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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다크투어의 후원회원, 사무국장을 거쳐 지난 2월 대표로 선출된 김잔디 대표는 최근 ‘한강 작가의 4·3길’ 답사팀을 안내하는 등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황의봉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제주에 문학기행 붐이 일고 있다. 광주 5.18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와 더불어 제주4·3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강 소설의 대표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지난해 11월 제주작가회의와 제주문학관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작품 속 현장을 답사한 후 찾아오는 이가 부쩍 늘었다.
제주4·3 77주년을 앞두고 김잔디 제주다크투어 대표를 만났다. 4·3으로 상징되는 제주의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알리는 데 앞장서 온 그는 벌써 10여 차례나 '한강의 4·3길' 답사팀을 안내하는 등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주섬 도처에 산재한 4·3 유적지 등 다크투어 명소에 앞서 <작별하지 않는다>의 현장 이야기부터 들어보았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폐촌이 된 마을과 인선의 집 등이 나오는데, 표선면 가시리의 ‘새가름’으로 추정된다. 4·3 당시 50여 호 200여 명이 살았던 곳으로,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불을 질러 마을이 사라졌다. 김잔디 대표가 제주대 답사팀에게 설명하고 있다.
제주다크투어
이 소설은 주인공 경하가 제주가 고향인 친구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로 향하면서, 4·3 피해자인 인선의 어머니 정심을 비롯한 가족들의 비극적인 사연을 통해 4·3의 참상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우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주요 장소들이 어떤 곳인지를 물었다.
"한강 작가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기 위해 제주에서 2년간 살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작품 속에 나오는 장소는 가공의 공간이 아닌 실제 상황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의 주무대는 표선지역입니다. 작가가 소설에서 P읍이라고만 표현했지만 마을과 하천, 학교, 바닷가 학살터 등 묘사와 실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오늘날의 표선면 일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폐촌이 된 마을과 인선의 집 등이 나오는데, 이곳을 표선면 가시리의 '잃어버린 마을'인 '새가름'으로 추정합니다. 새가름은 가시천의 동쪽 일대에 형성됐던 마을로 4·3 당시 50여 호 200여 명이 살았다고 해요.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불을 질러 마을이 사라진 이후 복구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사람이 살지 않는 잃어버린 마을입니다.
현장에 가보면 사람은 살지 않고 비닐하우스만 보입니다. 집 주위에 심었던 대나무숲이 남아 있어 한때 마을이었음을 짐작게 할 뿐이에요. 마을 입구에는 잃어버린 마을이 된 유래를 설명하는 표석이 있지만, 이 마을을 폐허로 만든 가해 주체가 아예 언급돼 있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을 바로 옆에는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가시천이 있는데, 소설 속에서 경하가 눈발을 헤치며 인선의 집을 찾아가다 미끄러져 굴러떨어진 '건천'(乾川)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심의 부모가 총살됐던 학교 운동장도 주요한 배경이 되는 장소입니다. 소설에서 정심과 정심의 언니가 아버지, 어머니, 오빠, 8살 여동생의 시신을 찾기 위해 오후 내내 헤맸던 곳입니다. 4·3 당시 국민학교를 조사해 보니 표선국민학교가 수용소로 사용됐고 나머지는 모두 불에 탔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답사했던 제주작가회의에서도 지금의 표선초등학교를 소설의 배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후 첫 4·3 기념일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모살왓’으로 표현된 학살터는 표선해수욕장 서쪽에 펼쳐진 모래사장인 ‘한모살’로 추정된다. 4·3 당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던 곳은 표선면도서관 입구에 공터로 남아 있고 4·3 유적지 표지석이 설치됐다.
