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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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은 영웅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용기와 감수성을 지녔다. 이 영화에서 감흥을 받는 지점이다. 영화는 빌의 시점에서 마을 주민들을 조명하는데, 동네 사람은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애써 외면하거나 함구한다. 수녀원의 힘이 두렵기 때문이다. 빌은 다르다. 빌이 소녀를 구출해 집으로 돌아올 때 두 사람은 마을을 천천히 걸어서 통과한다. 두 사람은 쏟아지는 시선을 알면서도 꿋꿋이 나아간다.
빌이 내린 외롭지만, 용기 있는 선택이다. 그가 이런 결정을 한 배경에는 영화가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빌의 어린 시절 경험이 작용한다. 빌은 어린 시절 윌슨 부인 집에서 자랐다. 윌슨 부인은 갈 곳 없는 빌의 어머니와 빌을 거두고 도왔다. 윌슨 부인 덕분에 빌은 어머니와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빌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환대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영화에서 관객은 사랑받은 존재가 사랑하는 존재가 된다는 진실을 확인한다.
영화에서는 대사가 없게 처리되지만, 원작의 이런 결말은 인상적이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용기를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는 걸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내가 최근 읽은 국내외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결말이다. <사소한 것들>을 읽거나 보면서 권력화된 종교의 모습을 확인하고, 지금 일부 종교 세력이 보여주는 황당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종종 무기력감을 느끼는 힘든 상황에서 약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나는, 그리고 아마도 다수 시민은 심한 무기력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가끔은 희망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종종 묻게 된다. 빌과 같은 평범한 시민, 노동자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빌의 마음을 전하는 묘사에서 힘을 얻는다.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하는 "순진한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성심껏 하는 것이리라. 그게 짐승이 아닌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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