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7 16:25최종 업데이트 25.03.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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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친위 쿠데타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이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회복력을 확인시켜 주었다면, 이후의 정치 갈등은 아직 많은 해결 과제가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판결의 시간이 왔고, 향후 몇 달의 정치와 정책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는 대내외적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있다. 외부로는 지정학적 리스크, 미·중 무역 갈등, 인공지능(AI) 기술 경쟁, 트럼프 재집권 리스크에 직면해 있고, 내부로는 경기침체, 고용불안, 소득 및 재산 양극화, 주거 불안, 젠더 갈등 및 세대 갈등,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등이 심화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외정책 외에도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갈등의 근본 원인이라 할 경제 사회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사회개혁이 시급하다. 지금까지가 대화와 타협이 힘든 정치의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정책의 시간이다.

불평등·상대적 박탈감이 한국 민주주의 병들게 한다

21세기 주권 국가들은 세계화 앞에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와 대의제 ▲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난 행정·사법 권력 ▲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 등의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데 별다른 대책이 없다. 좌우로 정권을 바꿔봐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의 부패와 탈법사례, 고용과 주거 등 민생정책의 실패는 계속된다.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이유다. 2023년 한국 시민들의 정부 신뢰도는 약 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고, 정당과 국회 신뢰도는 각각 20%와 21%로 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OECD 2024년 자료)

선출된 정치권력에 맞서는 '사회권력의 시대'가 도래했다. 불평등하고 불안한 세계에서 시민들은 이합집산하며 사회권력을 만들어낸다. 소셜미디어(SNS) 등 수많은 정보매체가 그 중심에 있고, 레거시 언론을 넘어 정부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순기능을 하는 사회권력도 있지만, 극우세력처럼 퇴행적 사회권력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극우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모두 부정한다는 점에서 우파나 급진우파와 다르다. 그 지지자는 저학력자, 저소득층 그리고 노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신뢰나 연대보다 불신과 증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트럼프 대통령 슬로건)나 독일의 극우정당(AfD), 프랑스 극우정당(RN)이 그렇다. 이렇게 반세계화, 반이민, 성소수자 혐오 등이 이들의 구호가 되었다. 참고로 현재 한국의 극우 지지자는 전체 인구의 13~20%로 추정된다.(3월 17일 <한겨레>).

극우세력의 성장배경은 분명하다. 정치 불신, 정체성 갈등, 가짜뉴스도 큰 원인이지만 경제 사회적 불평등 심화가 근본 원인이다. 세계불평등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1990~2023년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0.508에서 0.584로 약 14.9% 증가했고, 유럽은 0.461에서 0.478로 약 3.6% 증가했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서구 국가 중 가장 많이 증가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같은 기간 0.350에서 0.457로 약 30.7% 증가했다. 절대 수준은 미국이나 서구 국가보다 낮지만 증가율은 미국보다도 두 배 이상 높다. 불평등 심화의 충격이 매우 컸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소득 불평등을 넘어 재산 불평등이 커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고 있다. 분노와 증오 위에서 퇴행적 사회권력이 자라날 토양이 조성된 것이다.

생활세계 해체와 시민연대 위기... 사회권이 무력화하고 있다

한국은 소득불평등을 넘어 재산불평등이 커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고 있다.셔터스톡

많은 시민들이 생애주기별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역순으로 노년층-근로연령층-청년층 순으로 각 세대의 삶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 노년층의 삶은 고통스럽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 실태 조사(2023년)에 따르면 노인만으로 구성된 가구는 전체 노인가구의 88%에 이른다. 3년 전보다 약 10%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대다수 노인이 해체된 사적안전망(가족)과 취약한 공적안전망(복지) 사이에 방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2023년 현재 노인빈곤율 38.2%, 노인자살률 10만 명당 59.4명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근로연령층 또한 편안한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 양극화는 많은 노동자에게 고용불안과 임금 격차를 경험하게 한다. 민간 부문 노동자들은 49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 약 70세까지 20년간을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로 일한다. 낮은 소득으로 주거를 마련하고 자녀를 양육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부모를 부양하거나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

끝으로 청년층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시달리고 있다. 정규직 취업이 힘들고,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기간이 길다. 이처럼 일자리가 불안하고 주거 마련이 힘든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핵심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는데 다른 정부 지원만으로 성과가 나기 힘든 셈이다. 모두가 아는 문제다. 다만 누가 어떻게 실천하는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열심히 일해도 작은 집마저 마련하기 힘들고, 더 일하려 해도 그마저도 어렵다. 누군가는 좋은 처우와 지위를 위해 과도한 노동시간을 견디고, 다른 누군가는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모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권 무력화시키는 정치·정책... 어떻게 더 불평등해졌는가

지난 17일 금속노조 간부들이 사흘 전 현대제철 포항공장에서 발생한 20대 비정규 노동자 추락 사망 사고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금속노조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적 불평등 해소가 중요하다. 그런데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의 강한 충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사회권에 대한 무관심과 선별적 접근 그리고 반복된 정책 실패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권을 경시하고 정책에 실패해도 그것을 엄하게 심판하지 않았던 게으른 민주주의 또한 문제였다.