제주다크투어
소설에서 또 하나의 주요한 배경이 되는 곳은 '모살왓'이라는 바닷가 모래사장이다. 당시의 학살 장면을 소설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해거름에 트럭으로 두 대 가득 사름들이 실려와서. 못해도 백 명은 되실 거라. 군인들이 저 모살왓에 총검으로 네모지게 금을 그와나그네...(중략)...높은 사름 같은 군인이 무신 명령을 울르난, 금 안에 있던 사름들 열 명이 앞으로 나왕 반듯이 바당을 보고 서서. 무신 벌을 줄라는가 가만 보고 이시난, 군인들이 뒤에서 총을 쏴그네 몬딱 앞으로 넘어지는 거라" - <작별하지 않는다> 223쪽
제주작가회의는 바닷가 학살터를 표선해수욕장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김잔디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 속에서 모살왓으로 표현된 곳은 표선해수욕장 서쪽에 펼쳐진 모래사장인 '한모살'로 보입니다. 한모살은 당캐, 표선백사장 등으로도 불리는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 표선 바닷가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1948년 12월 토산리 주민 약 200여 명이 일주일에 걸쳐 학살된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대규모 집단총살뿐 아니라 간간이 한두 명이 끌려와 총살되는 등 표선면사무소에 군부대가 주둔하는 동안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총살이 집행된 곳이에요. 표선·남원 일대 주민이 일상적으로 학살당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특정한 곳에서만 총살 집행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모살 이곳저곳에서 총살이 집행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래사장이었던 일부 지역이 대지로 변해 표선민속촌과 표선면도서관이 들어섰습니다. 당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던 곳은 도서관 입구의 공터로 남아 있고 4·3 유적지 표지석이 설치됐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기행 코스에는 이 밖에도 버들못(집단학살터), 종서물(잃어버린 마을), 토산 향사 옛터(주민집결지), 주정공장수용소, 제주4·3평화공원 봉안관(소설에 나오는 제주공항 유해발굴 현장이 재현돼 있음) 등이 포함돼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첫 4·3 기념일을 맞는 금년 봄에는 더욱 찾는 이가 늘어날 것 같다.
제주다크투어를 이끄는 김잔디 대표는 한강 작가의 소설을 계기로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다크투어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점차 알려지기 시작한 다크투어는 어떤 여행일까.
"일반적으로 여행이라고 하면 즐거움이나 휴식을 위해 떠나는 것인데 비해, 다크투어는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재난 혹은 재해를 겪은 장소를 방문해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여행이라고 하겠습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네의 일기> 현장인 네덜란드 '안네 프랑크'의 집, 독일의 베를린 장벽 등이 대표적인 곳입니다. 또 미국 뉴욕의 테러 현장이었던 911 메모리얼 파크도 요즘 여행자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제주4·3 관련 장소 이외에도 서울 서대문 형무소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다크투어 장소입니다."
국내 다크투어의 핵심 지역은 역시 제주일 것 같다. 4·3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진 현장이고, 예비검속 학살이 자행됐고,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최후 결전 예정지였다는 점에서 섬 전체가 '다크투어의 성지'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제주도에 단체를 만들어 다크투어 붐을 일으키게 된 과정과 주요 활동을 들어보았다.
"서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제주에 내려와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제주4·3이 한반도의 통일이나 평화운동과도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콘텐츠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4·3의 실체와 제주의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취지에서 본격적으로 다크투어 단체를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에요.
마침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선정돼 3년 동안 2억 원을 지원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4·3 70주년인 2018년에 비영리 민간단체를 표방하는 사단법인으로 출범하게 됐어요. 현재 320여 명의 후원회원이 있어서 단체운영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4·3 유적지를 방문하는 4·3 평화기행 프로그램 진행을 비롯해 4·3 생존자의 증언 및 유적지 기록, 4·3 관련 보고서나 역사책, 소설을 함께 읽는 학습 교육활동, 국제 연대활동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업은 역시 4·3 유적지 기행인데, 단체의 요청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혹은 소수 단위로 신청을 받아 진행하기도 합니다."
제주 절경 일출봉 부근 '걸어서 성산리 다크투어'

▲제주4·3평화공원에는 마을별로 4·3 희생자들의 이름과 성별, 당시 나이 등을 새긴 각명비가 세워져 있다. 4·3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죽음의 실체를 기록한 상징물이어서 제주 다크투어의 시작점으로 꼽힌다.
