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생식물로 붉게 물든 화성호의 염습지. 이어지는 비식생 습지는 화성습지에서도 물새들이 가장 선호하는 서식지다. 경기국제공항 건설 계획안에서 활주로로 예정된 자리다.
정한철
다만, 평화가 파괴된 곳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생태환경이 있다. 파괴를 딛고 서려는 삶들이 있다. 농섬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화성습지에도 펼쳐져 있다. '화성습지'란 매향리 갯벌과 화옹지구 간척지, 그리고 화성호까지 73km²의 드넓은 연안 습지를 아우르는 말이다. 매년 수만 명('마리' 대신 목숨 '명(命)'으로 부릅니다)의 철새가 오가는 이곳은 국제철새보호기구 EAAFP(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에 등재된 철새이동경로 네트워크 서식지다.
화성호는 서남해안 간척농지 개발사업(대단위농업개발사업)으로 화성 궁평리와 매향리를 연결하는 9.8km 길이의 방조제가 세워졌을 때, 화옹지구 간척지와 같이 형성된 인공호수다. 바닷물이 통하지 않아 수질이 크게 악화한 뒤 15년간에 걸친 해수 유통으로 되살아났는데, 이 과정에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어우러진 기수역으로 다시 태어났다. 방조제의 바깥쪽으로는 여전히 갯벌이, 안쪽에는 갈대 군락과 염습지, 비식생습지가 생겨났다. 담수와 해수의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에 훨씬 다채로운 생태계가 이뤄졌다. 간척으로 만들어진 인공습지는 습지도, 자연도, 생명이 아닐 거라는 편견과 달리, 화성습지는 거대 자연의 놀라운 적응력과 회복력을 보여준다.
화성습지라는 이름의 의미도 드넓게 열려 있다. 2018년, '새와 생명의 터' 대표 나일 무어스 박사와 '화성습지 세계유산등재 추진 시민서포터즈'의 정한철 집행위원장이 고민해 지었던 이름이다. 무어스 박사는 화성습지를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중요한 습지'라고 부른다. 정한철 위원장은 그 의도치 않은 결과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환경이라고 말한다. 그는 수원에서 태어나 지금은 화성에서 살고 있는 시민이기도 하다.
"무어스 박사님이 먼저 웻랜즈(Wetlands)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냥 랜드(land)가 아니라 랜즈(lands). 다양한 습지를 통칭하려고요. 왜냐하면 습지, 라고만 하면 오해를 사요. 갯벌은 갯벌이고, 습지는 갈대밭 있고 물이 차랑차랑 고여 있고 늪 같은 곳 아니야? 그러는 거 같아요. 물론 그것도 맞는데요. 갯벌도, 바다도, 섬도, 산호초도 습지에요. 연못도, 옹달샘도, 둠벙도, 도랑물도 다 너무 중요하고 소중한 습지고요."
국제적으로 습지의 보존과 지속 가능한 이용을 요구하는 람사르 협약에서도 "습지는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영구적이든 임시적이든, 물이 정체하든 흐르든, 담수, 기수, 염수와 관계없이 물로 된 지역"을 말한다. 인공습지이기에 사라져도 되는 게 아니라, 다시는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한다.
우리는 고통으로, 통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람사르 협약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기도 하다. 15만 명 이상의 물새와 16종의 멸종위기종이 살아가는 화성습지는, 람사르에서 특히 보전을 권하는 람사르습지의 요건도 충족한다. 이는 습지의 수많은 서식 생물 중 조류만을 중요하게 여겨서가 아니다. 새를 보호함으로써 새와 연결된 생태계를 함께 돌보기 위함이다. 새가 많고 다양한 곳에서는 생물 다양성도 활발해진다.

▲정한철 위원장이 촬영한 영상 <도요새의 위대한 비행 그리고 화성갯벌>(2018). 제1회 화성습지 국제심포지엄 상영작으로, 나일 무어스 박사가 해설을 붙였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약 열흘간을 쉬지 않고 날아오는 붉은어깨도요나 큰뒷부리도요를 포함해서 (…) 음식이나 휴식 없이 번식지인 러시아나 알래스카를 향해 날아갈 다음번 ‘위대한 비행’을 하기 전까지, 새들은 화성갯벌에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충분히 쉽니다.”
정한철
특히 화성습지를 많이 찾는 알락꼬리마도요를 비롯해 봄철에 자주 보이는 도요새는 멸종위기종이자 국제 보호종으로, 2016년부터는 화성을 상징하는 시조가 되었다. 정한철 위원장에게도 그 의미가 각별하다.
