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땅 아래 켜켜이 쓰레기가 묻혀있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매립장
변정정희
홍수열 소장은 대안으로 '순환 경제'를 제시했다. 순환 경제는 물건을 만들 때 시작된다. 생산자는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해야 한다. 소비자는 친환경적인 제품을 선택하고, 재활용할 수 있게 분리 배출을 잘 해야 한다. 이때 재활용한 재생 원료를 다시 생산자가 가져다 쓸 때 순환 경제가 잘 마무리된다. 시작과 끝에 생산자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최근 유엔환경총회에서 기후 위기, 환경오염, 생물 다양성 손실이 심각한 위기라고 선언했어요. 자원 소비가 급격히 늘면서 지구 시스템의 균형이 붕괴하고 있다는 거죠. '균형'과 '순환'은 같은 뜻인데요. 순환 경제는 '재활용을 잘하자'는 것을 넘어 '지구 시스템의 순환성을 회복시키자'는 거예요."
순환 경제를 목표로 지난해 7월 유럽의회는 '에코디자인 규정'을 실행했다. 기업은 제품을 설계해서 폐기할 때까지 내구성, 재사용성, 재활용 가능성, 수리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이 정보를 큐알코드와 같은 전자여권으로 소비자에게 공개해야 한다. 유럽연합에서는 에코디자인 규정을 따른 제품만 유통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순환 경제를 못 따라가고 있다. 에코디자인 관련 법률이 있지만 여러 곳에 산재해 있고, 그마저도 권고사항이라 강제성이 없다. 하지만 급속한 환경 위기 속에 순환 경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인 환경정책이 필요하다
이윤을 포기하면서 스스로 환경을 책임지는 생산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치다.
"정부는 장기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흔들리지 않아야죠. 여론이 안 좋다고 목표를 변경하거나 폐기하면 안 돼요. 환경 정책은 개인의 소비가 바뀌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 시스템이 바뀌는 문제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재활용이 잘 되는 제품을 만들자'는 정책을 세우면, 기업은 공장에 있는 기계를 다 뜯어고쳐야 해요. 갑자기 다 바꾸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없죠."
2023년 11월 환경부는 일회용 종이컵의 실내 사용 규제를 철회하며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 사용을 제한하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갑자기 뒤바뀐 정책에 피해를 본 것은 종이 빨대 생산자였다. 실제로 종이 빨대가 환경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을 접어두더라도, 기껏 만든 빨대와 그 설비가 쓰레기가 되어버린 일은 결코 환경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기업의 로비에 따라, 대중들의 욕망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정책은 안된다.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고민 없이 달려가는 정책도 안된다. 순환 경제를 위해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흔들림 없이 장기적으로 추진해 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신뢰를 잃은 정부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의무를 넘어 권리를 챙기자!
모든 책임을 정부와 생산자에게 돌리면 해결되는 걸까? 정치는 국민의 뜻을 대표하며, 생산자는 소비자가 있기에 존재한다.
"생산자가 책임을 전부 져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소비자가 할 수 없는 생산 영역에서 책임지라는 거고요, 다음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동 책임 부분에서 리더가 되라는 의미에요. 소비자의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죠. 더 강화해야죠. 그래야 실질적인 변화로 갈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껏 '분리배출을 잘 해야 한다'는 소비자의 의무를 부여받았다. 그래서 잘 버린 날은 만족했고, 마구 버린 날은 불편했다. 가끔은 '이런다고 바뀌겠어?' 하며 냉소했고, 많은 날은 아예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 이제 의무가 아닌 권리로 넘어가 보면 어떨까?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팔라고 요구하고, 제품을 수리해서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누려야 할 시민의 권리이다.

▲제로웨이스트 축제에서 ‘고쳐 쓰자! 오래 쓰자! 수리하자!’ 요구하는 시민의 플래카드
변정정희
"시민의 권리를 충족시키려면 생산자의 의무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제품에 대한 환경 정보를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제공해야죠. 허위 정보나 부정확한 정보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가 돼요. 순환 경제에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은 범죄거든요."
우리는 매일 소비한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이 소비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소비의 종류는 무척 다양해서 정부나 환경단체가 포착하지 못하는 쓰레기 문제가 많다. 일상에서 매 순간 소비하며 문제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이는 바로 소비자다. 실제로 불필요한 두유 팩 빨대와 캔햄 뚜껑을 쓰레기로 느껴 이를 모아 기업으로 반납한 시민들이 있다. 기업은 다음 제품 생산 때 요구를 반영했다. 이외에도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 제품을 사지 않거나, SNS를 통해 직접 불만을 제시할 수도 있다. 요즘은 온라인에 제로웨이스트 정보나 관련 모임이 많은 편이다. 의무에 따른 개인의 실천을 넘어, 소비자의 권리에 따른 시민 행동을 넘어, 생산자와 정부를 대상으로 한 시민의 저항이 필요한 때이다.
그동안 우리는 싸고 편하게 소비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순환 경제는 환경을 위해 비용을 더 지불하고, 더 불편하게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를 인류사에 없었던 거대한 실험 같다고 표현했다. 과연 우리는 이 실험을 잘 마칠 수 있을까?
▲기후정의행진에서 생산자와 정부를 향해 저항하는 시민들
변정정희
올해는 쓰레기 종량제 시행 30주년이다. 1995년 처음 쓰레기 종량제를 시작했고, 2005년 음식물 쓰레기 매립을 금지했고, 앞으로 종량제 봉투 직매립 금지가 실시될 예정이다. 더는 우리에게 쓰레기 묻을 땅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껏 우리는 적은 비용으로 쓰레기봉투를 사 버리고, 다음 날이면 그 쓰레기가 사라지는 편리를 경험했다. 하지만 이것은 마법이 아니다. 단지 눈속임일 뿐이다. 쓰레기는 묻어버린 땅 밑에, 소각한 공기 속에, 마시는 물속에, 우리 몸 안에 여전히 살아있다. 우리는 쓰레기와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필자 소개] 변정정희: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방송 작가로 활동했으며, 최근 르포르타주 작업을 하며 새로운 글쓰기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 <작가 노동 선언>,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를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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