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30 15:39최종 업데이트 25.03.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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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이름이 적인 지방을 태우고 있다.나눔과나눔

"이렇게 장례를 잘 치러주니까 가족들이 돈 아끼려고 시신을 위임하는 겁니다. 공영장례는 21세기의 고려장이고, 패륜을 장려하는 제도입니다."

얼마 전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한 댓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부정적인 댓글 하나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강의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일에 대해 나눌 때 종종 듣는 이야기거든요.


시신을 위임한 가족이 장례에 찾아오는 것에 놀라는 자원봉사자들도 있습니다. "시신을 위임했는데 와도 되는 거예요?" 이 질문 속에는 어떻게 가족을 버리고 그럴 수 있느냐는 유족에 대한 질책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런 질책과 질문에 대해 사례로 대답해 보려고 합니다. 그저 돈을 아끼려고, 지자체가 대신 잘해주니까 장례를 포기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어느 청소년의 눈물

몇 해 전 일입니다. 공영장례 빈소에 앳된 얼굴의 누군가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자원 활동을 온 대학생이라고 생각했지요. 바로 뒤이어 들어온 중년의 여성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자원 활동에 대해 안내하는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고인의 자녀였고 같이 온 중년 여성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장례를 치르기 전 확인한 고인의 공문에 있던 '이혼, 부모 사망, 형제자매 없음, 자녀 있으나 미성년자로 장례 치르기 어려워 시신 위임서 제출'이라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어두운 표정으로 빈소에 들어온 그들은 고인의 위패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에 담겨 있었던 것은 고인에 대한 애틋함과 직접 장례를 치르지 못한 미안함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며 조심스럽게 그들의 사정을 예상해 보았습니다. 고인의 자녀는 미성년자로 장례 치를 여력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고인의 전 배우자는 법적인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빈소에 앉아 차분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연 그랬습니다. 고인의 전 배우자는 새로운 가정을 꾸린 상태였고, 그 때문에 주변에 고인의 부고를 알리고 장례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아직 미성년자라 고인의 자녀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고요.

고인의 장례는 평일에 치러졌습니다. 고인의 자녀는 교복을 입고 왔고요. 평소대로라면 학교에 있어야 했을 시간입니다. 고인의 자녀는 학교에 무어라 말하고 공영장례에 참석했을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이혼한 상태고 저는 미성년자라 장례를 치를 수 없어 시신을 위임했습니다. 그래서 무연고 공영장례로 장례가 치러지는 데 거기에 다녀와야 합니다'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머니와 함께 현장 학습 간다는 핑계를 대고 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고인의 사별자들은 다니던 직장에,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사실대로 말했다간 비난의 화살이 돌아올지 모르니까요.

중환자실에서 쓴 시신 위임서

제단 위에 놓인 헌화 꽃나눔과나눔

만약 주변에 사실대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에 대한 대답이 이 사례에 있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장례를 치렀던 고인이 있습니다. 고인의 장례에 아무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장례를 기록하는 일지에는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문구가 적혔습니다. 그리고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고인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를 거친 숨과 함께 내뱉었습니다. 그 내용은 어떤 이유로 자신이 자녀의 시신을 위임했으며, 장례에 찾아가지 못했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40년 전에 저는 일을 하러 해외에 나갔습니다. 그 옛날에는 지금처럼 인터넷 같은 게 없었잖아요. 가족들과 연락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연락이 어려우니까 사이도 멀어졌죠. 결국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러 갔는데, 아내와 소원해졌고 이혼하게 됐습니다.

아들은 가정이 깨진 원인이 저라면서 집을 나갔고요. 아들과는 종종 만나긴 했어요. 하지만 저랑 가까워지길 계속 거부했습니다. 아마 제가 그 이후에 재혼을 한 게 맘에 들지 않았나 봐요.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작년이었습니다. 현장 일을 한다길래 몸 상하니까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얘기했어요. 그 말에 화내면서 가더군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제가 올해 사고를 당했어요.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죽었대요. 장례를 치를 거면 시신을 인수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제가 어떻게 장례를 치릅니까. 그렇다고 지금 아내랑 자녀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어요. 사정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니까 사체포기각서를 쓰라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썼습니다.

얼마 전에야 병원에서 나와서 걸어 다닐 수 있게 됐어요. 장례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갈 수가 없었던 게 원통합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들 장례를 치러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고요. 장례를 그쪽에서 잘 치러줬다니까 참 고맙습니다. 제가 몸이 좀 더 나으면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러 가겠습니다."

길었던 통화 이후 고인의 아버지는 실제로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점심을 사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친척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고, 그 결과로 자신은 아들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가 되었다고요.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아들을 무연고로 보낸 것은 사실 아니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이야기였지요. 가족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고인의 아버지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가 유일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애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앞선 두 가지의 사례처럼 고인의 가족들은 힘든 과정을 거쳐 시신을 위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신 위임서의 위임 사유에 적힌 '저도 수급자입니다'는 문구는 마주할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도저히 위임서를 쓸 수 없어 하루의 말미를 달라 지자체에 읍소한 형제의 사례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이튿날 결국 위임서를 쓰게 되었지만 그 하루 동안 힘든 고민이 이어졌겠지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무연고 사망자'의 유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닙니다. 마음껏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오늘은 두 가지 사례만 이야기했지만, 모든 고인과 유족 각자에게 이러한 사정이 존재합니다. 하루에도 여러 장 받아 보는 시신 위임서지만 그 무게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 한 장의 종이에 서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공영장례를 통해 만난 가족들의 이야기 덕분에 알게 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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