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1월 19일 오전 서부지법 창과 외벽 등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12.3 계엄에 대한 사법적 심판과 엄중한 처벌이 지연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헌정질서의 경계를 넘어선 극단적 행위가 점점 더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자신감과 확신이 어떤 일들로 이어지는 지는 우리 역사에서 부지기수로 보여준다. 친일 청산의 결정적 기회를 박탈한 1949년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습격 사건 역시 통제되지 않은 극우적 난동이 가져올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알다시피 반민특위에 반발한 친일 경찰은 테러리스트를 사주해 반민특위 위원 암살을 시도하거나, 극우 세력을 사주해 반공대회를 열고 반민특위를 압박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자, 그들은 80여 명의 경찰을 앞세워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조사관들을 폭행했음은 물론, 친일파 조사 서류를 모두 탈취했다.
윤석열의 까마득한 검찰 선배인 1대 검찰총장 권승렬은 사무실을 습격한 친일 경찰에게 권총까지 빼앗기며 갖은 수모를 당했다. 결국 반민특위는 사실상 와해해 기능을 상실했고, 총 682건의 친일파를 조사해 559건을 검찰에 송치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들이 대낮에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고 검찰총장을 협박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대통령이 있고, 자신은 절대 처벌받지 않으며,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는 강한 확신과 자신감 때문이었다. 대통령 이승만은 그 사실을 감추지도 않았다. 외신 기자와의 회견에서, 그는 자신이 습격 사건을 지시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습격 사건의 주범을 처벌하긴커녕 반민특위 무력화에 나섰다.
일제 강점기 헌병 보조원으로 일하며 네 명의 독립운동가를 고문해 죽인 한 청년도, 무력화된 반민특위 덕분에 무죄를 판결받고 마산경찰서 경비 주임이 되어 경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가 바로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대에 최루탄을 무차별하게 발사해 김주열을 살해하고 바다에 유기해 4·19혁명의 도화선을 당긴 박종표다.
이런 일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반복됐다. 2003년, 연이은 대선 패배가 시민사회를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이 나라의 극우는 '잔인하다'는 표현으로는 다 담지 못할 반인륜적 악행을 저지른 서북청년단을 부활시키고, 성조기와 이스라엘기, 태극기를 섬기는 기묘한 행적을 이어 나갔다. 게다가 사이버 여론전과 청년 극우의 조직화에도 나섰다.
온라인 속에 갇혀 있던 청년 극우는 세월호 유족의 단식 농성장에서 이른바 '폭식 투쟁'을 펼치며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종교단체, 극우 유튜브를 매개로 연결된 극우 네트워크는 항상 우리 곁에 존재했지만, 최소한 계엄 이전까지는 시민권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극우 유튜브를 애청하는 것을 넘어 맹신하고, 구속을 전후해서는 자신의 구출을 호소했을 때, 이들의 목소리는 '주류' 보수의 입장으로 울려 퍼졌다.
법원을 깨부수고, 전국을 휘젓고,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과격한 언사를 쏟아내는 '행동하는' 극우의 모습은, 자신들이 이 나라 보수를 대표한다는 강한 확신과 정당성, 그리고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헌재 판결의 '정치적 의도'라는 것이 정말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고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극우의 목소리에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시도다.
만일 탄핵이 기각된다면
▲국회 탄핵소추단 의원(박범계, 이춘석, 최기상, 김기표, 박균택, 박선원, 박은정, 이성윤, 이용우, 천하람) 주최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의원실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한 경호원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 방탄가방을 든 채 경계를 서고 있다.
이정민
어느 때보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12.3 계엄 이후의 혼란을 빠르게 종식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정의'가 시급했다. 그 역할은 헌법재판소가 맡았다. 그러나 역대 최장기 평의가 진행되는 동안, 수세에 몰린 보수세력은 극우를 앞세워 공세로 전환하면서 '국민적' 정의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리 헌법과 법률이 그렇게 해석이 어려운 것인 줄은 모르겠지만, 판관의 정치적 입장과 성향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한 헌법이라면, 그토록 오랜 기간 우리가 부여잡고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법의 해석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고 있다면, 선출되지도 않은 엘리트 법관들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한 것은 또 누구인가?
만일 어정쩡한 정치적 판단으로 12.3 계엄의 주범을 파면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면, 단순히 윤석열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사회의 경계와 외부에 머물렀던 목소리를 중심부로 성큼 진입시키는 것이며, 서부지법 폭동과 같은 극단적 행태도 저항권으로 정당화시켜 버리는 결과다.
극단의 목소리가 확신과 정당성,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변두리 동네 신호등 앞에서 홀로 소리를 지르던 그 청년은 계속 소리만 지르고 있을까? 반민특위 습격 사건의 재현이 떠오르는 것은 단지 과민한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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