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홍대 정문에 설치된 '일베' 상징물 조각상
권우성
한국의 '인셀 커뮤니티'의 대표주자는 역시 '일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여성혐오의 논리가 여전히 한국의 남초 커뮤니티를 지배하고 있고요.
사회학 연구자 김학준은 저서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서 2011~2020년 일베 게시물(약 81만 건)을 수집해 분석한 자료를 보여줍니다. 일베 게시물 중 혐오표현을 분류해보니 단순 악플을 제외하곤 여성/가족에 대한 혐오표현이 가장 많았습니다.
여성/가족 혐오표현 게시물 중 '결혼'과 '관계' 토픽은 40%가량을 차지했습니다. 김학준은 일베 유저들이 결혼을 욕망하면서도 동시에 '결혼해봤자 아내의 시녀가 될 뿐'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로맨틱한 사랑에 대한 꿈과 그에 대한 '여자들의' 배신이 '썰의 형태로 공유된다"라고 지적합니다. '인셀적 사고'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남성' 일베 이용자들은 후기근대적 불안과 순응의 피로를 로맨틱한 이상적 사랑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하지만 '김치녀'라는 한국 여성 일반은 사랑의 이상을 물질화하고, 결혼을 통한 안정의 목표를 '평등'의 이름으로 파괴하는 존재들이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 209p)
일베는 커뮤니티 자체로는 이전에 비해선 영향력을 많이 잃었습니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도전하며 '평등'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반감과 공격은 극에 달해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남초 커뮤니티에 들어갑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정보가 있기 때문이죠.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기기도 전에 남초 커뮤니티의 '인셀적 사고' 혹은 여성들을 공격하는 문화를 먼저 접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 속에서 페미니즘은 '성평등 사상'이 아니라 '남성을 깔보는 반사회적 사상'이므로, 페미니스트를 공격하는 모든 시도는 박수를 받습니다. 그것이 음모론에 기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요.
<인셀 테러>의 저자 로라 베이츠는 10~20대 남성들이 '여성혐오 극단주의'에 빠지는 상황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착취'로 봅니다. 극우파·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의 세력을 모으기 위해 소년들을 표적으로 삼고, 의도적으로 여성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나는 소년들이 "자신이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라고 진단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남성 청소년들이 극우 집회·안티 페미니즘 집회에 나가는 모습이 목격됩니다. 나아가 한 남성 유튜버가 '남성 비하' 논란에 휩싸인 여성 유튜버를 비난하며 살해 협박을 하자, 이에 동조해서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여성 유튜버를 저격하는 영상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더불어 정훈님도 아시다시피 한국은 주류 정치권이 남초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성혐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남성 청년들이 힘들다, 억울하다'에만 초점을 맞춰서, 여성들을 향한 근거 없는 분노를 정당화시켰습니다. 심지어 윤석열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줄곧 주장했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수용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했고요.
남초 커뮤니티의 여성혐오가 은연중에 사회적 승인을 받으면서, 남자아이들이 극단주의에 물들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부모와 선생님은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통제권을 사실상 상실한 겁니다.
"내가 너무 관심을 안 줬나 봐. 근데 자기 방에 있었잖아. 우린 안전하다고 생각했어. 애가 안전한 줄 알았지. 그 안에서 무슨 나쁜 짓을 하겠어? 우리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어."
<소년의 시간>에서 제이미의 아빠 에디 밀러(스티븐 그레이엄)의 말은, '아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가장 잘 요약합니다. 아마 많은 한국의 부모들도 공감하는 상황일 겁니다. '여성혐오 극단주의'에 빠져드는 남자 아이들은, 외면해서도 외면할 수도 없는 문제가 된 겁니다.
남자 어른들이 달라져야 한다

▲<소년의 시간> 스틸컷. 루크 배스컴 경위의 모습.
넷플릭스
"이 문제는 여성과 소녀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 사회적 고정관념의 틈새로 추락해서, 너희의 남성성, 생계 나라가 위협당한다는 공포를 주입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커뮤니티의 품속으로 직행하게 된 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투이기도 하다." (<인셀 테러> 14p)
정훈님, 우리 사회는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소년의 시간>의 가장 탁월한 부분은 매우 복잡한 중층의 문제를 단순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이고, 그것이 <소년의 시간>을 픽션으로만 볼 수 없게 합니다. 현실에서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들게 만드는 까닭입니다.
문제의 본질이 '여성혐오'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아이들을 감시하거나 그저 '내 말이 맞다'고 가르치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또다시 '커뮤니티'로 깊숙이 파고듭니다. 아이들이 변하길 바란다면,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특히 남자 어른들이요.
<인셀 테러>저자 로라 베이츠는 '여성혐오' 문제가 생겼을 때 주동자 한 명에게 처벌을 내리고 끝낸 학교와, 학교 차원에서 문제를 인정하고 남성 교직원들 중심으로 대규모 조회와 토론을 통해서 수년간 이 문제를 다뤄온 학교를 비교합니다. 그러면서 '남성 역할모델들이 책임감 있는 의지를 발휘한다면'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남성성이 문제라면 새로운 형태의 남성다움을 결정하고 이끌어가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남성 자신이다"라고 강조합니다.
<소년의 시간>도 '남자 어른'에 주목합니다. "전 그냥 담임이었어요(...) 저는 몰라요. 이 애들은 통제가 안 돼요. 제가 뭘 어쩌겠어요"라고 책임을 피하는 제이미 담임의 모습은 처참하고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사건을 수사하는 루크 배스컴 경위조차 아들 애덤을 '아들'이라고 부른 게 처음일 정도로 아들과의 사이가 소원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루크 배스컴 경위가 애덤에게 "감자튀김과 콜라를 같이 먹자"라며 "학교는 어땠어"라고 물어보는 장면을 그려내면서, 남자 어른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10대의 여성혐오와 극우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여성을 차별하고 성적대상화하는 기성세대의 남성문화가 '온라인'에 맞게 변형되어 이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규정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지금껏 남자 어른들이 만들어왔던 '남성 지배 사회'의 여성혐오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다음은, 루크 배스컴 경위가 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듣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만으로 모든 게 달라지진 않지만, 그것조차 안 하면 세상은 아예 바뀌지 않을 테니까요. 남자 어른들이 어떠한 성찰 없이 계속 페미니즘을 만악의 근원처럼 말하는 것에만 급급하다면, 아이들은 더더욱 위험한 수렁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