제주다크투어
제주다크투어의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4·3평화기행이 가장 대표적일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이 어디를 주로 찾아가고 있을까?
"4·3 평화기행에 참가하는 분들은 제주도민보다는 4·3을 잘 모르는 육지 사람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오기도 하고,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고교나 대학, 공공기관 등에서 단체로 오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언제, 어떤 코스로 다크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홍보하면 이걸 보고 신청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6개의 다크투어 코스가 공개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4·3을 제대로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첫발 딛기' 코스가 가장 기본이 됩니다. 우선 제주4·3평화공원에 가서 마을별로 4·3 희생자들의 이름과 성별, 당시 나이 등을 새긴 각명비라든가 4·3 유해 발굴사업에 의해 발굴된 희생자의 유해를 모신 봉안관, 희생자 1만 465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위패봉안실 등을 둘러보고, 4·3평화기념관 1층의 전시관으로 갑니다. 6개의 주제로 구성된 상설 전시관은 7년7개월 여의 4·3 기간은 물론, 그 전후의 우리 역사와 제주도의 상황을 정리한 역사 기록과 각종 도표, 영상자료를 살펴보게 됩니다.
제주4·3평화기념관을 보고 나면 선흘리에 있는 학살터이자 은신처이기도 한 목시물굴, 도틀굴,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인 조천읍 북촌리의 집단학살터와 너븐숭이 4·3기념관, 함덕해수욕장 옆의 서우봉 일제 동굴진지를 보게 됩니다. 이게 하루짜리 코스인데, 투어 참가자의 사정에 따라 시간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첫발 딛기 코스는 문자 그대로 4·3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좀 더 심층적으로 4·3을 이해하기 위한 코스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앞에서 말한 가장 기본이 되는 코스 말고도 주제에 따라 안내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4·3과 관련한 여성의 서사를 원하면 거기에 맞춰서 투어를 하고, 어떤 특정한 4·3 관련 이슈가 발생하면 그에 해당하는 곳을 가기도 합니다. 예비검속 같은 주제를 원하면 제주도에서 발생한 주요 예비검속 관련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이지요. 혹은 무장대나 토벌대에 초점을 맞춰 투어를 하기도 합니다.
4·3 무장봉기를 하고 한라산으로 들어가 투쟁을 했던 무장대 관련 투어의 경우, 무장대를 이끌었던 이덕구의 가족묘, 이덕구 산전, 무장대원들이 집단 암매장된 남원읍 송령이골, 무장대가 다녔던 길, 무장대 추모공간 등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반면 4·3 당시 제주도민을 강경진압했던 박진경 연대장을 주제로 한 토벌대 위주의 투어도 한 적이 있습니다. 박진경 연대장의 진급 축하연을 했던 옥성정 옛터와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던 제주농업학교 옛터, 박진경 추도비(베트남참전위령탑 근처) 등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김 대표는 다크투어도 기획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제주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성산 일출봉 부근이 4·3의 주요 유적지라는 점에 착안해 만든 '걸어서 성산리 다크투어'라는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성산 일출봉은 유명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이 일대가 4·3의 주요 현장이라는 점에서 상징성도 큰 장소입니다. 일출봉으로 가는 길목에 터진목이라고 하는 광치기 해변 쪽이 사실은 대대적인 학살터였어요. 그곳에 가면 추모공원도 조성돼 있습니다. 거기서 시작해 수마포 해안의 일제 동굴진지를 거쳐 성산동국민학교 옛터로 갑니다. 이곳이 당시 악명 높았던 서북청년단 특별중대 주둔지입니다. 다음에 성산파출소를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6.25 직후 대대적으로 벌어진 예비검속 때 200여 명의 목숨을 구한 '한국의 쉰들러' 문형순 당시 성산포경찰서장 관련 일화를 들려줍니다.
