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경호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오른쪽)이 윤 대통령을 경호하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갑질119는 지난 17일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경호처의 해임의결이 보복인사이자 위법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대법원은 근로자를 몰아내려는 의도로 명목상 해고 사유를 만들어 해고하는 것은 부당해고이며 근로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불법행위라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3.10.12. 선고 92다 43586 판결 등) 공익 제보 직원에게 보복성 인사조치를 한 사용자의 인사조치는 무효이고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도 있습니다.
판례만 보면 경호노동자에 대한 부당해임은 법률로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노동자가 사측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해 소송을 하더라도 판결을 받을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립니다. 온 국민이 헌재 결정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날짜로 치면 100일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의 소송은 100일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립니다. 노동자가 겪어야 할 지옥의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해임안을 거부하면 됩니다. 그러나 국회 법률안은 물론이고, 헌법재판소의 마은혁 재판관 임명 결정까지 거부하고 있는 최상목 권한대행에게 상식과 법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평범한 노동자가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양심에 따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헌재 선고 지연의 고통은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
대통령경호처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한 사례가 용인 경전철입니다. 용인경전철은 용인시와 민간투자사가 함께 건설한 노선으로 투자는 용인경전철(주)이 했고 운영은 용인에버라인이라는 회사에 맡겼습니다. 공공교통서비스를 민간에 맡기고 책임을 분산한 다단계 구조입니다.
사측은 무인화를 추진했고,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노조를 결성하고 회사와 단체교섭을 시도 했지만 회사는 지난해 12월 지부장과 부지부장을 해고해 버렸습니다. 노조 임원들이 용인시를 찾아가 사측과의 중재를 요청했는데,
회사는 이를 명예훼손으로 몰아간 겁니다. 동료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탄원서를 내고 용인시까지 나서 노동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사측은 징계해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은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었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하거나 행정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지방노동위원회 판정 사건은 평균 48일 중앙노동위원회는 84일이 소요되었습니다. 법원의 경우 1심이 401일, 2심이 276일, 3심이 159일 소요됩니다.
사측이 법원 판결을 따를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2023년 9월, 섬마을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 위탁업체 JBC 소속 노동자들은 법원으로부터 한전의 근로자라는 1심 판결을 받았습니다. 노동자들은 공공기관인 한전이 법원 판결을 존중해 직접고용을 할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한전은 위탁업체 JBC와의 계약을 종료해 사실상 회사를 없애버리고,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자회사인 한전MCS로 옮기라고 강요했습니다. 더불어 소송 포기도 강요했습니다.
노동자들이 부당한 조치라며 거부하자 해고해 버립니다.
이처럼 모든 국민이 겪고 있는 불면의 밤을 노동자들은 과거부터 지새웠고, 지새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새울 것입니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이나 노동자가 일터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일은 모두 권력자의 기밀을 폭로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저들은 숨기고 싶어 기밀이라 부르고, 우리는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진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헌재 결정이 늦어지면서 우리가 알려야 할 진실들이 윤석열에 의해 가려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에 가려진 노동현장의 진실들

▲세종호텔 고진수 해고노동자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 도로 구조물 위에서 26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이정민
3월 13일 경기 안성에 있는 쿠팡물류센터에서 야간노동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지난 2020년 이래 쿠팡물류센터나 배송업무 등을 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숫자만 20명입니다.
바로 다음 날인 3월 14일에는 포항 현대제철에서 일하던 29세의 인턴 노동자가 10m 높이에서 100도가 넘는 쇳물 찌꺼기를 담는 용기에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15년 전인 2010년에도 충남 당진의 환영철강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긴 용광로에 빠져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 죽음은 댓글 시인 '제페토'가 관련기사에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의 시를 달아 세상에 알려졌고, 가수 하림이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지만, 죽음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단절되고 고립되어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노동자들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하늘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15일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한화 본사앞 30m 높이의 첨탑에 올랐습니다. 2월 13일에는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가 세종호텔 앞 10m 높이의 교통안내 구조물 위에 올랐습니다.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 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소현숙은 2024년 1월 8일 공장 옥상에 올라 지금까지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윤석열이 파면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헌재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이 파면되어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광장의 투쟁을 냉소할지도 모릅니다. 윤석열이 파면되어도 바뀌는 게 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쾅'하고 닫혀버린 광장의 문 뒤에 투쟁하는 노동자들만 쓸쓸히 남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홀로 남겨지는 게 두려워 민주주의의 후퇴를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배달하던 노동자가 오토바이에서 내리면 시민이 됩니다. 광장에서 퇴근한 시민이 일터로 출근하면 노동자가 됩니다.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투쟁에 앞장서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아니라 더 많은 노동자의 이야기가 광장의 무대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시민의 광장과 노동자의 하늘을 잇는 연대의 말들과 노래가 널리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힘이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열쇠입니다. 윤석열 파면이라는 문을 닫고, 윤석열 이후의 더 많은 민주주의,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의 문을 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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