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돔(Bird Dome) 시스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설시스템공학과 송기한 교수가 3월 21일 항공안전 대토론회의 발표 자료로 제시한 것이다.
희음
해당 발표를 맡은 송기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먼저 현재 공항 설계와 운영 시스템이 괴리되어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안전한 운영을 위한 혁신적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안한 기술 처방이 바로 '버드돔(Bird Dome)'이었다. 송 교수는 버드돔을 다층적 조류 충돌 예방 체계라고 설명했다.
그 체계에서 원거리의 조류는 레이더와 인공지능(AI)을 통한 과거 데이터, 패턴 분석으로 사전 탐지하고, 중거리 조류에는 드론 등을 활용해 모니터링을 하며 퇴치에 나서는 방법이 사용된다. 그리고 근거리에서는 전담 인력으로 상시 예방 활동을 진행하고, 항공기 접근 시 즉각 대응에 나서는 방안이 제시된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되는 용어 '대응'과 '퇴치'는 위력 및 직접적 폭력의 도구를 이용해 새들을 제 경로에서 내쫓거나 죽이는 것이 아닌가? 이 시스템이 드러내는 것은 결국, 적대의 대상이자 피해를 입히는 외부적 존재, 혹은 이물질의 자리에 새를 위치시키는 인간의 시선이다. 새들과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시스템 안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
토론회에서 제시된 방안들이 실무 현장의 조종사에게 얼마나 유효할지 궁금했다. 나는 국내외 항공사에서 30년 넘게 근무했던 이영호 조종사(전 항공기 기장)와 따로 약속을 잡고 인터뷰했다. 그는 조류 충돌 문제에 관해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전 문제가 제일 신경 쓰이죠. 날씨도 그렇고 정비도 그렇고. 근래에는 기내에서 갑자기 승객이 문을 연다든가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조류 충돌 문제도 무시 못 하는데, 대처하기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바로 그것이기도 해요. 이착륙 시가 가장 위험한데요, 그걸 마의 13분이라고 부르죠. 이륙하고 8분, 착륙 직전에 5분."
이착륙 시가 가장 위험한 이유는, 그때 항공기가 주로 이용하는 고도가 새들이 날아다니는 일반적인 높이와 거의 같기 때문이다. 그 고도가 대략 610m 정도다. 실제로 이 높이에서 항공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 이영호 조종사에게 이에 대한 대비를 통상 어떤 식으로 하는지 물었다.
"공항 주변의 새들이 갑자기 활동이 심해졌다든가 하면 노탬(NOTAM)이라고, 우리한테 지침을 주는 게 있어요. 노티스 투 에어맨이라고, 경보 같은 걸 주죠. 조류 활동이 빈번하다고, 주의하라고 알려주는 거죠. (...) 그런 경우, 예를 들어 공항에 근접하려고 하는데 조류들이 근처에 있다 하면 일단은 착륙 최대한 안 하고 공중에서 대기를 해요. 새들이 좀 비켜주기를 기다리는 건데, 그것도 연료가 제한이 있다 보니까 오래는 못 기다려요."
그렇다면 조류 탐지 혹은 조류 퇴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경우라면, 위험 요인이 조금은 상쇄될 수 있을까.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새라는 게 뭐 자기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거라서, 새가 있다는 걸 알고 피하는 것도 사실은 어려워요. 무안공항에서 사고 나고 나서 조류 탐지 레이더를 운용한다는 얘기도 나오던데, 제가 알기로는 서산공항에 한 대 있어요. 근데 그게 크게 실효가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해요. 조류를 탐지했고 그걸 조종사가 안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피할 수가 없거든요. 새들이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동서남북 어디로 날아갈지 판단하기 어려우니까, 탐지 정보만 가지고 새를 피하기는 힘들어요."
공항 입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국토부
이영호 조종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국토부가 조류와 관련해서는 항공안전의 기본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토론회는 무안공항-제주항공 참사 이후, 뼈아픈 성찰과 함께 마련된 자리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참사의 제1의 원인으로 지목된 조류 충돌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석에는 공항의 입지 여건에 대한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조류 탐지나 퇴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은 지엽적이고 부수적인 보조 기능을 수행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조류 충돌을 줄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편은, 새들의 서식지 인근이나 새들의 주요 이동 경로로 이용되는 구역에는 공항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현재 계획된 신공항 예정지 대부분은 조류보호구역 인근에 있다.
그러나 국토부는 항공안전혁신위원회를 꾸려 4월에 발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항공안전에 관한 대토론회를 화려하게 여는 동안에도, 공항 입지에 대한 언급만큼은 하지 않았다. 신공항은 물론 기존 공항에 대해서도.
그 이유는 쉽사리 점쳐진다. 이미 지어진 공항도, 앞으로 지어질 공항도 모두 국토부 산하에서 계획되고 실행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 거대한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국토부는 무한 책임의 굴레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임은 앞으로의 안전사고를 막는 새로운 집 짓기일 수 있다. 이 땅 위의 모든 생명과 삶터에 대한 무겁고 진지한 응답일 수 있다.
내가 그를 지킬 때 그 역시 나를 지킬 것이다

▲낙동강 하구 부산 강서구 명지갯벌을 찾은 겨울 철새 고니와 청둥오리 등이 물 위를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를 물려가며 사는 새들의 마을이자, 새들이 오랜 약속처럼 이용하는 지름길 아래에다 공항을 지어놓고서 이 새들을 감시하거나 제거하겠다는 아이디어는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 새들은 감시당하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새들이 그렇게 존재하는 한, 그곳을 침범해 지은 공항은 위태로움을 운명처럼 짊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특히 '버드돔'에 대한 발상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지어 집이 자꾸 무너져 내리는데 울타리만 튼튼한 것으로 계속 갈아 끼우겠다는 다짐 같다.
가덕도, 새만금, 제주 성산, 흑산도, 백령도, 화성... 신공항이 예정된 곳의 이름을 불러본다. 기어이 공항을 지어 이곳을 무너져 내리는 집으로 만들 때, 집과 함께 먼저 주저앉는 건 바로 인간일 수 있다.
영화 <수라>에서, 아주 오랫동안 고된 수고로움을 감당하면서 새들을 지키려 하고 새들이 기대어 살아가는 수라갯벌을 지키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오동필 단장은 답한다. "아름다운 것을 본 죄" 때문이라고. 이 말이 많은 이들의 심장을 깨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꼭 아름다워야만 소중한가를 묻는 이들 또한 드물게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는 이 "아름다운 것"을 "삶"으로 치환해 읽는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다 각각의 삶이자 저마다의 행성으로 바라볼 때 그것은 빛난다. 아름답지 않을 재간이 없다. 내가 그를 바라볼 때 그 삶 역시 나를 바라본다. 내가 그를 지킬 때 그 역시 나를 지킬 것이다. 그렇게 그와 나는 숨 쉬고 사랑하고 울고 노래하는 자리를 나누어 쓸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필자 소개] 희음: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하며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난다. 이 땅 위의 모든 존재들의 삶이 살 만한 것이 되려면 어떤 저항과 목소리와 돌봄이 필요한지 더듬어 찾는 중이다.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그림책 <무르무르의 유령>을 펴냈다. <김용균, 김용균들>,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를 함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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