성산 일출봉으로 올라가다 보면 길이 양쪽으로 갈라집니다. 매표소 지나 일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왼쪽은 바닷가로 가는 길입니다. 그 왼쪽으로 돌면 우뭇개동산이 나옵니다. 그곳 역시 학살터입니다. 성산 일출봉 일대 다크투어는 여기서 끝나는데 도보로 가능하고 길지 않기 때문에 반나절 코스입니다. 세계자연유산인 성산 일출봉에 4·3이라는 다른 색깔이 입혀지게 되는 것이죠. 최근 기획한 이 투어 프로그램에 대한 참가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제주 다크투어 대상지에는 4·3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나 6.25 등 근현대사를 거쳐 오는 과정에서 빚어진 어두운 역사의 현장도 다수 포함돼 있다. 어떤 곳들이 있을까.
"4·3 관련 유적지를 제외하면 다크투어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알뜨르 비행장입니다. 그리고 제주 곳곳에 파놓은 일제의 동굴진지가 있고요. 또 1970년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항해하다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라든가, 제주도로 향하다가 침몰한 세월호 기억관도 의미 있는 다크투어 장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송악산과 이웃해 있고, 남영호 희생자 위령비는 정방폭포 부근에, 세월호 기억관은 4·3평화공원 가는 길에 있습니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중국 남경을 폭격하기 위해 건설한 비행장으로 지금도 많은 시설들을 볼 수 있습니다. 비행기 격납고를 비롯해 지하벙커, 관제탑, 고사포 진지 등을 가까이 접근해서 자세히 볼 수 있어요. 해안 절경으로 유명한 송악산과 함께 제주올레 10코스에 포함돼 있는데, 이 코스가 올레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꼽힙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역사적 장소도 볼 수 있는 공간이어서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QR코드 리본 만들어 유적지 표시

▲6.25 두달 후 섯알오름 예비검속 집단학살로 희생된 132명의 합동묘지 백조일손지지.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의 묘’라는 의미로 명명했다.
황의봉
김잔디 대표는 한국전쟁 시기에 발생한 예비검속 학살터야말로 제주지역 다크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며 알뜨르 비행장과 인접한 곳이므로 꼭 가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
"6.25 직후에 발생한 섯알오름 예비검속 학살터와 백조일손지지도 중요한 다크투어 장소입니다. 학살장소가 바로 알뜨르 비행장과 붙어 있습니다. 원래는 일제 강점기 탄약고였는데, 미군이 들어와서 폭파해 깊은 웅덩이가 있었던 곳이에요. 6.25 발발 2달쯤 후인 8월 20일 경찰이 한림·모슬포 지역의 예비검속 대상자를 차에 싣고 와서 집단학살하고 덮어버린 사건으로 현장에 가면 당시 상황이 잘 설명돼 있습니다.
유족들에 의하면 학살당한 6년 후에야 비로소 132구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시신의 신원을 구별할 수 없어 현재의 묘지인 백조일손지지에 이장했다는 겁니다.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의 묘'라고 한 것입니다.
벡조일손지지는 예비검속 학살터와 몇 킬로 떨어진 곳이어서 걷기보다는 주로 차로 이동합니다. 최근 이곳에 역사관이 생겨 예비검속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어요. 특히 이승만이 학살 명령을 내린 사실과 그 아래 복역했던 군인들의 이름을 도표 등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주다크투어의 중점사업 가운데 하나가 4·3 유적지의 안내판 설치 현황을 조사하고, 실태를 알리는 일이다. 아울러 자체적으로 QR코드 리본을 만들어 유적지임을 표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제주도 전역에 4·3 관련 유적지가 거의 900군데에 달합니다. 하지만 도에서 직접 안내판을 설치한 곳은 10%도 안 될 겁니다. 유명한 곳 이외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지 않은 실정입니다. 4·3 때 무장대를 이끌었던 이덕구 시신을 십자가에 매단 곳으로 알려진 관덕정이나 앞에서 소개한 성산동국민학교 옛터, 우뭇개동산 등에는 저희 유적지 지킴이단이 현장을 답사한 뒤에 안내판이 생겼더라고요.
