 '자연적으로 발생한 실험 상황'으로 활용했다. 예상과는 달리, 전문의가 부족한 학회 기간에 입원해서 심장중재시술을 받지 못한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사망률이 다른 시기에 입원한 환자보다 오히려 낮았다.
이 정도 결과로 의료가 위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나 박사가 얻은 결과는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일부는 관상동맥중재술을 받는 대신 내과적으로 치료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들 환자의 일부는 관상동맥중재술을 받는 것의 이득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이나 합병증보다 크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과잉 의료'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의사 개인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려는 의도로 시술이나 검사를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환자에게 도움보다 해를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숫자 너머의 진실: 의료대란이 심화시킨 건강불평등

▲2024년 6월 27일 서울의 한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집단 휴진에 돌입한 가운데 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정민
의료서비스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효과가 확실한 의료서비스도 있지만 적지 않은 의료는 회색 지대에 있다. 하는 사람이 절반, 하지 않는 사람이 절반이어야 하지만, 앞서 설명한 이유로 인해 한국 의료는 '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익보다 손해가 큰 의료서비스가 생기는 이유다. 건강검진으로 아무런 증상이 없는 담석이 발견되었는데, 그 돌을 제거하기 위해 내시경 시술을 한 결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면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의료서비스가 우리 의료체계 곳곳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가정이 맞다면, 의료인의 파업에도 사망률이 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상반된 효과가 작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필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사망률이 증가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의료서비스를 피하게 된 사람들의 사망률이 감소하여 서로 상쇄되는 효과가 나타났을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영향이 사회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을 가능성이다.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은 취약계층은 필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사망률이 증가했을 수 있는 반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은 오히려 불필요한 의료로부터 보호받아 사망률이 감소했을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의료 대란은 건강 불평등을 더욱 심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의료대란으로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결과는 다행스러워 할 일이라기보다는 의료인 파업 사례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에 가깝다. 대부분의 경우 의료인의 파업은 사망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가 언제나 사람을 살리고 있을 것이라는 불안정한 믿음을 잠시 내려놓고, 사망률 통계 이면에 있는 복잡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의료대란으로 인해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고통받은 사람들과, 불필요한 의료로부터 보호받은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한 영향에 더 주목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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