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03 12:22최종 업데이트 25.04.0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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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고율 관세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이날부터 미국은 한국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비롯, 캐나다와 멕시코 등 기존 우방국에도 예외 없는 관세를 적용하며 사실상 세계 경제와의 일방적 분리 수순에 돌입했다.

백악관은 이를 통해 수천억 달러의 세입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소득세를 대체하며 미국의 부채를 감축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이처럼 급진적인 관세 정책은 단순한 경제 전략이라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집착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 반복된 집착은 어디에서 연원한 것일까? 실마리는 트럼프가 유독 애정을 표해온 역사적 인물인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에게서 발견된다. 트럼프는 매킨리를 "자연스러운 사업가이자 미국을 부유하게 만든 대통령"으로 높이 평가하며, 자신 역시 매킨리처럼 관세를 통해 미국의 부흥을 이끌고자 한다고 공언해 왔다.

매킨리는 19세기 말 미국 제조업 보호를 위해 고율 관세를 도입했던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자였으며, '관세맨'(the tariff man)이라는 별칭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문제는 트럼프가 매킨리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정책의 맥락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에 있다.

트럼프는 정말로 매킨리의 정책을 계승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그 이름을 전략적으로 차용한 것에 불과한가? 이 질문은 이미 여러 언론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바 있다.

단선적이고 왜곡되어 있는 트럼프의 해석

<워싱턴 포스트>는 "왜 트럼프는 원조 '관세맨' 매킨리 대통령을 존경하는가"라는 기사에서 트럼프가 매킨리를 고율 관세의 상징으로 단순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매킨리는 재임 초기에 보호무역주의적 성향을 보였지만, 임기 말에는 '상호주의 조약'을 통해 외국과의 무역 장벽을 완화하려 했다. 즉, 그는 고립주의자가 아니라 국제 질서 속에서 전략적 조율을 시도했던 실용주의자였다는 것이다.

<포린 어페어즈>는 "매킨리에 대한 오해"라는 글에서 보다 근본적인 오독을 지적했다. 매킨리는 관세를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내정의 도구로 활용했을 뿐, 그것을 외교적 압박 수단이나 협상의 무기로 쓰지는 않았다. 반면 트럼프는 관세를 무기화하여 국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정책의 철학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트럼프가 정말로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을 이해했다면"이라는 <가디언> 칼럼은 보다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매킨리는 스페인-미국 전쟁 당시 전면전을 피하려 했고 식민지 확장보다는 자치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외교를 설계했다. 반면 트럼프는 그린란드 매입 제안이나 가자지구 개입 논의처럼 보다 공세적이고 확장주의적인 외교 전략을 선호해 왔다. 이러한 행보는 매킨리의 절제된 국제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궤를 그린다.

세 언론의 분석은 매킨리에 대한 트럼프의 해석이 얼마나 단선적이고 왜곡되어 있는지를 각기 다른 층위에서 드러낸다.

<워싱턴 포스트>는 매킨리의 정책이 단순한 보호주의에서 상호주의로 전환된 점을 짚고 트럼프의 일방적 고율 관세와 달리 매킨리는 전략적 유연성을 지닌 정치가였음을 강조했다. <포린 어페어즈>는 매킨리가 관세를 국내 산업 보호라는 내정적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상기시키고 이를 국제 정치의 압박 도구로 전용하는 트럼프의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른 정책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매킨리의 외교 노선이 신중하고 절제된 국제주의에 가까웠음을 환기시키고 트럼프의 팽창주의적 접근은 매킨리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세 매체는 정책의 형식, 기능, 철학이라는 세 축을 따라 트럼프의 역사 해석이 왜 설득력을 잃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요컨대, 매킨리에 대한 트럼프의 인용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정치적 도구에 가까우며, 그 허구성은 정치철학과 경제사의 시각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트럼프는 고율 관세를 통해 수조 달러의 세입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소득세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수입 자동차와 부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10년간 거둘 수 있는 세입은 약 6000억 달러에서 6500억 달러 수준에 그친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600억~650억 달러로, 트럼프가 주장한 '수조 달러'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추정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이 연구소는 모든 수입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연간 최대 7800억 달러의 세입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미국 연방 정부의 소득세 수입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결국 트럼프가 내세운 '관세로 소득세 대체'라는 구상은 경제적 현실보다는 정치적 메시지에 가까운 셈이다.

어떤 정책을 인용할 때는

2일(현지사간)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 밖에서 한 여성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깃발을 들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가장 가까운 무역 파트너를 포함한 전 세계 국가를 겨냥해 강력한 관세를 부과했다.연합뉴스

트럼프는 관세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매킨리의 이름을 자주 인용하지만, 실제 그의 정책 철학까지 계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매킨리는 단순한 관세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재임 중 고율 관세를 도입했지만, 동시에 상호주의 협정을 통해 무역 장벽을 조정하고, 외교에 있어서는 신중함과 절제를 중시했던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보호무역과 국제 협력을 병행한 유연한 실용주의자였다.

경제적 맥락에서도 트럼프의 해석은 문제가 있다. 노동경제학자 리처드 프리먼은 19세기 말 미국 경제가 이민, 자원, 기술, 인프라라는 네 가지 동력 위에서 급속히 성장하던 산업 초기 단계였다고 설명한다. 당시의 관세는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도구로서 일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완전히 다른 경제 구조 속에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얽혀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보호무역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어떤 정책을 인용할 때는 그 정책이 만들어진 시대적·구조적 맥락과 전제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매킨리의 이름이 자주 소환되지만, 그가 처했던 정치적·경제적 현실은 종종 생략된다. 트럼프가 계승한 것은 매킨리의 전체적인 철학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상징과 수사들뿐이다.

트럼프의 고율 관세 정책은 단순한 경제 전략이라기보다, 정치적 상징과 선택적 역사 해석이 결합한 하나의 메시지에 가깝다. 그는 매킨리라는 이름을 끌어와 자신의 정책에 정당성을 덧씌우려 했지만, 정작 그 이름이 담고 있던 철학과 맥락은 생략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왜곡이 단지 과거에 대한 오해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오늘날의 경제 구조, 특히 글로벌 공급망과 상호의존적인 무역 체계를 무시하고 있다. 그 결과는 미국 내 소비자 물가의 상승, 대외 관계의 긴장, 그리고 세계 경제 전체에 대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를 인용한다면, 그 의미를 현재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따지는 성찰이 함께 따라야 한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나 그 거울이 왜곡되면 과거는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 반사한다. 그래서 과거를 인용하는 정치에는 언제나 정밀함과 절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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