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7 11:22최종 업데이트 25.03.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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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발전신안군 제공

트럼프의 기후협약 탈퇴에도 전 세계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 일시적으로 주춤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을 겪으며, 기후위기 대응을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에너지 믹스(energy mix)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에너지 믹스란 한 나라나 지역에서 사용하는 1차 에너지원, 즉 석유,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을 조합하여 구성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또한, 2차 에너지인 전력의 경우에도 어떤 연료를 활용해 생산할 것인지에 따라 에너지 믹스를 논의할 수 있다. 에너지 믹스는 에너지원별 비용, 연료 조달의 안정성, 미세먼지 및 온실가스 배출 수준, 안전성, 간헐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국가 에너지 수요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충족하는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넷제로 시대'는 친환경성, 경제성 그리고 에너지 안보가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에너지 믹스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여겨진다. 따라서 친환경 에너지만을 강조하거나 경제성만을 우선시하는 것은 모두 불완전한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지 않더라도 현재 운영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은 앞으로 70~80년 동안 활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탈핵' 또는 '탈원전'이라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워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한 것은 어쩌면 불완전한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이 재개되는 추세라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친환경 기술이 상용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까지 확보되면서 기업의 ESG 평가, RE100 이행 압박, 무역 규제와 같은 새로운 시장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원전에 대한 논의 역시 불완전한 전략인 것이다.

부산 기장군 해안가에서 국내 최초로 원전 해체 작업이 시작된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24.5.7연합뉴스

에너지원 교체 넘어 생산·공급·소비 구조 전반 혁신해야

과거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연료가 주 에너지원이던 시대와 달리, 넷제로 시대의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에너지원 교체를 넘어 생산, 공급, 소비 구조 전반의 혁신을 요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부족과 가격 폭등의 어려움을 겪은 유럽은 위기극복을 위해 리파워(RePower)라고 불리는 에너지 믹스 정책을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에너지 소비 절감이나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등의 조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역내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유럽연합(EU)은 에너지 효율 지침에 따라 2030년까지 에너지 소비 감축 의무를 9%에서 13%로 확대했고,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수소 보급 확대 및 친환경 기술 협력을 포함한 대외 에너지 협력 강화를 핵심 에너지 전략으로 내세웠다. 또한 신재생에너지를 최우선 이해관계 사항으로 지정하여 2025년까지 역내 태양광 발전 역량을 두 배까지 확대하기로 했고, 2030년까지는 600 기가와트까지 확보하기로 했다. 수소 생산 역량은 2030년까지 1,000만 톤까지 늘리고, 추가로 1,000만 톤의 수입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나아가 EU태양산업연합을 발족하고, 탄소차액계약제도를 도입하는 등 태양광 및 수소에너지와 관련된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에너지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확대 그리고 전기화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한 대체제이자 전기화를 통한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이며, 수소와 탄소 포집·저장 기술은 재생에너지의 부족분을 보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윤석열 정부, 원전 예산은 늘리고 신재생은 대폭 삭감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2023년 3월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무탄소에너지 비중을 52.9%, 2038년에는 70.2%까지 올리겠다고 밝히면서, 동시에 원전 비중도 35.6%까지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의 '질서 있고 건전한 보급'을 위해 저탄소 의무화, 비용 효율화, 산단기업 우대 정책 등을 언급했지만, 원전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린 반면 신재생에너지 보급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해 왔다.

발전량 및 발전 비중 비교산업통상자원부

전 세계적으로 주요 기관들은 파리협정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에너지 시나리오를 연구하고 발표해 왔다. 2050년까지의 장기 전망 속에서도 공통된 점은 모두 재생에너지를 지향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과 탄소 포집과 활용 및 저장과 같은 탄소제거 기술을 연계한 일부 화석연료, 수소 기술도 포함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야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 잠재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에너지 소비 행태의 변화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검토하여 본격적인 에너지 믹스 전략 수립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시나리오 작성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가정, 방법론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 전환은 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이므로,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수적이다.

특히 오픈소스 기반의 에너지 시스템 모델링을 도입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촉진하고 사회적 합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부문 간 전략의 일관성을 고려하는 것도 효과적인 에너지 정책 수립을 위한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탄소중립 규제가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각 부문의 특성을 고려한 단계적 접근을 마련하고, 시나리오의 투명성을 높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실현 가능한 에너지 전환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

장기적으론 에너지 믹스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넷제로 에너지 믹스, 경제성을 반영한 에너지 믹스, 분산형 에너지 믹스 등의 전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확대하고, 지역 에너지의 자립성을 강화하며, 다양한 주체가 연계되는 에너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의 핵심 방향이 될 것이다.

최근 경기도는 기후환경 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광역 전력망 차원의 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기도를 비롯한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더욱 정교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다. 특히 산업단지 내 기업들과의 협력 강화,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오수길 교수고려사이버대오수길

* 필자 소개: 오수길은 현재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회장, 생태전환지원재단 이사장, 한국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ESG 시대의 환경정책과 행정>(2024, 공저), <지역정책 ESG 전략>(2024, 공저), <공공부문 ESG 전략>(2024, 공저) 등의 저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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