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사만에서 본 하동화력발전소. 맑은 날에는 석탄 먼지가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인다.
변정정희
다크투어. 죽음이나 재난과 관련된 위험 발생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으로 역사교훈여행으로도 불린다.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아래 여수산단) 다크투어를 기획한 곳은 하동참여자치연대(아래 하참). 하참의 최지한 대표는 광양만(광양, 순천, 여수, 하동, 남해로 둘러싸인 동서 거리 약 25km, 남북 10km의 항만) 지역의 환경문제를 체감하고 2023년 처음 다크투어를 시작했다.
다크투어는 하동화력발전소에서 시작해 광양제철소와 여수산단을 돌아보고, 준설토 매립지인 묘도를 지나 하동 섬진강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기획되었다. 여수산단과 광양제철소는 한국 경제성장의 중심지이면서 다이옥신, 벤젠 같은 유해물질의 원천이기도 하다. 다크투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 풍경만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한국남부발전 하동화력발전소를 보기 위해 갈사만으로 갔다. 발전소가 보이는 곳은 칡뿌리처럼 생겨 갈도라 불리던 섬이었다. 1964년 간척사업으로 제방이 들어서면서 바닷길이 막혔고 갯벌에 기대 살아가던 사람들은 일터와 양식, 썰물 때마다 파도가 내는 나팔 소리를 잃었다.
이후 광양에 제철소가 들어섰다. '강 건너 광양은 부자'가 되었고, 갯벌을 잃고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하동 사람들은 제철소로 일을 다녔다. 하동 사람들은 제철소가 하동에 들어오지 않은 게 못내 속상했다. 4년 뒤 하동에는 화력발전소가 들어섰다.
"샛바람이 불면 화력발전소, 갈바람이 불면 광양제철소, 마파람이 불면 여수LNG에서 새까만 게 날아와."( 하동주민생활사연구회, 갈도를 기록하다, 2023)
마을 사람들은 흰 옷을 입지 못했다. 문을 열지 못했고, 빨래를 널지 못했다. 비라도 오는 날은 '시커먼 게 얼마나 많이 내려오는지 락스를 부어' 옷을 빨아야 했다. 강물에서 재첩을 태산같이 잡았던 곳, 김 양식으로 유명해 황금바다로 불렸던 갈사바다는 이제 '암 환자가 그리 많단다, 여기가' 하는 곳이 되었다. 대신 광양제철소가 황금산단이라 불렸다.
최지한 대표가 굴뚝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굴뚝에서 마을까지 500미터 거리거든요. 발전소 지을 때 반경 1km 이내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고 환경영향평가서에 보고를 했어요. 그때 마을 사람들이 굉장히 큰 상처를 받으셨어요.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발전소는 집집마다 공기청정기를 바꿔주고 최선을 다한다고 말해요. 기만으로 느껴지는 거죠. "
최신형 공기청정기에도 마을 사람들은 암에 걸렸다. 이곳에 살면 암에 많이 걸린다고, 자녀들은 절대로 이곳에 살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제철소가 효자'라고, 더는 고된 김 양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하동이 발전하려면 산단이 들어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력발전소는 2026년 폐쇄를 앞두고 있지만, 그 자리에는 LNG복합화력발전소가 들어설 것이고, 갈사만에는 조선산업단지가 들어올 계획이다. 하동 주민들이 그렇게 바라던 산단이었다. 산단 조성을 앞두고 세금 7051억 원이 쓰이자, 마을에 이사 오는 사람이 생겼다.
현재 조선산업단지는 여러 위법이 드러나 공사가 중단되었다. 하참과 몇몇 주민들은 환경오염과 주민 건강 등을 이유로 산업단지와 LNG발전소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또 누군가는 산단만 기다리고 있었다.
'부자 동네'가 되었지만...
갈사만에서도 광양제철소가 한눈에 보였다. 차로 15분 남짓한 거리였다. 태금교를 건너자 포스코라고 쓰인 거대한 굴뚝이 눈에 들어왔다. 제철소 왼쪽에는 용광로가 도시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다.
광양제철소는 1987년 1기가 준공되었다. 포스코의 제철소 건설 자금은 대일 청구권 자금이었다. 철강산업의 성장은'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민중들 강탈과 착취의 대가'(김민정, 자본주의적 환경오염과 환경 불평등, 2009)로 얻은 셈이었다.
갯벌을 간척한 땅에 부지를 만들 때부터 I자형 라인을 계획했다. 공정 과정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광양제철소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생산라인으로 용광로에서 쇳물을 만들어 제강과 연주공장을 거쳐 압연공장에서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공정이 제철소 안에서 이루어진다.
제철소가 들어서며 광양만의 13개 섬 가운데 11개가 폭파되어 사라졌다. 섬들을 따라 울퉁불퉁했던 해안선은 일직선으로 길게 뻗으며 제철소 부지가 되었다. 두 개의 섬은 제철소 안 작은 언덕이 되었다.
