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5일 ‘내란수괴 윤석열 대통령 체포, 구속’을 촉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앞 도로에서 밤샘 농성을 한 노동자, 시민들이 체온유지를 위해 은박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다.
권우성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이나 하나의 기관이 이룩한 성과로 축소할 수 없다. 4.19는 5.16으로 배신당했고,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에 암살을 당했지만 신군부에 의해 서울의 봄은 좌절되었고,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이룩했지만 노태우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역사를 경험했다. 그만큼 찬란한 시민 항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완벽한 승리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5.16 군사정변이나 12.12 군사반란에 동원된 군인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많은 병력은 아니었다. 곳곳에서 자기 자리에서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방기하면서 목숨을 걸고 정권을 탈취하려는 정치군인들에게 민주주의를 유린당하고 말았던 사건들이었다. 이번에 내란이 실패한 것은 윤석열이 뇌까린 것처럼 동원한 군인의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지난 시기 민주주의를 켜켜이 지켜온 역사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기제로 작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계엄이 대통령 담화를 통해 선포되자 민주 시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국회로 달려갔다. 국민저항권의 시작이었다(국민저항권은 전광훈씨가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숭고한 단어다). 국회의원들은 너나없이 뛰어와 국회로 집결했다. 국회의장도 담을 넘었다. 시민들은 밖에서 군용차량을 몸으로 막았고, 국회의원 보좌진은 국회 문을 걸어 잠그고 결사항전을 했다.
이뿐이 아니다. 군경은 소극적으로 저항했다. 평생 블랙요원으로 활약한 국정원 요원은 주요 인사 체포를 명령하는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였다.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은 서강대교를 넘지 않았다. 한강 도하는 내란의 실행 여부를 판가름하는 루비콘강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헌법 재판관들은 선고문에서 국회의 신속한 비상계엄해제요구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707특임 대원 하나는 계엄령이 해제되고 시민들 앞에서 연신 머리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이번 12.3 계엄 사태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우리 군인들이 시민을 향해 총을 쏘지 않을 것이란 최소한의 믿음을 갖게 해준 장면이었다.
물론 고비도 많았다. 수많은 장군들과 특임단장은 내란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따랐다. 경찰 수뇌부는 시민들을 가로막았고, 특수 부대원들은 적군을 무찌를 때 써야 할 무기들을 들고 국회 유리창을 깨고 침탈하였다.
이뿐이 아니다. 이 나라의 국무총리는 탄핵 심판을 막기 위하여 국회가 추천한 헌법 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는 위헌적 망동을 저질렀다. 정상적인 헌법 질서의 작동을 노골적으로 막은 내란 행위인 것이다.
한덕수 총리는 헌재가 최종 결정을 내렸음에도 아직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에게도 국회가 지명한 헌법 재판관을 거부할 권한을 준 적이 없다. 이렇게 헌법을 모욕한 세력은 끝까지 발본색원하여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있다. 헌정 질서 내에서 내란 세력을 척결하고 새로운 권력을 세울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누구 하나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모두가 잘했고, 그래서 더욱 값진 승리이다. 이제 피를 흘리지 않고도, 피를 먹고 자라는 민주주의란 거목을 키우고 지켜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지난 4개월간 민주주의 원상 회복력 입증했다"고 타전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세계에 자랑해도 된다.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만끽할 권리가 있고, 이번에 이것을 증명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광장을 지킨 시민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오는 봄을 시샘하듯 늦은 눈이 오던 어느 날, 광장에는 은색 망토들이 눈보라를 이긴 매화꽃처럼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활짝 웃는 웃음 속에, 손에 든 야광봉 속에, 함께 부른 '다시 만난 세계' 노래 속에 민주주의란 봄꽃이 자라고 마침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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