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7 15:50최종 업데이트 25.03.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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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에너지부연합뉴스

한국이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 국가"로 지정되면서 논란이 연일 증폭되고 있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미국 정부에 의해 이렇게 지정된 것도 처음인 탓인지, 이를 둘러싼 해석과 주장이 난무한다. 짚어봐야 문제들은 많이 있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 SCL)에 포함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사유를 정확히 밝히지 않아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온다. 또 에너지부 홈페이지에도 SCL 지정 사유로 "국가 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으로 표기해 정확한 사유를 파악하기 힘들게 한다.


그런데 에너지부는 민감 국가 지정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부처가 아니라는 점과 에너지부가 핵무기와 원자력 그리고 이와 연관된 핵 비확산을 담당하는 부처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여러 정부 부처는 법적 근거에 따라 특정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다. 상무부는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 보호, 국무부는 테러지원국, 재무부는 금융 및 경제 제재, 국방부는 군사적 위협 등을 근거로 삼아 부처별로 민감 국가를 지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을 SCL로 지정한 부처는 에너지부이다.

에너지부가 민감 국가 목록을 정하는 법적 근거는 '원자력법'이다. 이 법을 비롯한 여러 비확산 관련 법률은 미국의 적성국이나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국제 조약을 무시하면서 핵 보유를 했거나 시도할 우려가 있는 나라에 대해 다양한 수준의 제재 및 통제 장치를 포괄한다. 쉽게 말해 에너지부가 한국을 SCL로 분류했다는 것은 핵확산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기초한다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 핵확산 우려 부추겨

여기서 핵확산은 '수평적 핵확산', 즉 비핵국가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부터 국방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 등 고위 관료들이 핵무장이 가능한 옵션인 것처럼 말해, 미국의 우려를 증폭시킨 바 있다.

이러한 우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12·3 계엄 사태가 조우하면서 더욱 커졌다. 국내외 일각에선 비확산을 중시하지 않으면서 동맹의 재조정을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핵무장이나 핵 잠재력 확보를 용인할 수도 있다는 기대 심리가 커졌다. 또 한국의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민의힘의 유력 주자들은 핵무장이나 핵 잠재력 확보 주장을 더욱 강하게 펼쳤다.

이러한 흐름을 계속 관찰해 온 에너지부는 1월 초 한국을 SCL로 지정해 한국에 '주의'를 준 것이다. 이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불거지고 있던 핵 잠재력 확보 주장이 쏙 들어간 것이다.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봐도 핵무장은 물론이고 잠재력 확보도 '미션 임파서블'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정치적 필요와 포퓰리즘에 편승했다가 제 발등을 찍은 셈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모범 사례라고?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외교통'인 위성락 위원은 17일 자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비핵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이 주도해서 국민의힘과 함께 우리 조야가 핵 비확산 소통 공간을 확고히 하고, (이를 토대로) 농축 재처리 권한을 받기로 입장을 정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민감 국가로 분류되었다는 것을 최초로 보도한 <한겨레>도 17일 자 사설에서 "'핵을 갖겠다, 안 되면 잠재력이라도 갖겠다'고 시끄럽게 외쳐댈수록 일본과 같은 수준의 농축·재처리 권한을 갖는 길도 막히게 된다. 유일한 전쟁 피폭국인 일본은 '비핵 3원칙'을 철저히 고수해 지금과 같은 권한을 손에 넣었다. 일본의 사례를 진지하게 곱씹어봐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러한 주장들은 한국이 비확산 규범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연료 재처리 권한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이러한 권한을 승인받은 일본의 사례가 모범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가 '타산지석'이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50톤에 육박하는 일본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다. 플루토늄이 쌓이면서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아왔다. 이에 일본은 'MOX'라고 불리는 핵연료를 제조·사용해 플루토늄 보유량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그런데 'MOX' 방식은 저농축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는 방식에 비해 돈도 엄청나게 들어가고 위험도 훨씬 크다. 경제성과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일본은 여차하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은 갖고 있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카드도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없다. 일본이 핵무장에 나서면 미일원자력협정부터 각종 국제조약을 줄줄이 위반하는 셈이기에 엄청난 외교적·안보적·경제적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또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원자로급'이기에 무기로서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일본의 선택은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해 지속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핵확산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맞춰져 있다.

미국은 뭐라고 할까?

한국이 현행 한미원자력협정을 유지하면서도 농축·재처리 권한을 인정해 달라거나 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하면, 미국은 '왜 하려고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라는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면 미국이 양해해 줄까? 아니다. 핵확산 우려뿐만 아니라 '내가 해봐서 아는데 경제성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세계 최초로 그리고 한때는 최대 규모의 농축·재처리 능력을 갖췄던 미국은 저농축 우라늄을 수입하고 재처리는 접은 지 오래다. 이게 훨씬 저렴한 방식으로 원자력을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일본도 마찬가지 이유로 농축을 접고 해외에서 핵연료를 수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지 오래다. 경제성이 없는데도 한국이 고집하면 핵무장 카드를 손에 쥐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만 키우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이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불허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또 있다. 당면 과제인 이란 핵 문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 핵 협상의 핵심은 이란의 농축·재처리를 최대한 규제한다는 데에 맞춰져 있는데, 한국에 권한을 인정해 주면 미국의 발언권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어떤 이유에서든 농축·재처리 권한과 능력을 갖겠다는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피지기부터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 자신도, 미국도, 일본도 잘 모른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기 전에 깨끗이 포기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덧붙이는 글 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이자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쓴 책으로는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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