"3만 5000명의 붉은어깨도요들을 만난 2018년 어느 날, 도요새와 약속했어요. 그 영상에 제 콧물 훌쩍이는 소리가 담기는데요. 새들이 군무를 펼치며 날아가는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흩어지고 모이고 나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신비하고 놀라웠어요. 그때, 마음속에 새들이 이런 목소리로 다가왔고요. 우리를 이대로 놔주세요. 여기서 있는 그대로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너희를 지켜줄게. 우리 후손의, 후손의, 후손들과도 언제까지나 공존할 수 있게 개발의 위협과 파괴에서 막아주겠다고, 약속하게 됐어요."
그 약속이란, 인간과 비인간 생명의 깊이 연결된 관계를 책임지겠다는 다짐이며, 고향인 수원의 시간을 지켜봐 온 이가 화성이라는 또 다른 터전의 고통에도 감응하고 응답하려는 실천이다. 새의 고통은 동시에 인간의 고통이다. 수원 시민이 겪는 소음 피해는 매향리 주민이 겪어온 시간과 맞닿아 있다. 수원 군 공항은 병점과 같은 화성의 인근 지역과도 인접해 있기에, 그 지역민들은 이미 같은 소음 공해 아래 있다.
새들의 삶도 늘 위험에 맞물려 있다. 대다수의 군 공항에서 경음기, 공포탄, 폭음탄, 엽총 등의 소음으로 조류를 퇴치한다. 조류 '퇴치'가 아닌 '관리'라고 부르는 외국들과 달리 대한민국만이 퇴치라는 용어를 쓴다. 퇴치. 물리쳐서 아주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조류를 퇴치한다는 건, 새의 목숨을 완전히 외면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공항을 짓고자 새의 거주지를 빼앗고, 인간이 스스로 호소한 피해를 새에게 떠미는 것이다.
새들은 인간에게 덜 보이거나 인간이 기어이 보려 하지 않는 고통에 처해 있다. 소음 공해는 새의 번식과 서식과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며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새를 포함한 모든 야생 동물에게 청력은 위험을 감지하고 먹이를 찾아 생존하려면 없어서는 안 되는 감각이다. 결국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지는 소음이 새의 생존 감각을 망가뜨린다. 원인도 이유도 알지 못한 채로 새를 죽게 만든다.

▲경기국제공항 복수 후보지
경기도
현재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로 평택시 서탄면, 이천시 모가면도 같이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평택에는 주한미군 오산 기지가, 이천에는 육군 기지가 있다. 그곳 주민들도 비행장과 전투 훈련장에 의한 불편을 앓고 있다. 어디서도 군 공항을 환영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는 군 공항이 아닌 신공항이면 괜찮다는 말도 아니다. 대부분의 신공항 사업처럼 경기국제공항의 필요성도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논의된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높은 부가가치와 매출을 기록하는 경기도에 반도체 물량 수송을 위한 공항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이 하락해가고 항공 화물이 소형화되는 추세에서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0.05%만을 차지하는 가운데, 경제성에 오히려 의문이 생긴다. 이용객의 수요도 그렇다. 화성과 비교적 멀지 않은 거리의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청주공항 사이에 신공항이 지어지면, 이용객의 수요가 서로 겹쳐 상쇄될 수가 있다. 전국에 운영 중인 15개 공항의 대다수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현실도 유념해야 한다.
삶을 파괴하는 안보가 진정한 안보일 수 없다
"우리는 나의 고통을 다른 동료 시민에게 전가하는 폭력적인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상생하는 평화로운 방법을 바랍니다.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긴장 완화, 화성습지의 생명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이전'이 아니라 '폐쇄'가 정답입니다. 화성이 아니라 유치를 희망하는 다른 지자체로의 이전은 괜찮을까요? 어떤 작은 존재에게라도 고통을 준다면 정의롭지도, 평화롭지도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안보에 대한 우려도 제기하나, 생명과 평화야말로 안보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까.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안보, 평화를 위협하는 안보가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 '수원군공항(수원전투비행장) 폐쇄를 위한 생명․평화회의' 성명문(2022.6.23.) 편집 발췌
정한철 위원장이 속해 있는 '수원군공항 폐쇄를 위한 생명평화회의'는 수년 전부터 군 공항 이전 대신 폐쇄를 요청해 왔다.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도모하는 이 연대기구에서는, 수원과 화성은 물론 경기지역의 수십 개 시민사회 단체가 모여 '공생'의 길을 모두의 공통 의제로 나눈다.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평화는 처음이라>(빨간소금, 2021, 31쪽)에서 이렇게 묻는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 질문은 "평화가 무엇이냐?"보다 "평화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나?" 하는 인식의 전환"이라고.

