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2022년 7월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도크 화물창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3월 현재 조선소, 정확히는 한화오션이 어마어마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주가가 무려 4배가 뛰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선박 건조와 관련해 동맹국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존 펠란 미 해군장관 후보자는 아예 한화오션을 콕 집어 "그들의 자본과 기술을 미국으로 유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현장에선 이미 우리가 내년에 군함을 건조할 수도 있겠다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호황의 햇볕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드리운 그늘까지는 가닿지 않는다. 아직도 임금체불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하청 소속 30년 경력 반장의 임금은 정규직 3년 차 연봉보다 적다. 현재 조선소는 청년에게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일터다.
한국의 대형 조선소는 모두 남쪽 끝단에 박혀있다. 가장 많은 일자리가 몰린 수도권에서 제일 먼 곳이다. 특히 거제도엔 기차도 없다. 입지부터 불리한데 회사 역시 구태여 내국인이 올 만한 동기를 만들 생각이 없다. 그나마 유입되는 청년층이라곤 가족이 조선소에 다녔고, 공부에 별 흥미가 없으며, 지역을 떠날 마음이 없는 거제의 2030 남성 정도다. 23만 인구의 소도시에서 이에 해당하는 인구집단이 몇이나 되겠는가.
타지에서 온 청년들은 극악한 지리 조건을 뚫고 조선소까지 당도했지만 위에서 말한 '미래가 없음'이란 문제와 마주한다. 그렇다고 당장 마주하게 되는 현재가 아름답지도 않다. 중공업 가족을 만들었던 고소득은 초과 노동에서 나왔다. 상여금을 많이 주는 대신 낮은 시급을 책정해 초과 노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몰아갔다.
조선소의 '기본 노동시간'은 사실상 8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다. 저녁 식사도 9시간 퇴근에 맞춰서 나온다. 출근은 사무실에 7시 30분까지 당도해야 하므로 7시쯤엔 조선소 문을 통과해야 한다. 퇴근 또한 6시에 퇴근 절차인 '타각'을 시작하므로 조선소를 빠져나올 땐 이미 6시 반이다. 여기에 토요일 노동도 당연한 분위기다.
그러니 남아있는 노동자는 돈벌이가 절실한 외국인 노동자와 가족들이 있는 중년 남성이 다수다. 평일 9시간에 주말 근무까지 더하면 이미 52시간 초과 노동이다. 부양가족이 없는 청년들은 그토록 오래 일할 동기가 없다. 꼬박 8시간씩 일해서 받는 210만 원과 53시간을 꽉 채워 받는 300만 원의 차이는 1.5배에 달하지만 삶의 질이 몇 배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건강을 일부 희생하며 피로를 그대로 집까지 들고 와야 하는 육체노동은 특히 그렇다. 젊은 피가 돌지 않는 업종에 미래는 없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2019년에 출간됐다. 저자는 당시에도 사무실과 현장이 수도권과 지방으로 쪼개지는 현상을 염려했다. 2025년 기업은 더더욱 가열차게 수도권과 지방, 구상과 실행, 계획과 생산을 분리하려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조선소는 '단지 배를 생산할 뿐'인 거대 공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정치에서 해법을 찾아보려 해도 윤석열 정부가 여지를 없애버렸다. 인간다운 대우를 원해 파업했던 하청 노동자의 삶이 박살나도록 거들었다. 외국인 노동자를 더 들여올 수 있도록 특혜까지 줬다. 정치권도 문제를 알지만 해법이 좀처럼 보이지 않아 "정규직 많이 좀 뽑아주세요", "외국인 노동자에만 너무 의존하지 맙시다" 정도밖에 말할 수 없다. 주가가 치솟아 자본은 신났지만 노동은 암울한 모습이 조선소의 현주소다.
▲천현우 / 용접공
천현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천현우는 경남의 여러 제조업체를 돌며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 신분으로 정부에 지역 청년의 목소리를 전달했습니다. <주간경향>에 지방 청년의 삶과 제조업 경험을 바탕으로 쓴 칼럼을 모아 단행본 <쇳밥일지>를 출간했으며, 현재 <조선일보>에 정기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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