관음사를 비롯해 4·3 때 피해를 본 절에 불교계가 직접 안내판을 세운 일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4·3 유적지에는 아직 안내판이 설치되지 못한 실정입니다. 한 예로 제주국제공항에서 300구가 넘는 유골이 발견된 곳이 남북활주로 서북 측 지점인데, 활주로 서쪽 편으로 차가 직접 들어가 비행기 뜨고 내리는 것을 구경할 수 있도록 데크를 설치해 놓은 곳이거든요. 여기도 아직 안내판이 없습니다.
4·3 유적지임에도 안내판이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을 찾아가 저희가 임의로 만든 안내판을 들고 서 있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안내판을 세우는 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이었지요. 대부분 사유지인 데다,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안내판이 아니기 때문에 퍼포먼스에 그쳤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퍼포먼스가 끝나면 애써 정리한 유적지 정보가 사장될 뿐 아니라 누군가 그곳을 찾아오더라도 아무런 정보도 접할 수 없으니 방법을 찾아보자 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QR코드 리본이었던 것입니다.
리본에 QR코드를 새겨 유적지 현장에 달아놓는 것입니다. 이 QR코드를 찍게 되면 저희 제주다크투어 홈페이지의 해당 유적지 설명이 있는 코너로 이동하게 되는 겁니다. 거기에는 안내판 문구뿐 아니라 동영상도 있고, 관련 기사도 있어 체계적으로 해당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관덕정이라든가 잃어버린 마을로 알려진 영남동과 곤을동, 중문지서 옛터, 사리물궤, 함명교회 옛터 등 15군데 정도에 저희가 만든 QR코드 리본이 달려 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의 아픈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현장 투어 이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연대'와 '학습'과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저희가 대만 일본 미국 등의 단체들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등의 연대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우리의 4·3과 유사한 2.28사건 관련 단체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2.28의 경우 진상규명 작업과 보상은 4·3보다 빨리 이루어졌지만, 그 이후의 사회적 화해나 상생을 위한 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일본에는 오사카에 4·3 희생자 유족뿐 아니라 당시 밀항하신 분과 그 후세들도 살고 있어 저희와 연대해야 할 일이 많고요. 오키나와는 전쟁으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된 지역이어서 역시 제주와 연대 의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4·3 유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4·3이 미군정 때 시작된 사건 아닙니까. 심지어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군부대를 움직이고 군인을 투입하는 모든 일은 미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미국의 책임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 내 관심이 있는 분들과 연대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함께 세미나도 하고 포럼도 열고, 트럼프에 공개서한도 보냈고요. 또 미국에 직접 찾아가 UN 같은 곳에서 발언할 기회도 가지려고 합니다.
이 외에도 4·3과 관련한 중요한 책자들을 함께 읽는 강독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정부가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나 제민일보에서 오랜 진상조사 취재를 한 결과물을 책으로 펴낸 <4·3은 말한다>(전 5권)처럼 4·3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두텁기도 하고 혼자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을 같이 모여서 읽고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또 펜드로잉 수업 참가자를 모집해 제주 원도심 4·3 유적지를 그림으로 그리고, '원도심에 숨겨진 4·3 이야기'라는 전시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4·3으로 억울하게 감옥살이한 분들의 직권 재심이 열리고 있는데, 이 재판을 빠짐없이 방청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배제된 희생자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라도 시작해야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중국 남경을 폭격하기 위해 건설한 알뜨르 비행장에 가면 19기의 비행기 격납고를 비롯해 지하벙커, 관제탑, 고사포 진지 등을 볼 수 있다. 알뜨르 비행장 지역은 해안 절경 송악산과 함께 제주올레 10코스에 포함돼 가장 인기있는 다크투어 코스로 꼽힌다.
