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지자 아이들 모두 박수를 치고 환호하고 있다.
서부원
50분의 수업 시간 중 절반이 남았지만, 교과 진도를 나갈 수는 없었다. 교육청이 공문에서 강조한 '민주시민교육'을 해야 할 시간이다. 우선, 윤 대통령의 파면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을 생각해 보고, 각자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을 서로 이야기해 보도록 했다.
"무도한 독재자를 시민의 힘으로 끌어내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승리죠."
"무지하고 무능한 검사 출신 대통령의 몰락이죠."
"우리나라에도 맹목적인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 세력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해 준 계기였죠."
"극우 종교 집단이 정치 세력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보게 됐죠."
"무속에 빠지면 약도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우리 사회 상식의 회복'
대입에 목매단 고등학생들도 지난 '12.3 비상계엄' 이후 벌어졌던 일들을 두루 꿰뚫고 있었다. 워낙 비상식적인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인식 속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토로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는 윤 대통령의 파면이 '우리 사회 상식의 회복'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윤석열' 하면 바로 떠오르는 공통의 이미지가 있다고 했다. 무능과 무지, 무책임과 일상적인 거짓말, 하다못해 음주, 격노 같은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 당장 후보 시절 손바닥의 '왕(王)'자는 잊히지 않는다면서도 무속과 극우, 혐오 따위의 거친 말들도 후 순위라고 했다.
아이들은 검찰총장과 서울대 법대, '9수'를 앞서 떠올렸다. 곧, 그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의 민낯을 보았다는 뜻이다. 수험생 중 0.01%만 합격한다는 서울대 법대 출신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재라며 그의 이력을 읊었다.
'윤석열'은 그들이 선망하는 모든 걸 함축한 이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두가 '윤석열'이 되기 위해 오늘도 카페인 음료를 마셔가며 밤낮으로 책과 씨름하고 있다. 그의 몰락은 아이들에게 엘리트, 곧 '사회지도층'이라는 명칭이 지니는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윤 대통령의 파면을 통해 '윤석열'로 대표되는 최고 엘리트 집단이 정작 우리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묻고 성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이들도 윤 대통령이 각자도생과 무한경쟁,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난 '독버섯'임을 깨닫고 있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결국 윤 대통령의 파면 이후 달라져야 할 학교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였다. 표현만 달랐을 뿐, 여전히 서열화한 학벌 구조의 톱니바퀴로만 기능하고 있는 공교육 체제를 '혁명해야' 한다는 걸로 수렴됐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한 공교육은 더는 의미 없다는 거다.
한 아이는 엘리트의 선의만 믿고 국가의 운명을 통째로 맡기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알게 됐다며 '민주시민교육'을 매조지었다. 지난 '12.3 비상계엄'을 국회에 버선발로 달려온 시민들이 막아냈듯, 대한민국의 주인은 엘리트가 아닌 '민주시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민주공화국은 엘리트의 '머리'가 아닌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장삼이사의 '가슴'과 연대를 통해 완성된다. 이 와중에도 일부 보수 언론에선 '탄핵 선고 교실에서 생중계 시청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갈등을 부추기려는 그들의 '몽니'가 안쓰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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