사회권은 선별적이고 불균등하게 발전해 왔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권과 주거권 문제에 대해서 정책 실패의 위험성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핵심 사회권 보장이 지연되면 다른 사회권 강화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예를 들어 노동권과 주거권 보장의 취약성이 복지제도 강화의 성과를 상쇄하는 식이다.

지난 20년간 사회지출을 가장 빠르게 늘려왔고 많은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여전히 시민들의 복지 체감도가 낮은 이유다. 비유하면 복지는 80%의 물이 들어있는 잔에 20%의 물을 채워 넘치게 하는 제도인데, 지금 잔의 물이 50%도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회권은 다른 사회권과 이어져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일수록 사회보험을 통한 소득 보장이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의 고용 지위는 사회보험 가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동권의 취약성이 사회보장권을 제약하는 것이다.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8.4%로 정규직 노동자의 96.8%보다 매우 낮다. 다른 사회보험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의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가입률이 각각 93.6%와 97.1%인 반면,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54.2%와 52.6% 수준이다.

부처 간·제도 간 칸막이도 사회권 보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민연금 개혁을 예로 들 수 있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 기금의 재정 안정성을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낮추자는 주장 모두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다. 인구 고령화로 가입 기간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개혁에는 사회보장권과 노동권에 대한 종합적 고려가 부족하다. 제도 간 또는 부처 간 칸막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그로 인해 민간 부문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삶에 대한 배려가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개혁 방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컸음에도 정작 반응이 냉담한 이유다. 물론 그동안 연금 개혁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보였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불신도 한 원인이다.

하지만 이 개편안은 민간 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민간 부문 중소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 그리고 실업자는 2024년 약 2599만 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88.5%에 이른다. 이들은 심해진 고용불안으로 40대에 주된 일자리에서 나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로 일한다. 노후가 불안하니 경제활동은 70세까지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은 근본 원인이다.

더욱이 이들은 법정 정년을 늘려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결국 실질 소득대체율을 높이려면 충분한 기여 기간을 보장할 고용 대책이 관건인데, 이 문제에 대한 고려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연금 개편은 노동 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복지부와 노동부, 그리고 이해당사자 간의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사회권으로 포괄되는 다양한 권리를 유기적으로 봐야 한다. 편의에 따라 선택하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회권의 효과를 반감시키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시민들 삶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다양한 권리의 메타적 권리로서 사회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권력 정상화와 사회권 역할... 치열한 정책 논쟁할 때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6차 범시민대행진에 '우리나라 정상영업합니다'를 비롯한 다양한 깃발이 입장하고 있다.남소연

우리 시민들에게는 국난 극복의 DNA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잠재력이 있다.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 활성화된 시민권력 ▲ 전문성을 가진 정부 ▲ 공공서비스를 공급하는 헌신적인 노동자들 ▲ 강력한 정보인프라와 정책 경험 등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잠재력을 어떻게 모아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첫째, 다음 정부는 사회개혁의 방향과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설익은 공약을 고집하거나 기존 정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집권 초기 사회개혁 방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수립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설계할 강력한 권한을 가진 추진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특히 사회권의 통합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매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둘째, 기존 정당들은 정책정당으로 혁신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5년 단임정부로 성공하는 정책을 만들기는 힘들다. 특히 노동권이나 주거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정교한 개혁안을 만들고, 사회세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당들은 정책 생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서둘러 선거공약을 만들고, 집권 후 방치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렇게 성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제 보수와 진보가 무엇이 다른지 정책으로 입증할 시점이다.

셋째,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기술을 사회권 보장 정책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미 세계는 데이터와 AI 기술 경쟁으로 뜨겁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인프라를 가졌지만, 공공부문의 데이터 활용은 여전히 미미하고, 데이터 산업의 발전도 더디다. 이제 부처를 아우르는 정보시스템과 AI 기술을 결합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주기별로 사회권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파편화된 제도를 재구조화하고, 조직을 개편하고, AI 시스템에 대한 모니터링체계를 준비해야 한다.

넷째, 더 공정하고 작동 가능한 사회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의 사회지출은 1990년 OECD 평균의 17.3%였지만, 2020년 72.6%까지 높아졌다.(2020년 GDP의 15.6%) 그만큼 격차가 감소한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역의 지출이 낮고, 누가 정책의 사각지대인지 더 꿈꼼히 봐야 한다.

지출 확대에 앞서 성공한 사회정책으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보험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선 새로운 대안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회보장세도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은 '증세는 선거 필패'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주주의의 사회모델'을 준비할 때다.

당장 현실에서 새로운 세계로 뛰어넘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한 걸음씩 신뢰를 얻고 연대의 경험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느린 걸음이다.

노대명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소셜 코리아 자문위원)노대명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노대명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며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입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원장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한국 사회보장체계의 혁신과 사회보장 분야의 디지털 전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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