▲2000년에 국방부가 발표한 ‘매향리 사격장 한미 합동조사관련 후속 조치 계획’ 일부. “주민들이 불편해 하는 항공기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총사격장의 표적위치를 농섬 일대로 이전하는 방안을 한미간에 폭넓게 협의”한다는 문장이 있다.
매향리평화기념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국가 안보를 지킨다는 군 공항이, 경제 안정을 꾀한다는 신공항이 정작 그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비인간 거주민의 안위는 전혀 살피지 않는 모순을 본다. 미군 기지로 징발된 땅에서 일상을 빼앗긴 매향리 주민들처럼, 공항의 일부가 된 하늘에서 위태롭게 생을 연명하는 새들을 본다.
2000년, 국방부는 매향리 사격장에 대한 후속 조치 계획을 발표하며 "주민이 늘어나면서부터 많은 민원이 제기되어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전국 거의 모든 군사기지에서 공통"되는 문제임을 인정하고도, "앞으로 우리 군은 '국가안보와 주민 생활권 보장'이라는 상충되는 두 가지 문제를 슬기롭게 조화시키기 위해 (…) 지속적인 전투력 유지와 철통같은 한․미 연합대비태세 유지"를 약속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갈등을 방치하는 것이 슬기이고, 조화라니. 전투력이 평화인가? 전쟁에 대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 평화인가? 거기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많은 민군 겸용 공항은 수요 부족으로 사실상 군 기지처럼 쓰이기도 한다. 유사시에는 먼저 공격이 가해질 수 있다. 민군 겸용 공항이라는 발상부터 몹시 위험하다. 이 모든 대립은 끝내 폭탄 돌리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폭탄은 떠넘겨지는 게 아니라 없어져야 한다. 삶을 부수는 폭탄을 지키려고, 파괴된 삶을 공존의 삶들로 되찾은 화성습지가 다시 파괴될 이유가 없다.
기지 폐쇄가 안보 축소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평화를 축소하는 군사적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평화군축이 시급하다. 학살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정세 속의 뜬구름 같은 얘기가 아니라, 그것이 구름도 삶도 미래도 전부 잃지 않을 최선의 길이다. 더욱이 경기도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을 약속했다. 항공기는 탄소 배출량이 높은 운송 수단이며 습지는 탄소를 흡수해 온실가스를 줄인다. 기후 이상으로 난기류 사고가 잦아지고 있는, 기후 위기를 넘어선 붕괴 속에서 삶을 택하는 일이 더 이상 타협될 수 없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평화에 있다
▲농섬(좌)과 웃섬(우). 섬에도, 철조망 너머의 푸르른 바다에도 숨 쉬는 존재들이 있다.
정한철
결코 미뤄질 수 없는 삶들에 대해, 정한철 위원장도 자주 전하는 얘기가 있다. 화성습지에서 만나 알래스카로 간 큰뒷부리도요들이 한 둥지를 이룬 뒤 이듬해에도 같은 곳에 와서 서로를 기다린다는, 매년 화성습지를 향해 길고 먼 허공을 날아오며 저기에 여전히 삶터가 있다고 믿는 새들의 이야기다. 인간이 집에 돌아오듯 새도 집터로 회귀한다. 새도 사랑하고 의지하며 상실감을 느낀다. 가족과 친구, 동료와 이웃을 잃고 남겨진 삶에 슬퍼하고 운다.
"연대라는 거, 존재의 연결이란 거, 저는 그리 믿어요. 누구나 행복을 원할 텐데, 옆에서 울고 있으면 나 혼자 행복할까요? 나로 인해 아프고 위협받고 죽임당하고 사라져가는 존재를 견디지 못할 거 같아요."
그 마음을 더 가까이 느끼고 알려 하면, 달리 보이고 들리며 같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로 모이는 길들을 그려가는 오늘날, 그 미래야말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함께 생태 평화를 살아갈 수 있는 민주주의다. 우리 모두에게 그곳은 집이고 둥지이며, 광장이고 습지이다. 평화는 거기에 있다.
[필자 소개] 김누리: 읽고 쓴다. 돌봄과 연결의 힘에 기대어 더 정확히 비관하고 구체적으로 낙관하고 싶다. 현재 전주에 거주하며, 모든 거리와 더 공생할 수 있는 삶을 실천하기 위한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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