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동네거리에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철야 집회 후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세습 중산층 사회>(2020), <이탈리아로 가는 길>(2023)을 쓴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 역시 양극단 세력들이 힘을 얻으면서 온건파의 공간이 사라진 것이 향후 한국 사회 안정화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 조 실장은 "윤석열의 계엄을 단순한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극단주의 유튜버들의 성행과 결부해 이해해야 한다"라며 "이는 좌우 모두에 해당한다. 과거 정통적인 보수·진보가 아니라 주변부에 머물던 전광훈·손현보·전한길·김어준 같은 사람들이 온건파의 퇴출로 무주공산이 된 주류 자리를 새롭게 차지하면서 기존의 정치 질서 자체가 무너지는 악순환"이라고 했다.
조 실장은 특히 정치권이 답보 상태에 빠진 한국 경제와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게 되자, 그 손쉬운 대안으로써 극렬 지지층에 기대는 편을 택하고 있다고 짚었다. 조 실장은 "한국의 진보·보수 모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안정적으로 지지 연합을 유지할 수 없게 됐고, 결국 유튜버들에 의존하게 된 것"이라며 "양당 모두 가장 중요한 스윙보터, 즉 중하층을 잡을 수 없으니 포퓰리즘이라도 찾아 대중 동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될수록 정치 팬덤에 시간과 자본을 쓸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채 정치에 경제·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중하층 사이의 간극은 커진다.
<K를 생각한다>(2021)의 저자 임명묵 작가는 더 구체적으로 "민주당이 자신의 지지 기반인 수도권 자산 보유 중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건드릴 정도의 사회 대개혁을 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목했다. 임 작가는 "지금의 포퓰리즘 정서와 분노는 2014년 '헬조선'이 나왔을 때부터 고조돼 왔고,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를 통해 이미 한번 표출됐다고 볼 수 있다"라며 "하지만 이후 이 불만이 해결되기는커녕 도리어 민주당 정부가 자산 격차를 키웠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시스템과 정상성의 표준이 촛불을 들고 나갔던 이들을 배반한다는 불평등의 감각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임 작가는 "87 체제의 승자는 결국 노동자나 지방의 서민이 아니라 수도권에 자산을 갖고 정상가족을 꾸릴 수 있는 중산층이었고, 기존의 민주당 정치는 그들의 혜택을 늘려오는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라며 "하지만 점점 그 정상성에 진입하는 경로는 좁아지고 있고,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청년층이나 노년층은 사회에서 배제됐다는 감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임 작가는 우크라이나를 참고할 사례로 들었다. 임 작가는 "우크라이나에서도 2004년 오렌지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등 중산층이 주도하는 시민혁명이 10년의 시차를 두고 두 번 일어났다"라며 "하지만 이후 도시 중산층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국가를 운영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회는 정치적 피로감에 빠지게 되고, 2019년 젤렌스키라는 완전히 비주류 정치인이 새롭게 권력을 쥐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했다.
임 작가는 다만 이같은 진보 진영의 기득권화와 그 틈바구니에서 약진하는 극우의 양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극우의 새로운 물결에 낡은 체제가 무너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정치적 기획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정환 교수 역시 "브라만 좌파가 되면서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민주당에서도, 독일 등 유럽의 진보 진영에서마저도 기득권 중산층의 정치만 반복되고 있다"라며 "이들이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않는 한, 중산층이 되지 못한 이들을 향해 끊임없이 손짓하는 극우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석열 탄핵을 환영하는 열기가 채 식지 않았지만, 8년 전 탄핵 이후 전개된 한국 사회를 살펴온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상황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적어도 극단에 휘둘리지 않고 지난 4개월간 시민들이 광장에 토해낸 질문들에 응답하려는 노력을 할 때라야, 가까운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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