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7일 한 남성이 프랑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조치가 완화되자 자전거를 타고 파리 8구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을 지나가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3월 17일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맞선 봉쇄령을 발표한 지 5년째 되는 날이었다.
실로 전쟁을 방불케했던 초현실적 시간이 흐른 지 5년,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상처와 충격을 남긴 채 과거 속으로 물러났으나, 또렷한 족적을 사회 곳곳에 남기며 사람들의 삶을 여러모로 바꿔놓았다. 프랑스 언론들은 앞다투어 그 시간을 반추하는 특집기사를 내보냈고 곳곳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우리가 잃고 얻은 것들에 대해.
이후로도 이어진 도시 탈출
그날 이후, 사람들이 더 이상 대도시를 선망하지 않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마크롱이 봉쇄령을 발표하던 날, 파리의 외곽도로는 시골로, 지방으로 가려는 차량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치 전쟁을 피하려는 피난 행렬처럼.
시골에 집이 있거나, 가족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필사적, 본능적으로 도시를 탈출했다. 이후 전원의 삶에 대한 선망은 코로나가 물러난 지금까지도 일종의 현상으로 남았다.
파리를 비롯해, 리옹, 릴, 렌느 등 7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들은 대부분 인구 이탈 현상을 겪고 있다. 2024년 파리 인구는 208만 7600명으로 2019년에 비하여 약 9만 5000명 감소했다.
2023년 한 부동산 사이트(
Meilleurs Agents)가 한해 전 대도시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2%가 1년 안에 대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답했고, 파리의 경우 그 비율은 40%에 달했다.
그들이 대도시를 떠나고자 하는 이유는, 더 조용한 환경(36%), 맑은 공기 속(33%), 더 넓은 곳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다(26%). 이들은 서해안 브르타뉴 지역, 지중해안의 프로방스, 코트다쥐르 등 물 맑고 경치 좋으며 햇빛이 풍족한 지역으로 떠나고자 했다. 소비·편리·일자리보다 자연·평화·쾌적함을 더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설문을 진행한 부동산 사이트는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나기 위한 진정한 모터는 미래에 대한 신뢰의 회복"이라고 적고 있다. 전염병과 전쟁이 추동한 불안한 세상에서 자연이 도시 자본주의를 따돌리는 놀라운 시간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 프랑스 일간지 <
르 몽드>에 따르면 2024년 파리의 부동산 가격도 팬데믹 이후 14.1%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달라진 소비 패턴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에 무기한 폐쇄된 프랑스 파리 에펠탑.
연합뉴스/EPA
한편 <
르 몽드>가 인용한 툴루나 해리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5%의 프랑스인들은 코로나 이후 소비 습관이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가장 또렷한 변화는 당연하게도 온라인 시장의 급격한 증가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데 조급함이 없었던 프랑스인들은 어쩔 수 없이 시대의 요구에 대거 합류한다.
2019년 1018억 유로였던 온라인 시장의 매출 규모는 2024년 1753억 유로로 5년 만에 75% 성장했다. 규모가 성장하면서 품목도 전 분야로 확대됐다. 피자, 스시를 제외하면 소극적이었던 음식 배달 시장도, 다양한 영역에 걸쳐 일반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시장을 압도적으로 견인하는 연령층은 MZ세대(18~35세)로, 주문자의 2/3 이상이 이들이다. 레스토랑에 오래 앉아 수다 떨고 와인을 마시며 여유롭게 즐기는 이들의 전형적 외식문화는, 코로나 시기에 청춘의 일부를 차압당했던 세대에 의해 집안에서 넷플릭스와 마주하며 미니멀한 식사를 즐기는 방식으로 상당 부분 변화했다.
의류시장에서도 온라인이 차지하는 규모가 2019년 15%에서 2024년엔 23%까지 상승한 반면 오프라인 매장은 7년 전에 비해 18%, 신발 매장은 26.4%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은 유명 의류, 구두 회사들(카미유, 산 마리나, 프랑스 갭, 쿠카이, 미넬리 등)의 유례없는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며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기도 했다.
