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06 17:23최종 업데이트 25.04.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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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권한대행, 탄핵 인용 결정문 낭독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2월 평온한 겨울밤의 정적을 깨뜨렸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시민들의 적극적 저항과 국회의 빠른 대응을 통해 두 시간 만에 끝났을 때, 그가 권좌에서 물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내란 획책으로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책임은 길게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측과 달리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 탄핵이 이뤄졌고, 지난한 시간 끝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적 힘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윤석열 내란은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극 대응해야 할 어려운 과제들을 남겼다.

우리 안의 극우 세력

K-민주주의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가 이번 내란을 겪으며 목도한 충격적인 것은 어디서도 유래를 찾는 것이 힘든,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 맹목적 극우주의의 실체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극단적 이념에 기반을 둔 우익 집단이 폭력을 불사하며 사회 안정을 위협했던 시기가 있었다. 독재와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민주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익 세력은 점차 힘을 잃었고 형식적으로라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보수 세력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윤석열 내란이라는 극단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법과 민주주의 제도를 무시하고 폭력적 행위를 꺼리지 않는 극우 세력의 존재였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 극우 세력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유럽 등의 여러 지역과 국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급격한 국제환경 변화에서 유발된 경제적 위기 상황에 직면한 사회 계층이 세계 곳곳에서 크게 늘어났다. 이들 계층 사이에서 기존 정치가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불만이 확산되면서 극우 세력이 사회 위기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극우, 포퓰리즘 전략으로 이들을 파고들었다. 이를 통해 극우 세력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고, 독일 등의 국가에서는 기존의 정당을 대체하는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또한 2000년대 초, '태극기 부대'와 같은 극단적 보수 세력이 존재를 드러냈다. 수적인 면에서나 영향력 측면에서 사회적 우려가 있었지만, 이들을 사회의 기본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집단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목격한 우리 사회의 극우 세력은 극우주의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넘는 양상을 보였다. 대체로 극우주의는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고 자신의 민족,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외부에 대해 배타적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겪은 우리 사회의 극우 세력은 이념적 갈등에 뿌리를 둔 적대감을 바탕으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정치집단, 개인에 대해 극단적 혐오와 거부감을 드러낼 뿐 아니라 법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기본 질서를 거부했다. 더 나아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일부 국가기관을 '사회주의 좌파'라고 낙인찍고 위협하며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다. 극우 세력의 대표 주자인 역사강사 전한길은 "계엄은 국민을 일깨우기 위한 계몽령"이라는 괴상한 논리를 펴며 계엄을 정당화했다.

그렇지만 그를 비롯한 극우집단이 내세우는 "북한과 중국의 사주를 받은 반국가 세력이 국가를 팔아넘기고 적화 통일을 꾀한다"라는 주장은 오래 전, 고 김대중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왔던 1990년대 후반에 횡행했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공산화된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보수 세력이 움켜쥐고 있던 권력이 민주세력으로 넘어가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에서 수십 년 전에 나왔던 주장을 계몽령이라는 이름으로 반복하며 사회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 대응 필요

윤석열 탄핵을 반대했던 극우세력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직후인 4일 오전 한남동 사저 인근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박수림

민주주의에 기반한 법과 질서를 부정하는 극우 집단의 충격적 행태가 보수 세력이 정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예외적으로 나타난 모습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 비례해 이를 강하게 비판하는 극우 집단의 정치 세력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지난 4.2 서울 구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외국인 불법체류자 추방'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극우 경향의 자유통일당 후보가 32%를 득표했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보수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던 선거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외국계 구성원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3년 갤럽조사 결과, 이민자 증가가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이 60% 이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극우주의 문제가 사회의 안정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빠른 인구소멸 문제의 대응 측면에서 사회구성원의 다양성 확대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에서 극우주의 문제로 전체 사회가 갈등을 겪지 않도록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극우 집단보다 더 위험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보수 정치 세력

윤석열 내란 상황에서 드러난 극우 세력 이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또 다른 충격적인 요인은 우리 사회의 보수 정치 세력이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민주주의에 기반한 법과 절차는 중요하지 않으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고, 필요시 스스로 극우세력화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내란이 일어난 직후,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국힘 의원이 국회의 계엄 해제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을 뿐 아니라 윤석열 탄핵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탄핵이 가결된 후에도 국힘 주류 세력은 극우 세력의 계몽령 주장에 동조하며 대통령을 적극 옹호했다. 심지어 헌재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탄핵에 동조한 자와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목소리가 득세하고 있는 반헌법적 국힘의 다수 의원들에 대한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한가?

윤석열 내각에 참여했던 정치권력이 취한 행동을 통해서도 보수 엘리트 정치 세력의 민주주의에 대한 빈약한 인식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한덕수 총리는 '계엄을 반대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윤석열 탄핵 이후 헌재의 빠른 탄핵 심판 착수에 필요한 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 경제적 충격을 이유로 역시 계엄을 반대했다고 주장하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또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내란을 자행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조사가 원활히 이뤄지게 하는데 필요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내란으로 악화된 원화-달러 환율 등락 상황에서 최상목이 미국 국채를 사며 자신의 실속을 챙긴 것은 국가 위기 해결보다 자신의 주머니를 더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일부 엘리트의 일면을 보여주는 정말 치가 떨리는 행태였다.

오래전부터 극우 정당의 부상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극우주의 문제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고 있는 것은 정치권력을 비롯한 사회의 주류 세력이 극우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법과 제도를 통해 이들에 적극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있었던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AfD)이 20%의 지지율로 제2당이 되면서 큰 논란이 있었지만 기성 정당들은 이들에 대해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보수 정치세력은 스스로 세운 대통령으로 인해 발생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극우 세력으로 인해 악화되는 상황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극우 세력과 손잡는 행태를 보였다. 평범한 일반인의 다수는 대통령 파면을 확신하며 민주주의와 일상의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민주주의 사수, 국익의 문제는 방관하고 오로지 자기 진영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집단, 이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 정치 세력이다. 이들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협받지 않도록 전체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대응이 요구된다.

무너진 민주주의 바로 세우기 위해

세상은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윤석열 내란 상황에서도 세상을 바꾸는 평범한 시민들의 힘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윤석열 내란 극복의 경험이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깨어있는 시민을 육성하는 살아있는 역사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무너진 민주주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내란의 적극 가담자, 동조자뿐 아니라 내란 수습을 지연시키기 위해 자신의 지위와 힘을 적극 활용했던 이들에 대한 철저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들은 최전선에서 사회의 근간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매진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논의를 통해, 법적 처벌의 정도와 무관하게, 그들의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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