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경북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산불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재난 대응과 예방에 있어서 지역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교한 재난예방체계를 마련해도 정치와 행정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공백을 이웃 공동체가 채울 수 있다. 전기와 통신이 마비된 마을에서 이웃 주민을 대피시켰던 것은 평소에 알고 지낸 이웃과 공무원 등이 직접 찾아왔기에 가능했다.
임하면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본인 집도 피해를 입었음에도, 이웃 어르신을 대피시켰다. 자식들이 데리러 온다며 집에서 기다리던 어르신과 실랑이를 하면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재난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마을이라고 했다. 이웃사촌 미담을 전하는 것을 넘어, 주민공동체의 역할도 재난 대응과 예방 체계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재난 이후도 마찬가지다. 산불 재난 전후로 하루하루 급변하는 상황에서 행정의 대응이 늦을 수 있다. 산불 진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만난 안동시 남선면 여성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인근 농협에서 먹거리를 어느 정도 지원해 줬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인원이 늘어나면서 자체적으로 식사를 해먹기 어려웠다.
그런데 안동시 지정 대피소가 아니면 식사 지원이 안 된다고 한다. 안동시 지정 대피소는 대부분 시내에 있는 체육관이었는데 임하면은 주민들의 요구로 임하면 소재 복지회관이 추가로 대피소 지정을 받아서 삼시 세끼 공급을 받고 있었다.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임하면 사례를 공유하고 민원을 행정에 대신 전달했다. 행정에서는 안전 문제로 면 지역 대피소 지정을 하지 않았으나, 이장을 통해 의견이 들어오면 대피소 추가 지정을 시에 건의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끼리 서로 챙기고 돌보는 모습은, 행정이 비어 있는 틈을 주민공동체가 메우는 장면이었다. 주민공동체와 함께 재난 대응과 재난 이후 회복을 세심하게 소통하는 일은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마을의 회복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결된 사회의 힘을 믿는 녹색정치
이번 산불 재난을 통해 기후위기, 지역소멸, 재난예방체계 등의 다양한 과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재난으로 확인된 과제를 개선하고 재난 이후 일상을 회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자. 기후재난 시대, 다양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생태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자.
생태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어떤 개체 간의 관계성과 연결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재난 상황에서 나와 이웃,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 지방과 중앙, 인간과 자연, 뭇생명이 연결된다. 재난을 맞아 각자도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은 소수다.
녹색정치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결된 사회의 힘을 믿는다. 나의 이익만 내세우다간 공멸하며, 상호의존에 기반해 함께 사는 길이 나에게도 이롭다고 믿는다.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에서 더 많은 개인이 살 수 있으며,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가 재난 예방의 가장 큰 백신이다.
재난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재난 이후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길에 우리의 역량을 모으자. 산불 재난을 맞아 녹색정치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산불이 지나간 곳에서 벌써 농사를 시작하는 농민들을 보았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틔우는 이들에게 힘을 보태자.
▲허승규 / 녹색당 안동시 공동운영위원장
허승규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허승규 녹색당 안동시 공동운영위원장은 녹색도시 안동을 꿈꾸는 녹색정치 활동가입니다. 2018년, 2022년 두 번의 지방선거에서 안동시의원으로 출마해 각 16.54%, 18.00%를 득표했습니다. 2024년 총선에서 녹색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고, 다가오는 2026년 지방선거 세 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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