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5 14:32최종 업데이트 25.03.2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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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주변에 경찰버스가 차벽을 만들어 배치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기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권우성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 선고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26일 열린다. 두 사람이 나란히 운명의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이와 맞물려 찬탄이냐 반탄이냐를 두고 패가 갈려 정국 혼란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 피로도가 최악의 상태다. 피가 말라야 할 당사자들보다도 민심만 바싹바싹 마른다. 정파를 떠나 법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심히 개탄스럽다. 더욱이 법을 아는 법조인 출신들이 법을 기망하는 형국이어서 무법천지의 세상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요즘 '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혈투를 보면 과연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된 사람도, 대통령을 갈구하는 사람도 위법하지 않다고 큰소리만 친다. 그런가 하면 길바닥에 드러누워 법을 농락하고 법을 들쳐 업은 뒤 스스로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법의 무게중심이 정치에 함몰되는 느낌이 없지 않다.

살면서 가끔은 법의 두 얼굴에 대해 망념에 빠질 때가 있다. 법률에 의거한 세금을 낼 때 특히 그렇다. 약자에게는 단돈 100원이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털어가고, 막강한 변호인을 대동한 강자에게는 100억 원이라도 털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판결을 보면 살인자에게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피의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딱한 사정을 참작했다는 게 요지다. 피해자 가족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그런 솜방망이 처벌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죽어도 시원찮을 판에 범죄자에게 무엇을 참작해 주겠다는 건가. 입장을 바꿔 자신의 가족이 끔찍한 사고를 당했더라도 가벼이 넘길 수 있을까. 최초의 법이라고 알려진 함무라비법전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극단적인 처벌을 원하지 않을까.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가정을 풍비박산시킨 장본인에게 선처라니 이게 법의 아량인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10년 아닌 몇십 년을 고통 속에 살아갈 게 분명하다. 용서도 용서받을 사람이 용서해 줄 때 가능하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 용서하는 것은 또 한 번의 상처를 주는 일이다. 진정한 사과는 사과받을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게 순서다. 법은 약자와 피해자,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억울한 자를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탄핵은 헌법과 국가의 이익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

탄핵이 억울한가. 아니면 억지인가. 탄핵이 억울하다면 상식 이하다. 총으로 국회를 제압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저열하다. 요즘 세상에 그것이 통하리라고 상상했으니 어리석다. 유신과 군사독재를 거쳤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국민들의 학습효과를 망각했던 것이다. 그 생각 자체가 유죄다.

세계적으로도 대통령 탄핵은 드물지 않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의 90% 이상이 헌법에 탄핵 조항을 두고 있는데, 지난 30년 동안 2년에 한 번꼴로 탄핵이 시도됐다. 브라질의 콜로르와 지우마,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필리핀의 조셉 에스트라다,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 와힛, 리투아니아의 롤란다스파카스,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 우리나라의 박근혜 등이 최근 30여 년 동안 탄핵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 대통령들이다. 트럼프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을 당했다.

물론 탄핵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탄핵을 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정치 시스템으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많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정 불안의 징후이기도 하다. 탄핵제도는 권력을 남용하는 권력자로부터 헌법과 국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반면 탄핵이 일상적인 정치과정이 되면 국민 사이의 분열을 더 심화시키고 정국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들은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비롯된다. 당사자가 국민 위에 존재한다는 착각에서 오만해지는 것이다. 대통령이든 권력자든 법은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더구나 법망을 피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법적책임을 회피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법꾸라지'요, 법 기술자다. 이들은 사법부에서 보낸 여러 종류의 송장(소환장, 공소장 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거나 회피하면서 법적 절차를 지연·무력화시키려는 전략을 취한다. 더 나아가 자신들의 혐의를 정치적 탄압으로 몰아가며 진실을 호도하고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법꾸라지들이 물을 흐릴 수는 있어도 강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 <법에는 법대로>(Measure for Measure)라는 작품이 있다. 집권자 안젤로는 법의 수호자인 양 가혹하리만큼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혼전 관계를 막겠다며 결혼을 약속한 애인을 임신시킨 클로디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하지만 동생의 구명을 위해 찾아온 누이에게 홀딱 반해,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하면 석방하겠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안젤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자 클로디오의 사형을 결행한다.

남에게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은 법 위에서 전횡을 일삼는 전형적인 법 기술자다. 이 희곡이 전하는 메시지는 '법이 진실로 정의의 편인가'라는 냉소적인 질문이다. 나약한 인간의 약점을 잡아 부당하게 심판하고, 처벌하는 법의 부조리다. 이는 법이 지닌 비극이다.

광란의 시간 끝내야

2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광화문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와세다 법대 출신이자 한국인 최초의 판사였던 효봉 스님(속명 이찬형)은 2남 1녀를 둔 가장으로 판사 생활 10년째인 36세 때 출가했다. 효봉이 판사를 그만두고 스님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평양 고등법원에 있던 어느 날 그는 처음으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는 '신도 아닌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법복을 벗었다. 그 후 홀연히 집을 떠나 3년간 전국 엿장수로 떠돌다 스님이 됐다.

효봉 같은 번뇌가 지금 같은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법은 정파에 휘둘리지 않고, 이념에 함몰되지 않으며, 자기 신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 또한 법을 아는 자들에게도 더 엄격해야 한다. 약자와 권력자에게 같은 잣대를 두고 공정하게 적용해야 법이다.

요즘 정치를 보라. 정치가 거의 종교 수준이다. 권력자가 신(神)인 것처럼 설쳐댄다. 신도급인 국민들은 무조건 추종한다. 권력자가 잘못했어도 잘못한 줄을 모른다. 한번 믿으면 진실이 아니어도 믿는다. 상대방만 물고 뜯는다. 상대방의 허물만 보이고 자신이 섬기는 사람의 허물은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것인지, 일부러 못 본 척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정치가 종교처럼 돼버리면 나라는 썩는다. 생물인 정치가 죽어버리니 썩을 수밖에 없다. 영화의 대사처럼 '어차피 국민은 개돼지야. 금방 잊게 돼 있어'를 실천하는 정치를 믿을 것인가. 권력자가 잘못했으면 잘못이라고 얘기해야 마땅하다.

법을 우습게 아는 자들이 횡행하는 것도 정치인들이 법을 우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바로 서야 정치도 정신을 차린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두 권력자에게 내려지는 판결은 어찌 될 것인가. 이번 기회를 통해 광기의 정치, 광란의 시간을 끝내야 한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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