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 동백나무.
성낙선
동백과 한이 연결되는 이미지는 화가 강요배에 의해 1990년대 한국인들에게 퍼져나갔다. 제주 4·3을 다룬 그의 첫 전시회는 <동백꽃 지다 – 제주민중항쟁사 화집(畫集)>의 출간과 함께 열렸다.
할머니와 손자가 먼 데를 바라보는 강요배의 작품인 '시원'과 함께 실린 1992년 4월 3일 자 <매일경제> '제주 4·3항쟁 화폭에 재현'은 1952년 4월 18일 제주에서 출생한 그의 전시회를 소개한다. 이 기사는 "화가 강요배 씨는 자신이 태어나기 4년 전의 역사적 사실인 4·3제주민중항쟁사를 자료와 상상력을 매개로 묘사, 가슴이 섬뜩할 만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라고 한 뒤, <동백꽃 지다>라는 화집과 함께 데뷔한 그의 소감을 이렇게 전한다.
"고향을 떠나 20년을 방황하면서 나는 조금씩 사회와 역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고, 땅의 시련보다 더욱 가혹한 것이 역사의 시련이었음을 늦은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방황 속의 역사 공부를 통해 얻어낸 결과물을 강요배는 그림에 담았다. 그 결실 중 하나가 화집의 제목이기도 한 '동백꽃 지다'라는 그림이다. 짙은 녹색과 거무튀튀한 흑색이 시선을 당기는 이 작품에서는 땅에 뚝 떨어진 새빨간 꽃송이가 강한 인상을 준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땅에 뚝 떨어진 동백꽃을 4·3의 아픔과 상처로 해석했다. 이는 동백꽃이 4·3의 상징물이 되는 데 기여했고, 우원식 의장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이 꽃을 다는 배경이 됐다. 공산당 배지로 해석될 만한 경로와는 전혀 판이한 루트를 거쳐 4·3과 동백꽃은 결합됐다.
강요배 전시회에서 주목할 것이 더 있다. 그의 전시회에서는 4·3뿐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까지도 동백꽃과 연결됐다. 4·3항쟁 50주년인 1998년 4월 3일 개막하는 '동백꽃 지다 – 4·3 역사화전'을 예고한 그해 3월 26일 자 <한겨레> '4·3 핏빛 어린 넋들은 동백이런가'는 전시 작품 57점의 일부인 '삼별초 항쟁', '왜구 퇴치', '잠녀 반일항쟁' 등의 의미를 특별히 설명한다. 기사는 이 작품들이 나머지 작품들의 "출발점"이라고 한 뒤 "강요배 씨가 4·3항쟁의 뿌리를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한다.
강요배는 몽골과 왜구 및 일제에 대한 저항투쟁을 미군정에 맞선 4·3과 연결하면서 동백꽃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의 작품세계 속에서 동백꽃은 4·3으로 인한 '한'뿐 아니라 4·3을 포함한 대외항쟁사를 일관하는 한을 상징한다고 평할 수 있다.
동백의 의미를 4·3 이외로도 확대하는 인식은 위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접할 수 있다. 1949년생인 유홍준 교수는 "1981년, 광주의 아픔을 어떻게 새겨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던 시절, 선운산 뒷산에 버려진 듯 뒹구는 동백꽃송이들은 마치도 덧없이 쓰러져간 민중이 넋이 거기 누워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냥 떨어지지 않고 꽃송이째 뚝 떨어지는 동백은 제주도 사람들을 포함한 현대 한국인들에게 슬픈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 꽃은 지금은 주로 4·3항쟁의 상처를 환기시키지만, 강요배의 전시회에서 형상화됐듯이 한국 역사 속의 대외항쟁들을 함께 떠올려주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꽃을 공산당과 연결하는 것은 너무 엉뚱하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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