황의봉
김잔디 대표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참여연대 활동가와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경력의 소유자다. 그가 제주로 이주해 제주다크투어 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와 이를 통해 4·3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점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제주다크투어 설립자가 저와 함께 참여연대 활동가로 일을 한 분입니다. 그분은 참여연대를 그만두고 제주다크투어를 만들었고, 저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고 있었어요. 국회 일이 힘들다 보니까 어쩌다 휴가를 얻어도 멀리 여행을 못 가고 대신 제주도를 자주 오곤 했습니다. 마침 동료였던 분이 다크투어 단체를 만든 것을 알고는 후원회원으로 가입했어요. 그러다가 제주다크투어에서 상근활동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예 제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자주 다녔던 곳이 천안시 병천의 유관순 열사와 조병옥 박사의 생가였어요. 저는 조병옥이란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도 모른 채 그 생가에 가서 놀았거든요. 뭐 훌륭한 사람이라더라, 독립운동을 했다더라, 우리나라 정부수립 때 요직에 있었던 인물이라더라, 정도만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제주에 내려와 4·3 역사를 알게 되면서 그가 미군정 하에서 경찰 총수로서 제주도민을 무자비하게 죽일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충격을 받고 다시는 조병옥 생가에 가지 않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역사를 모르면 이처럼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제주4·3 77주년을 맞고 있다. 4·3 진상규명이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고 희생자 유족에 대한 보상도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거나 소홀히 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이러한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배제된 희생자' 또는 '항쟁 주역'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금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4·3 당시 무장대 활동을 했거나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이었다는 이유로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유족이 아직도 많습니다. 반면 당시 학살 책임이 있는 경찰이나 군인은 희생자로 인정받고 있거든요. 또 이승만 이하 군인과 경찰 간부로 잘 나갔던 사람들은 학살극이 벌어진 후에도 호의호식하며 살았을 뿐 아니라 아무도 역사적 책임을 진 적이 없습니다.
오직 무장대로 투쟁을 했던 사람들과 그 유족만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역사적 책임을 오롯이 지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야기를 저희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키나와에서는 미군이건 일본군이건 경찰이건 또 민간인이건 모두를 희생자로 인정하고 공동묘지에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4·3의 와중에서 죽어간 분들을 모두 양지로 끌어올려서 희생자로 인정하고 화해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해 이제는 논의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4·3특별법에는 4·3 기간 동안 희생된 모든 사람을 희생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익인사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자 헌재는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도, '제주4·3 당시 수괴급 공산 무장병력 지휘관 또는 중간 간부 등은 희생자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사족을 다는 바람에 4·3위원회의 심사과정에서 배제된 것입니다. 4·3위원회에는 제주도 측 위원도 있지만, 정부 측 인사들이 당연직으로 들어와 있어서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타개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희생자에서 배제된 분들의 유족 역시 공권력의 피해자로 4·3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었고, 연좌제의 피해를 봤거든요. 그럼에도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정신적 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사실 무장대의 개념도 두리뭉실합니다. 어떤 활동을 얼마나 어떻게 해야 무장대가 되느냐도 애매하고, 지금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마당에 구분하고 차등을 둔다는 건 사리에도 맞지 않고 의미도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저희로서는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배제된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김잔디 대표는 다크투어가 단순히 어두운 역사의 현장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제주 다크투어의 진정한 의미를 강조하는 그의 말에서 4·3의 미래에 희망이 느껴진다.
"다크투어를 통해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단순히 기억만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77년 전 4·3 때도 여수·순천과 제주도에서 계엄령이 있었지만 지금 또다시 우리가 계엄령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제주 사람들에게 계엄이란 단어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말입니다. 4·3과 같은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제주도라는 섬에서 있었던 일을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진실을 규명하고, 정의롭게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3의 가해자들은 모두 사망했지만, 역사적 처벌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후세들에게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는 셈입니다. 다크투어는 후세들이 딱딱한 글로 4·3을 접하기보다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방식으로 어두운 역사와 만나 몸으로 깨닫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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