도심의 대규모 백화점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프랑스 전역에 19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 백화점 체인 갤러리 라파예트는 금년 중, 두 개의 매장을 폐점한다고 연초에 발표했다. 당초 절반의 매장들에 대한 폐점을 예고하는 기사가 나왔던 것에 비해, 최종 결정된 규모는 그나마 줄어든 셈이다.
반면, 팬데믹 기간중 이뤄진 통제령으로 멀리 가지 못하고 인근 가게들을 이용하던 사람들은 팬데믹 이후에도 골목 장사들의 단골 고객으로 남았다. 대형 쇼핑몰들이 간신히 1% 정도의 거북이 성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동네의 소규모 식품점들이나 약국 등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입지를 구축해왔다는 분석이다. 고립되고 차단되었던 시절을 함께 겪어내며 소비자들이 주변 소상인들과 쌓은 끈끈한 유대가 이동 통제가 풀린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모습이다.
홀로 독보적 성장세를 보이는 품목은 스포츠 관련 분야다. 온/오프라인을 포함, 팬데믹 이전 수준의 매출을 간신히 유지하는 다른 의류·잡화 분야의 성장세와 달리, 스포츠 의류와 스포츠 용품은 홀로 수직 상승, 2019년에 비해 2024년에 18% 매출 상승을 기록했다. 자연과 건강, 운동을 향해 방향을 튼 모습은 사회 전반에 걸쳐 줄곧 목격되는 변화다.
명암 갈린 문화계

▲2010-2023년 프랑스의 도서 판매량. 2021년 최고치의 판매량을 보인 후, 코로나 이전 수준의 판매량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단위: 백만)
statista 2025
놀랍게도 2021년은 프랑스 출판계 역사상 가장 많은 책이 팔린 해로 기록된다. 아니 에르노가 프랑스에 16번째 노벨문학상을 안긴 2022년엔 오히려 조금 판매가 줄었다. 아직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던 2021년, 영화관이나 공연장, 미술관 등 문화 시설에 대한 출입은 자유롭지 않았지만, 책은 생필품으로 지정되면서 서점 영업은 가능했다.
여전히 오프라인 책 판매율이 더 높은 프랑스에서 열려있는 서점의 의미는 적지 않았고, 문화적 욕구의 상당 부분을 책이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1년 한 해에 4억 8600만 부의 책이 팔리며, 전해 대비 15% 성장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코로나 이전을 웃도는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07-2004 프랑스 영화관 연간 관객수. 2020년 코로나로 축소된 수치는 2024년에도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단위 백만)
statista 2025
반면 거의 300일 가까이 문을 닫아야 했던 영화관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모두 1억 8100명으로, 이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12.8% 감소한 수치다. 팬데믹 기간에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익숙해진 관객들 일부는 영화관으로 돌아오는 길을 잊고 말았다. 2023년 6개월간 진행된 할리우드 배우들과 작가들의 장기 파업의 여파도 영화관의 침체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진의 장기 파업으로 촬영과 개봉이 도미노처럼 지연된 것이다.
영화관과 마찬가지로 2년간의 암흑기를 보낸 공연장들은 반대로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2022년 120억 유로의 입장 수입을 기록하며 2019년에 비해 42%나 급성장한 공연계는, 2023, 2024년에도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른 플랫폼으로 대체될 수 있던 영화와 달리, 현장에서 배우들의 호흡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공연장은 대체불가의 것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여행의 키워드 - 자연, 휴식, 건강
전 세계 항공 여행자들의 수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수치보다 3.8 % 늘어났다고 국제항공협회가 밝혔던 2024년, 프랑스를 찾은 해외관광객은 1억 명을 돌파했다. 2023년부터 관광시장은 그 규모 면에서 완전히 이전의 리듬을 되찾았다. 한편으론 안도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또다시 엄청난 환경 파괴의 톱니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는 차원에서 사람들은 염려스러워한다.
여행자의 수는 늘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변화가 보인다. 에어비앤비 측은 프랑스에 등록된 에어비앤비 중 1/3이 시골에 있는 주택이라고 밝히고 있다. 도시의 관광지를 누비고 다니는 여행자보다, 시골집에서 사부작거리며 프랑스 전원의 평화를 즐기는 여행객이 늘어난 것이다.
