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05 11:38최종 업데이트 25.04.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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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윤석열 대통령 '파면'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 선고를 했다. 탄핵 소추 111일, 변론 종결 38일 만이다. 사진은 지난 2024년 3월 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장관급 회의 개회식에 참석한 윤 전 대통령.연합뉴스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끝에 한국 사회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동일한 역사를 8년 만에 반복하는 출발점에 다시 섰다. 8년 전인 2017년 3월 10일에도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시민들은 오늘처럼 박근혜 대통령 파면 선고에 열렬히 환호하며 부둥켜안고 발을 굴렀다. 그때 과연 8년 뒤 이곳에서 같은 일이 되풀이될 거라 예상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윤석열 파면 8년 뒤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보다는 나아졌을까? 더 이상 헌재 앞에 자리를 깔고 새우잠을 자고, 거리에서 마주친 시위대끼리 서로 욕을 하고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가 됐을까? 그때쯤 우리는 스스로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었을까?


전문가들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징후는 감지됐다. 지난 1월 19일 윤석열 구속에 반발한 극우 세력은 새벽에 서울서부지방법원을 깨부수고 들어가 판사를 색출하러 다니는 초유의 폭동을 일으켰다. 폭력을 부추기는 극우 집회는 주말을 거듭할수록 세를 불렸고, 극단적 정치 유튜버들이 급증했다. 국회 탄핵안 가결 무렵 때만 해도 공고한 것 같았던 탄핵 찬성 여론(2025년 12월 12일 한국갤럽 조사 탄핵찬성 75% - 탄핵반대 21%)은 해가 바뀌며 점차 쪼그라들더니 선고 직전에는 탄핵찬성 57% - 탄핵반대 37%(2025년 4월 3일 한국갤럽 조사)까지 좁혀졌다.

이는 8년 전 박근혜 탄핵 직전의 탄핵찬성 77% - 탄핵반대 18%(2017년 3월 2일 한국갤럽 조사) 여론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국회에 무장한 군대를 투입한 윤석열에 대해서조차 대중의 판단이 하나로 모이지 못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말 괜찮은가. 파면은 했지만,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122일간 한국 사회가 새롭게 목격해야 했던 극우의 진전, 제도를 향한 물리적 폭력, 리더십의 와해, 그리고 도처의 혼란 근저에 켜켜이 쌓여있는 중산층 아래의 불만까지 함께 해소된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모두가 한마음이었던 8년 전 탄핵… 사회경제적 개혁 못해 극우 나왔다"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달 1일 부산 부산역 앞 '세이브코리아' 주최의 집회에 나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 사태를 두고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이라고 주장하는 등 대통령을 수호하는 발언을 했다.유튜브 '꽃보다전한길'

지난 1월 19일 서부지법 안으로 난입한 이들이 유리창과 집기를 모두 부수고 있다.락TV 유튜브 캡쳐

<촛불 이후, K-민주주의와 문화정치>(2020)를 쓴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전 국민적 기대를 받았던 민주당 정부가 사회 개혁에 실패하면서 8년 전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반환점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천 교수는 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 국면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원했던 건 비단 탄핵이나 정권 교체만이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사회 경제적인, 총체적 개혁이었다"라며 "하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당은 '조국 사태'로 인해 대중들에게 오히려 사회 불평등을 재확인시켰고, 부동산 자산 가격의 앙등을 유발하면서 촛불 연합의 해체를 야기했다"고 했다.

천 교수는 "2017년 탄핵 이후 2020년까지의 선거에서 표를 모두 몰아줬을 정도로 기대가 컸던 만큼, 민주당의 실패는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라며 "이것이 결과적으로 현재 극우 세력이 커나갈 수 있는 토양이 됐다는 걸 되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5년 만에 막 내린 촛불 민주주의>(2024)의 저자인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장도 8년 전 박근혜 탄핵 이후 들어선 민주당의 실패를 오늘날 대통령 탄핵 찬반 여론이 극명하게 갈라진 이유로 꼽았다. 정 원장은 "8년 전 박근혜 탄핵과 이번 윤석열 탄핵의 여론 차이를 만들어내는 집단은 보수층"이라며 "2017년 박근혜 탄핵에 찬성했던 보수가 민주당 정권에 대한 일종의 학습효과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정 원장은 "8년 전 탄핵에 찬성했던 보수층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 달리 '적폐 청산'보다는 '통합'을 훨씬 더 바라는 집단이었다"라며 "민주당은 촛불 국면에서 탄핵 찬성 보수층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집권 후 이들을 전혀 돌보지 않은 채 오로지 '적폐청산'에 매몰되면서 이들을 떨어져 나가게 했다"고 했다.

