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이하 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분기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란 위원장은 하버드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트럼프 1기 때 재무부 장관 스티븐 무누친의 경제정책 자문관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자산운용사 허드슨 베이에 재직하면서 '국제 교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를 발표했다. 관세 정책을 옹호하고 달러 약세 정책을 제안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보고서는 최근 미란이 경제자문위원장에 취임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란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관세 전쟁에서 노리는 목적은 다중적이다. 첫째는 경제 이외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세를 활용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2월 1일 '펜타닐 등 마약과 난민의 대규모 미국 유입'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국제긴급경제권한법'에 따라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예고했다. 그때 그는 "관세는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하고 입증된 지렛대"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 멕시코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미국으로 불법 월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경에 6000명의 방위군을 배치했고 미국이 추적하는 마약사범들을 체포해서 미국 측에 인계했다. 캐나다 역시 마약 국경 통제에 자금과 요원을 배치하고 펜타닐 단속 책임자를 선임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2월 4일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한 달간 관세를 유예했으나, 펜타닐 유입이 실질적으로 줄지 않았다며 4월 2일부터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지난 6일 밝혔다.
관세 부과의 또 다른 목적은 재정 수입을 확대하고 국산품으로 수입품을 대체하는 것이다. 관세 부과는 원가 상승 요인이 되므로 수입업자는 이를 판매 가격에 전가하고 매출액 중 일부를 관세로 납부한다. 관세로 인해 해외 생산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낮아지기 때문에 수입품은 시간을 두고 점차 미국 내 제품으로 대체된다. 대체가 진행됨에 따라 수입은 줄고 늘어난 관세 세수도 축소된다. 대체 정도와 속도는 미국 기업의 경쟁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늘어난 관세 수입 징수 및 관리를 위해 국세청에 대칭하는 관세청 설립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관세는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 및 국경관리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관세가 야기하는 환율 변동까지 고려하면 상황이 다소 달라진다. 관세가 부과된 국가 입장에서는 수출이 줄어들게 되어 달러화에 대한 해당국 통화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는데 이것은 다시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 관세에 대응하여 상대국 정부는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통화 가치 하락을 조장할 수도 있다.
환율 변동이 관세를 완전히 상쇄하게 될 경우를 상정해보면 미국 내 물가는 전혀 변화하지 않고, 따라서 미국산 제품으로 대체되는 효과도 없다. 하지만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상당한 관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통화 가치가 하락한 수출국의 구매력 감소에서 나온 것으로 환율 변동에도 불구하고 관세가 부과된 미국의 교역 상대국은 여전히 피해를 입는다.
환율 변화의 상쇄 효과가 어느 정도 되느냐는 거시경제 변수와 해당국 정부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2018년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대해 관세를 높였을 때 중국 화폐 가치 하락이 커서 미국 내 인플레이션 효과와 수입품 대체 효과는 낮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미국 관세의 효과출처: 스티브 미란 리포트
스티브 미란
위 분석은 미국의 상대국이 전혀 대응을 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높은 관세를 부과받은 국가가 수동적으로 머물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중국이 미국에 보복 관세로 대응한 바 있고, 이번에도 가장 먼저 관세의 타깃이 된 캐나다와 멕시코 및 EU가 관세 보복을 선언하고 있다.
동맹국이라고 호의 베풀 가능성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가 시행되는 12일 경기 화성시의 한 알루미늄 제품 제조업체 공장에 알루미늄 제품들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이상을 고려하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트럼프 1기와는 달리 2기에는 관세의 타깃이 중국에 한정하지 않고 전 세계를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시장에서 중국의 공백을 대체하는 효과를 이번에는 누리기 힘들다. 트럼프 2기의 관세 정책은 우리에게 위협일 뿐 추가적인 기회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관세 정책의 악영향이 조기에 드러나 트럼프 정부가 정책 선회를 할 가능성은 낮다. 현재 미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강력하고, 일부의 기대 섞인 희망과는 달리 단기에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의 관세 강화가 일시적일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는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중장기적 대비를 해야 한다.
셋째, 멕시코와 캐나다 사례에서 보듯 트럼프가 비경제적 이유를 들어 관세 위협을 할 경우 해소 방법이 명확하지 않고 상황이 악화할 위험이 매우 크다. 다행히 현재 한국은 미국의 국가 안보 측면의 관세 위협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교역 규모가 크고 안보 관련 접점이 많은 만큼 비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이 특별한 타깃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넷째, 미국이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관세 위협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 경우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 내 경쟁 구도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힘이 강화되는 것은 미국 제조업체뿐인데, 이들이 단기에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1기에 혼자 매를 맞던 중국이 이번에는 트럼프가 모두에게 회초리를 겨누자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으리라 예측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다.
다섯째, 이제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특정 국가에 더 가혹할 가능성은 있지만, 동맹이라고 해서 특정 국가에 특별한 호의를 베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치밀한 준비 없이 '우리 사정을 호소'하는 접근은 득보다 실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성급하게 교섭에 나서 주목받기보다는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면서 상대를 설득할 결정적인 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더 나은 시기로 보인다.
끝으로 이 문제는 공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그리고 국내에서 정부가 바뀌어도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해야 할 사안이다. 계엄과 탄핵 심판의 여파로 어수선하지만 정부와 여야는 국익의 관점에서 조용히 논의하고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그래야만 위축되지 않고 대미 교섭에 임할 수 있다.
▲신현호 / 경제평론가
신현호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신현호는 과거 컨설팅 기업과 국회에서 경제분석을 담당했고, 한겨레, 서울신문, 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란 책을 펴내는 등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제, 정치 등 다양한 이슈를 풀이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