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7 06:51최종 업데이트 25.03.27 06:51
  • 본문듣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9일 새벽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 침입해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난동을 부려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부지법 외곽에서 바라 본 폭동 흔적.남소연

"장담하건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일 걸요."

지난 '1.19 서부지법 폭동'을 겪은 직후 한 아이가 태연하게 건넨 말이다. 폭력을 동원해 사법 기관을 짓밟은 난동에 경악하면서도, 헌법 질서를 파괴하는 극우 세력의 준동은 멈추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나름 그럴듯한 근거를 댔지만, 난 '기우'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보다 '1.19 서부지법 폭동'이 또래 문화에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국민 저항권'이라는 말을 무시로 입에 올리고, 좌파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이 유행처럼 번졌다. 아이들은 뜻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부르댄다.

일부 아이들은 1980년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에 맞선 광주 시민의 '국민 저항권'과 윤 대통령의 탄핵에 맞선 그것을 유사한 사례로 이해한다. 역사적 정의와 헌법 수호라는 가치가 상반되는 사안인데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지나치게 납작한 역사 인식이다.

인권에 대한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천부인권'의 의미를 내란의 우두머리인 대통령에게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소리를 해댄다. 대통령이기에 더 많은 권리를 누려서도 안 되지만, 최고 권력자라는 이유로 권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객관적인' 설명까지 덧붙인다.

얼마 전 윤 대통령의 구속이 갑작스레 취소되었을 때다. 법원이 무슨 근거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언론마다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아이들은 구속 취소라는 결과에만 관심을 보였다. 이제 탄핵 심판 절차가 멈추게 되는지를 묻는 아이도 있었다.

교실의 극우화, 원인이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wiki commons

아이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탄핵 심판과 형사 재판을 구별하지 못하고, 범죄의 구성 요건과 절차상의 하자를 마구 뒤섞어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를 대법원의 휘하 조직 아니냐고 반문하는 아이도 있다. 그들은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를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다. 거기서 알게 된 정보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진다. 그들끼리 주고받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 가짜 뉴스는 걸러지지 않는다. 가십거리로 소비될지언정 '팩트 체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를 바루어야 할 학교 교육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정치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교실에선 함부로 정치 관련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 수업 중에 아이들 앞에서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입에 올렸다간 자칫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고발당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조심해야 한다. 무심코 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 수 있고, 그 또한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과거 윤 대통령의 공약과 정책을 비판했다가 여러 차례 민원이 제기되어 소명하느라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

예컨대, "윤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통령 탄핵 제도의 취지와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걸로 답변을 대신하게 된다. '동문서답'이지만, 그게 가장 안전하다. 탄핵에 대해 뭐라고 답하든 그들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게 뻔해서다.

정규 교육과정에 '정치와 법'이라는 과목이 있지만, 일부 아이들만 배우는 선택 교과인 데다 내용 역시 '공자님 말씀'만 가득하다. 요즘처럼 대한민국의 다이내믹한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별 쓸모가 없다. 학교는 '현실'이 아닌 '이상'을 배우는 곳이라는 말은, 차라리 조롱이다.

현행법상 정치와 교육은 상극이다.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이 맞장구치며 전교조를 좌파로 낙인찍고 조리돌릴 때 전가의 보도처럼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든다'는 이유를 댔다. 그들은 전교조 스스로 신성한 교직을 노동자로 자기 비하하며 학교 교육을 허물어뜨렸다고 아우성쳤다.

교사들은 이내 움츠러들었고 아이들 앞에서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못하는 '정치적 천민'으로 전락했다. 하루가 멀다 않고 정치적 사건들이 잇따르는 현실에서 학교는 정치에 대해 궁금해하는 아이들을 되레 죄악시하는 상황이 됐다. 정치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아이들은 정치에 대한 호기심도 교실이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통해 채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더 궁금한 게 생기면 알고리즘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간섭하거나 강제하는 이도 없고, 알게 된 내용을 확인하는 시험도 없다.

그 결과가 '교실의 극우화'다. 극우적 사고에 경도된 아이들이 시나브로 늘어나더니 근래 들어 다수를 점하는 모양새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면 다행이지만, 교실 안에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게 필연이다.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이 절실한 이유

토론 수업 (자료사진)unsplash

아이들의 손에서 당장 스마트폰을 빼앗는 게 해법일 리 없다. 그렇다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한다는, 관료들이 내놓는 방안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교실마다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태블릿을 일괄 지급하면 아이들의 정보화 역량이 향상될 거라는 인식처럼 허망하다.

공짜 태블릿에 버퍼링 없는 고성능 와이파이까지 깔려 교실은 'PC방'이 됐다는 자조가 넘쳐난다. 학교마다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자치 규약을 만들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급기야 일과 중 전자기기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교육청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교실의 극우화'를 막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오로지 이것뿐이어서 좌고우면할 필요도 없다. 교사에게 '정치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 수십 년 동안 교사들의 의식을 옥죈 정치적 중립 의무 규정을 손보는 것이다. 법이 제정될 당시의 취지에 따라 제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된다.

기실 정치적 중립 의무 규정은 전국의 교사들을 자신의 수족 부리듯 해온 이승만 정권의 무도함에 저항하며 도입된 조항이다. 말하자면, 4.19 혁명이 일궈낸 결실이었다. 그런데, 5.16 군사 정변 이후 30년 넘게 지속된 독재정권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한 교사는 자신의 낡은 수업 방식부터 바꾸게 될 것이다. 요즘 같은 시기엔 탄핵 찬반을 두고 아이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설계할 수 있다. 정치인의 공약을 주제로 한 수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잠자는 교실을 깨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극우적 사고는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으로 파편화한 교실의 고립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다. 토론이 일상화한 교실에서는 극우적 사고가 발붙일 공간이 없다. 특히 상충하는 정치적 쟁점을 화두로 삼은 토론이라면, 아이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키우는 데 더없이 요긴하다.

아이가 '1.19 서부지법 폭동'으로 드러난 극우 세력의 준동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한 건, 학교 교육에 더는 희망이 없다는 자괴감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는 망상에 빠진 윤 대통령보다 극우 유튜브에 빠진 짝꿍이 더 걱정된다고 했다. 그가 윤 대통령이 파면되더라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아이들은 나의 스승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