광양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을 따라 주택단지와 신시가지가 생겼고 광양은 하동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부자 동네'가 되었다. 광양시는 재정 59억 원에서 2686억 원으로 46배(2003년 기준) 증가했고 포스코 자산은 창립 당시 16억 원에서 98조(2022년 기준)로 불어났다.
그러나 "자본이 가는 곳에는 어디나 배출이 즉시 그 뒤를 따른다."(안드레아스 말름, 화석자본, 2023) 공정 라인을 따라 비산먼지와 이산화황 등 대기오염물질과 벤조피렌, 다이옥신과 같은 발암물질이 생기고, 이는 광양만권 전체에 퍼졌다. 광양제철소는 대기오염물질 배출 5년 연속 1위(2023년 기준), 독극물인 시안이 포함된 폐수 무단 방류(2000~2003년) 등 심각한 환경오염을 불러왔으며, 오염물질은 주민들 몸에 고스란히 쌓였다. 주민들 건강과 맞바꿔 광양은 '부자 동네'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두 부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여수산단은 1969년 조성된 종합석유화학단지로 현재 270여 개 업체가 가동중이다. 원유를 증류, 정제해 기초 연료를 생산하고 각종 석유화학제품을 제조한다.
변정정희
여수산단으로 가는 길, 광양만 주변 항로에는 선박이 줄을 지어 있었다. 항로는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므로 바닷속 모래를 끊임없이 퍼내야 한다. 바다에서 퍼낸 준설토는 광양항 주변 매립지에 묻는다. 1, 2단계의 투기장은 오래전 매립이 끝났고, 율촌산단과 묘도에 있는 3, 4단계 투기장도 매립이 끝나간다. 율촌과 묘도는 추가로 들어설 매립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바다였고 섬이었던 매립지는 곧 광양항의 배후부지가 될 것이고, 이곳에 물량을 실은 선박이 드나들 것이다. 끝나지 않는 준설과 매립에 최지한 대표는 이렇게 땅이 생긴다고 꼬집었다.
"배가 정말 많이 다녀요. 그러니까 계속 파는 거예요. 준설과 매립이 끝난 곳은 배후 단지가 됩니다. 이 모든 게 광양항 재개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추진하는데, 정말 톱니바퀴처럼 어긋나는 게 없어요. 광양항이 들어서서 준설을 계속하는 건지, 준설토를 처리하기 위해 광양항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어요. 최근에도 암초 하나 폭파시켰어요."
여수산단은 한적했다. 삼일자원비축기지의 석유 탱크가 산처럼 솟아있었고, 프로판, 라피네이트, 부탄, 액화질소 등이 적힌 둥근 탱크가 우주선처럼 서 있었다. 웅장한 금속 건물과 탱크뿐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산단을 둘러싼 철조망에 '접근금지'와 '유해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비축기지를 포함해 여수산단은 2019년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악취는 석유 고유의 냄새이며, 화학공정에서 발생하는 다량의 폐가스가 소각될 때 발생(박성순, 한국독성보건학회, 2020)하는 냄새로 벤젠과 톨루엔같은 발암물질과 이산화황같은 독성물질에서 비롯한다. 여수산단에서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여수·광양 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보고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가스 누출과 화재, 폭발사고, 발암물질 피해가 일상처럼 반복되는 산업재해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안전기원탑만 세워졌다. 비축기지 석유 탱크는 비는 일 없이 채워지고, 온갖 상품이 만들어지는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석유를 쓰면서 다크 투어를 하는 게 맞을까
▲취수장을 통해 섬진강물이 화력발전소와 광양제철소, 여수산단으로 보내진다. 모래밭에는 물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눈앞에 있는 걸 보고도 몰랐을 것이다.
변정정희
하동부터 광양과 여수, 묘도와 섬진강까지 최지한 대표는 내내 불편을 토로했다. 또 석유를 쓰면서 다크투어를 하는 게 맞는지 그는 물었고, 그 고민은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 입고 먹고 마시고 쓰는 모든 일상이 화석연료를 태워 굴러간다. '모든 세계를 지배하는 전능한'(베이커, <증기의 계시>, 1829) 연료로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계절마다 새 옷을 뽐내고 온갖 건강식품으로 저속노화를 꿈꾼다. 나 역시 석유를 태워 굴러가도록 설계된 삶을 열심히 굴리며 굴러가고 있다.
다만 땅을 잃은 사람들과 물길을 잃은 강, 일하다 죽고 병들어 죽은 사람들과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숱한 생명들이 있다는 걸 알아야 했다. 앞에 놓인 것을 봐야만 했다. 그래서 이 전능이 어디에서 왔는지 드러내야 했다. 그럼에도 이 삶을 계속 굴릴 것인지 묻고 싶었다. 다크투어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에 질문 하나가 떠나지 않고 맴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값싼 석유가 남아돌던 시기에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E.F. 슈마허, <굿워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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