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화성시 석포리 일대 농지가 공장지대로 변화한 모습(왼쪽) 2023년 석포리 일대 토지이용지도: 적색 음영=계획관리 지역, 연한 녹색=농림지역 (오른쪽) 석포리 일대 위성지도. 계획관리지역 안에 공장이 난립하여 농지를 둘러싼 모습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특례법 제정 이후, 정부는 산업시설 관리 권한을 꾸준히 지자체로 이양해 왔다. 권한은 커졌지만 지자체는 대체로 인력과 예산, 전문성이 부족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 건강피해 조사를 인프라가 부족한 지자체에 떠넘기는 관행이 무책임하다고 지적한다. 산업시설을 적극 유치하려는 지자체들은 지역주민 환경권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별 업체들은 지자체가 '개발행위 불허가처분'을 내도 행정소송을 걸거나 편법을 써가며 개발 계획을 꺾지 않았다.
"산단이 늘어나면 관리 인원이 필요하고 그런 부분의 인원과 측정 장비를 위한 예산 확보를 해야 돼요. 드론이나 최신 장비를 좀 지원해 주면 좋을 거 같아요. 또 산단이 노후화되면, 중간에 하나 고장이 나면 시설 개선비용이 사업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인데, 이걸 개인을 위해 지자체에서 직접 지원할 수도 없고 시설 개선 비용이 엄청 드니까 그 지원이 좀 되면 도움이 될 거 같아요." - 전 지방자치단체 환경사무 담당 공무원 D씨, 보고서① 92쪽 -
고 대표는 공무원 D씨가 들려준 경험담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공무원들이 주민 의견을 듣고 노력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그때 공무원분들이 현장도 가고 지도 점검도 했는데 악취 민원이 개선이 잘 안되었어요. 근데 차량에 설치하는 이동식 악취 측정기가 있거든요. 그 차를 상시로 아마 몇 군데 공장 근처에 세워뒀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측정해서 어디서 배출하는지 잡혔대요. 시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기업은 방지시설을 아주 세게 돌리거나 조업량을 조절하거나 할 수밖에 없어요."
산단 개발을 추진하는 근거로 흔히 인구 증가, 고용인원 확대, 세수 증가 따위를 든다. 농본이 검토한 2012년~2022년 통계를 살펴보자. 산단이 소재한 총 358개 면 인구는 78385명이 감소했다. 산단 입주계약을 하고도 가동하지 않은 사례가 면 지역 2692건, 읍 지역 1243건이다(전국 9천 건 이상). 산단 지정 건수별 취업자 수는 전국 1992명에서 936명으로 줄었다.
세수가 늘어나는 효과도 있지만, 산단 공공재정 지출 규모도 상당하다. 가령 충북 진천군은 연평균 45.6억 원을 산단 기반 조성, 유지관리, 보수에 지출하고 있다. 해당 기간에 총 365억 원을 지출한 셈이다. 한편, 산단 개발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민포럼' 자료 36~39쪽 참고하여 재구성)
환경 피해를 줄이려면 지역공동체 대응력을 높여야
지난 2017년~2022년 11월 사이, 경주시 C공단의 악취, 대기, 폐수 분야 전체 행정처분 69건 중에 36건이 7개 사업체에서 발생했다. 전체 52%에 해당한다. 오염물질 배출 이력 정보 공개 제도가 필요함을 방증하는 결과이다.
"지자체가 오염물질 배출 이력을 오픈해 놓으면 사업자 입장에서 되게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문제 있는 기업들이 다 특정되잖아요. 시민들이 지역에서 감시활동을 한다면 그런 업체들만 계속 지켜보겠죠.(웃음) '이 기업이 지난번에 오염물질 배출해서 과태료 먹었어. 근데 6개월 뒤에 또 배출했어.'"
화성시 피해지역 주민들은 자구책을 찾아 활동해 왔다. 석포리 주민들은 대형 화재 피해 이후, 지자체로부터 위험시설이 더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구문천리 주민들은 환경단체 설립, 공장 환경 감시, 마을가꾸기, 주민 환경교육, 공장주들과 협의체를 통한 소통, 공장 이주노동자 대상 한글 교육 실시 등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커뮤니티에서 대응력이 활성화되면 배출업소는 조금이라도 감시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요. 예전에 서울시에서 마을 활력소, 도시재생사업 같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했잖아요. 그런 사업들을 환경정의 차원에서 취약지역에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지역 주민들은 정보도 많이 부족하니까 행정기관과 협상테이블에 앉았을 때 대등한 관계를 갖추기 어렵잖아요. 그때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민사회 조직이 중요할 수 있어요. 행정기관이 환경오염 취약지역 주민들, 기업들과 정기적으로 간담회라도 하면 좋겠죠.
저는 산단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산업 활동 없이 한국 사회가 어떻게 지탱해요? 산업 활동을 하면 당연히 폐기물이 나오는 거고, 그럼 폐기물을 적절하게 처리하면 돼요. 도시에서 폐기물 관리 잘하는 게 나쁘지는 않잖아요. 도시 사람들 눈치 보는 게 정상이에요. 힘이 없는 쪽에서는 눈치를 덜 보니까 정상적으로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아서 문제죠."
지역 문제 해결은 주민들 스스로 힘으로
'산업 활동 없이 한국 사회를 지탱할 수 있냐?'는 그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껏 내가 구매했던 생필품들은 누군가 견뎌낸 냄새, 먼지, 시끄러움, 연기, 기침, 짜증, 한숨, 암 덩어리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고 대표는 주민들이 공장 근처를 순찰하기만 해도, 공무원들이 악취 측정기 차량을 공장 옆에 대놓기만 해도, 지역공동체가 대응하는 제스처만 취해도 업체들이 조심한다고 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바뀐다는 말이다.
작년 한 해 블루닷은 '찾아가는 액션리서치 스쿨'을 통해 지역 활동가들이 자기 지역을 위한 '변화지도'를 그리도록 지원했다. 블루닷은 활동가들을 위한 데이터 활용 안내서들도 꾸준히 펴냈다.
(관련 글: 활동가에게 지도만들기(mapping)는 어떤 쓸모가 있을까?)
우리는 근대적 산업공해는 물론 미래세대 '기후정의'까지 걱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기를 헤쳐 나가는 해법은 블루닷이 그동안 시민들과 함께 해왔던 활동들에 조금은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지역 문제를 주민들이 직접 조사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서 어디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하면 지방정부와 의회, 시민사회단체, 시민들하고 조금 더 실질적으로 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 어디가 문제더라!'고 하면 '문제의 원인은 이런 것 같더라!'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방식의 시민 활동들을 조금 더 확산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밀양강 탐조 결과를 지도로 제작 중인 밀양생태문화연구회2024년 블루닷은 <밀양은대학: 변화를 만드는 지도학과>(밀양소통협력센터 주관)를 통해 경남 밀양시 활동가들과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지도를 제작했다. 고정근 대표도 함께 했다(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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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용우: 가난하고 힘없고 경계에 선 이들 편에서 글 쓰고 싶은 사람.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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