프랑스인들의 여행 패턴에도 자연과 휴식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 두드러졌다.이런 흐름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것은 캠핑카를 동반한 여행의 증가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이동수단이나 숙박지 예약에 대한 제약 없이 느슨한 흐름으로 자연으로 향할 수 있게 해주는 캠핑카 여행은, 인신을 구속했던 방역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2021년 프랑스에서는 약 10만 대의 캠핑카, 혹은 이와 유사한 개조된 밴 차량 등이 판매되었다. 이는 2017년과 비교했을 때 약 120% 상승한 것으로, 이런 캠핑카 붐 현상은 2024년까지 이어지며 슬로우 여행이 '팬데믹 이후' 시대의 새로운 열망을 반영하는 트렌드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도보여행, 디톡스, 요가, 기공, 단식, 명상 등 자연 속에서 심신의 휴식과 단련을 겸하는 프로그램은 팬데믹 이후 꾸준히 늘어났다. 관광지를 다니기보다, 자신과 만나려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청소년들

▲2020년 3월 중순에 시작된 코비드 19의 첫 봉쇄령 중, 미술교사가 숙제로 내준 <감금>이란 제목의 사진. 당시 중3이던 아이의 눈에 비친 감금된 세계
Kalli

▲2020년 3월, 코로나 봉쇄령 기간 중, 미술교사가 내준 숙제, <해방>의 이미지를 담은 중학교 3학년생의 사진.
Kalli
청소년들은 팬데믹이 남긴 가장 큰 피해자들로 지목된다. 요양원에 거주하던 70세 이상의 노년층이 코로나에 가장 많이 희생되긴 하였으나, 다수의 청소년들이 그날 이후, 여전히 심리적 상해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민감한 시기, 갑자기 청춘의 삶을 차압당했고, 노인들에게 잠재적인 위험이 될 수 있는 존재들로 지목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우왕좌왕하고 무책임했던 어른들을 보며, 자신들이 내디뎌야 할 세상에 대한 존재적 불안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모든 금지를 뛰어넘고 친구들과 쏘다닐 나이에, 사회가 내린 거대한 철문에 갇혀 부모와 함께 아파트 안에서 숨죽이며 지내야만 했던 것이다.
"제2차 봉쇄령이 내려진 이후, 응급 청소년심리상담 요청이 급상승했다. 평소에 비해 30% 이상으로 오르던 수치는 여전히 팬데믹 이전과 비해 20% 상승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파리 코샹 병원의 청소년정신의학과 센터장 마리 로즈 모로가 지난 3월 <
라 크루아 레브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미 포화상태였던 병동에 갑자기 환자들이 넘쳐나, 의료진과 환자들 모두가 지옥 같은 상태를 경험했다.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위험한 상태의 청소년들을 돌려보내야 하기도 했다. 더 많은 시설,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2차 봉쇄령이 있던 2020~2021년 병원에 오는 청소년들 중, 거식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가장 많았고, 불안 장애, 차살 충동, 우울증 등이 주요한 증세였다. 전염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 뿐 아니라, 세상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어른들을 보면서, 이제까지 가져왔던 안전한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은 아이들이 불안 장애를 보였다. 자신의 일상을 뜻대로 운용할 수 없게 된 아이들이 신체에 대한 일정한 통제를 가했고, 그것이 '거식증'으로 나타났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불안 장애는 우울증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제 방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영화를 보며, 배달된 음식을 혼자 먹는 것은, 코로나 이후 형성된 우울한 청년층의 한 초상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모로 박사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5년이 지난 후에도, 안전하지 않고, 그다지 욕망할 것도 없는, 매우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인상이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 나이에 있던 그들에겐 그들이 붙잡고 나아갈 수 있는 일정한 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에 금이 가 버린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을 위해 20억 유로(약 3조 원)를 추가로 지원하면서, 자국의 청소년을 위한 문화패스 지원비는 절반으로 축소해 버린 정부는 여전히 청소년·청년의 삶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파리 시민들은 지난 3월 23일, 500개의 거리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자는 이달고 시장의 제안에 66%의 찬성표로 지지를 표했다. 그렇게 조금씩 가다보면, 청년들의 앞을 막고 서 있는 벽을 마침내 허물수도 있을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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