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4 16:00최종 업데이트 25.03.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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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AP photo/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체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는 불평은 미국에서도 나온다. 지난 11일 자 <뉴욕타임스> 기사 '권력·돈·영토: 트럼프가 50일간 세계를 흔든 방법'은 1945년 이래 80년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힘들여 구축한 것을 1월 20일 취임한 트럼프가 단 50일 만에 파괴했다고 탄식한다.

클린턴·부시·오바마·트럼프·바이든 시절의 백악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취재한 데이비드 생어(David Sanger) 기자는 위 기사에서 트럼프가 "진로 변경에 관한 공식적 선언이나 전략적 근거의 제공도 없이" 미국의 세계전략을 괴멸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기사의 중국어판 제목에는 '권력·돈·영토' 대신 "워싱턴은 괴멸의 현장과 같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위 기사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누구를 편들 것인가를 임의로 바꾼 일을 예시하고,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 투표에서 미국이 북한·러시아·이란 등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일을 거론한다. 특별한 사인도 없이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에 대한 당혹감을 반영하는 기사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7년 3월 12일 '트루먼 독트린'으로 불릴 공식적 입장표명을 거쳐 세계 냉전전략을 본격화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7월 25일 '닉슨 독트린'으로 지칭될 공식 성명을 거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냉전전략을 수정했다.

트럼프는 그런 '깜빡이'나 비상등도 켜지 않은 채 좌회전·우회전도 하고 유턴도 하고 급정거도 하고 심지어 역주행도 한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도로의 무법자에 대한 미국 내 불만과 우려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런 예측불허의 트럼프도 조심스러워하는 부분들이 있다. 한 가지는, 자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예측불가능한 핵보유국은 건드리지 않고 가급적 살살 달래려 한다는 점이다.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호의적 태도는 그 역시 예측불허한 상대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이스라엘

지난 6월 평양에서 만난 푸틴과 김정은 로이터/연합뉴스

핵보유국인 중국은 미국을 가장 크게 위협할 수 있지만, 예측불가능한 국가는 아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도 대화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남중국해 등에서 미국·필리핀 등과 위험천만한 군사 대결을 불사할 듯하면서도 미국과 국방장관 대화채널을 유지한다.

이란도 예측불가능하다고 보긴 어렵다. 미국 및 이스라엘과 언제라도 한판 붙을 듯이 공언하지만, 지난해 10월 26일에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을 받고도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그달 13일에 압바스 아라치 외무장관을 통해 "전쟁 상황에 완전히 대비하고 있다"라고 경고했지만, 5개월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완전 대비'만 하고 있다.

중국은 각종 형태의 굴기(崛起)를 통해 세계 주도국가의 지위를 지향한다. 이란은 중동 이슬람권의 패자(霸者) 지위를 추구한다. 머지않아 그런 리더십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두 나라는 그만큼 지켜야 할 것이 많기에 예측가능한 노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과 러시아는 자유롭게 행동반경을 정하고 있고, 이는 트럼프의 눈에 예측불허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우방인 영연방 캐나다는 건드리면서도 적성국인 북한이나 러시아는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 트럼프의 모습은 그가 두 나라를 얼마나 조심스러워하는지를 보여준다.

친 팔레스타인 시위를 주도했던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마흐무드 칼릴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13일 뉴욕 트럼프 타워를 점거한 모습.AP/연합뉴스

트럼프가 조심스러워하는 또 다른 하나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이다. 트럼프가 의회 연설을 통해 관세정책을 재천명한 다음날 발행된 5일자 BBC 뉴스 '트럼프, 불법 시위 관련 학생들의 추방을 다짐'에도 보도됐듯이, 그는 이스라엘 반대 시위를 벌이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소속 대학에 대한 자금 지원을 삭감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틀 뒤 BBC 뉴스에는 '트럼프, 유대인 학생 보호에 실패했다'라며 컬럼비아대학에서 4억 달러 회수'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지난 2월 7일 정상회담 때,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관세에는 동률관세'라는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재천명했다. 4월 2일부터 부과된다는 이 상호관세에 대해 이스라엘 언론보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이 나라의 보도에서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온다.

텔아비브 시각으로 지난 5일, 이스라엘 경제 일간지 <글로브>의 영문판 홈페이지에 '트럼프 관세가 이스라엘에 이익이 되는 방법'이란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론 토머(Ron Tomer) 이스라엘 제조업협회 (Manufacturers Association of Israel) 회장과 엘라드 바르샨 국제물류 전문가 등의 의견을 근거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를 추가하는 미합중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파괴적인 결정은 이스라엘에 큰 기회를 드러낸다"라고 전망한다.

기사는 이스라엘 역시 대미무역 흑자국이지만,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유지되면 세계 각국의 첨단기업이나 제조업체들이 자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스라엘·미국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생산공정의 35% 이상이 이스라엘 내에서 진행된 경우, 또는 이스라엘·미국·요르단·이집트·팔레스타인 자격산업지대협정(QIZ)에 따라 '제품 누적가치 8% 이상이 이스라엘에서 생산될 것' 등의 요건이 충족되면 관세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계 기업들이 이스라엘에 주목하게 되리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이스라엘로 생산기지를 옮길 외국 기업들을 위해 '불필요한 조언'도 해준다. 이스라엘에서 생산한 제품을 갖고 유럽 세관을 통과하면 위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유럽 항구에 들어가더라도 세관을 거치지 말고 선박에서 선박으로 화물을 환적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일반의약품 기업인 유니팜(Unipharm)의 공동 CEO이기도 한 위의 론 토머 회장은 미국 공장이 없는 스페인 제약회사들이 생산시설 일부를 이스라엘로 옮기는 방안을 자신과 협의했다고 소개했다. 스페인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간쯤이다. 미국 진출까지도 염두에 두고 생산기지 다각화를 추진하는 이 나라 기업들이 곧장 미국으로 가지 않고 이스라엘을 거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이스라엘에만큼은 타격이 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스라엘 경제에 대한 미국의 애정은 현대판 실크로드 구축을 위한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맞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을 추진하는 것과도 관련되어 나타난다. 미국이 주도하지만 이스라엘이 제안했다고 알려진 이 구상은 유럽-중동-인도는 물론이고 미국까지 잇는 철도·해상 루트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사우디-아랍에미리트를 연결하는 중동 역내 수송로를 통해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들을 화해시킬 수도 있다.

이 구상에 대해 트럼프는 꽤 적극적이다. 2월 16일 자 <이스라엘 타임즈> '트럼프가 이스라엘 경유 미국-인도 회랑을 홍보하자, 이스라엘과 인도는 2025년 내에 무역협정 희망'은 2월 13일 미국·인도 정상회담 때 트럼프가 위 경제회랑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역로"로 불렀다며 "인도에서 이스라엘을 거치고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향하면서 우리의 협력자, 도로, 철도와 해저 케이블을 연결할 것"이라고 발언한 일을 소개했다.

트럼프가 그 정도로 열의를 보이고 있으니, 이 노선 경유지인 이스라엘에 관세 타격을 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지금의 관세정책을 유지하기만 하면 세계의 제조업체들이 우리에게 올 수 있다는 이스라엘제조업협회장의 기대감이 과하다고는 보기 힘들다.

트럼프의 세계전략은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가 무엇을 조심스러워 하는가는 향후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그는 김정은이나 푸틴처럼 예측불허의 인물들을 부담스러워 하고, 이스라엘에 이익이 될 만한 일들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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