정 원장은 계엄 직후 탄핵을 바라는 국민 여론이 반대 쪽보다 월등히 높았다가 올해 들어 격차가 급감한 원인 역시 탄핵 국면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전략적 실책에 기인한다고 봤다. 정 원장은 "계엄 초반에는 진보·중도는 물론 보수층의 절반까지도 탄핵에 찬성하는 압도적 구조였지만, 민주당이 일부 코어 지지층이나 통쾌해할 만한 '내란죄 적용', '우두머리 구속', '국무위원 탄핵' 등에 경도되어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보수층의 반민주당 정서가 환기됐다"라며 "만일 민주당이 극단적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2017년의 '국정 농단' 때처럼 '국헌 문란' 정도의 프레임으로 탄핵 국면을 보다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면,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탄핵 선고를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불평등 해법 못 내놓는 정치, 극단 팬덤 의존…진보, 중산층 건드릴 수 있을까"

'박근혜 파면' 축하 촛불문화제지난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가운데,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구속” 등을 요구하며 자축하고 있다.권우성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동네거리에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철야 집회 후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세습 중산층 사회>(2020), <이탈리아로 가는 길>(2023)을 쓴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 역시 양극단 세력들이 힘을 얻으면서 온건파의 공간이 사라진 것이 향후 한국 사회 안정화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 조 실장은 "윤석열의 계엄을 단순한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극단주의 유튜버들의 성행과 결부해 이해해야 한다"라며 "이는 좌우 모두에 해당한다. 과거 정통적인 보수·진보가 아니라 주변부에 머물던 전광훈·손현보·전한길·김어준 같은 사람들이 온건파의 퇴출로 무주공산이 된 주류 자리를 새롭게 차지하면서 기존의 정치 질서 자체가 무너지는 악순환"이라고 했다.

조 실장은 특히 정치권이 답보 상태에 빠진 한국 경제와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게 되자, 그 손쉬운 대안으로써 극렬 지지층에 기대는 편을 택하고 있다고 짚었다. 조 실장은 "한국의 진보·보수 모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안정적으로 지지 연합을 유지할 수 없게 됐고, 결국 유튜버들에 의존하게 된 것"이라며 "양당 모두 가장 중요한 스윙보터, 즉 중하층을 잡을 수 없으니 포퓰리즘이라도 찾아 대중 동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될수록 정치 팬덤에 시간과 자본을 쓸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채 정치에 경제·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중하층 사이의 간극은 커진다.

<K를 생각한다>(2021)의 저자 임명묵 작가는 더 구체적으로 "민주당이 자신의 지지 기반인 수도권 자산 보유 중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건드릴 정도의 사회 대개혁을 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목했다. 임 작가는 "지금의 포퓰리즘 정서와 분노는 2014년 '헬조선'이 나왔을 때부터 고조돼 왔고,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를 통해 이미 한번 표출됐다고 볼 수 있다"라며 "하지만 이후 이 불만이 해결되기는커녕 도리어 민주당 정부가 자산 격차를 키웠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시스템과 정상성의 표준이 촛불을 들고 나갔던 이들을 배반한다는 불평등의 감각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임 작가는 "87 체제의 승자는 결국 노동자나 지방의 서민이 아니라 수도권에 자산을 갖고 정상가족을 꾸릴 수 있는 중산층이었고, 기존의 민주당 정치는 그들의 혜택을 늘려오는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라며 "하지만 점점 그 정상성에 진입하는 경로는 좁아지고 있고,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청년층이나 노년층은 사회에서 배제됐다는 감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임 작가는 우크라이나를 참고할 사례로 들었다. 임 작가는 "우크라이나에서도 2004년 오렌지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등 중산층이 주도하는 시민혁명이 10년의 시차를 두고 두 번 일어났다"라며 "하지만 이후 도시 중산층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국가를 운영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회는 정치적 피로감에 빠지게 되고, 2019년 젤렌스키라는 완전히 비주류 정치인이 새롭게 권력을 쥐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했다.

임 작가는 다만 이같은 진보 진영의 기득권화와 그 틈바구니에서 약진하는 극우의 양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극우의 새로운 물결에 낡은 체제가 무너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정치적 기획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정환 교수 역시 "브라만 좌파가 되면서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민주당에서도, 독일 등 유럽의 진보 진영에서마저도 기득권 중산층의 정치만 반복되고 있다"라며 "이들이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않는 한, 중산층이 되지 못한 이들을 향해 끊임없이 손짓하는 극우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석열 탄핵을 환영하는 열기가 채 식지 않았지만, 8년 전 탄핵 이후 전개된 한국 사회를 살펴온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상황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적어도 극단에 휘둘리지 않고 지난 4개월간 시민들이 광장에 토해낸 질문들에 응답하려는 노력을 할 때라야, 가까운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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