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1 12:15최종 업데이트 25.03.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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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전경연합뉴스

세종시는 여전히 행정수도를 꿈꾸는가. 아니면 충청도 사이에 낀 특별자치시에 불과한가. 그것도 아니라면 선거철 표심 낚는 미끼용 도시인가. 가끔 이런 맹랑한 의문에 휩싸이곤 한다.

행정수도를 만든다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는데도 그저 행정도시 수준에 머물고 있다. 600년 전 세종의 위대한 꿈을 계승해 그 묘호인 '세상(世)의 으뜸(宗)'을 딴 것이 세종시다. 왕의 묘호를 딴 지명은 유일무이하다. 하지만 세종의 꿈은 꿈풀이도 안 되는 일장춘몽 같다. 한때 행정수도 열풍으로 부동산 광풍만 휘몰아치다 그쳤다.


행정수도의 본질은 천도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서울을 약화시키겠다는 것도 아니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국가의 무게중심을 지방으로 균형 있게 옮겨보자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행정수도와 대통령실 이전 이슈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천도(遷都)와 수도(首都)를 설명하려면 60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 직후부터 수도 이전에 힘썼다. 개국은 개경(개성)에서 했지만, 새 왕조는 새 도읍지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는 3년(1394) 만에 한양으로 천도했다. 하지만 정종은 1차 왕자의 난이 벌어졌던 한양을 싫어해 재위 2년(1399)에 개경으로 재천도 했고, 3대 태종은 재위 6년(1405) 다시 한양을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가 완료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이후 600여 년 동안 수도 서울은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심적 역할을 하며 비대해졌다. 반면 비수도권은 인구 감소와 경제 낙후 등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민선지방자치 30년, 중앙집권적 정치구조에 따른 지역 불균형과 지방 소멸은 오히려 심화됐다. 수도권 인구 집중률은 2050년 53%, 지역내총생산(GRDP)은 60%까지 오르고, 소멸 위험 자치단체는 2047년 157개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오늘날 '천도'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왕조시대는 왕이 결정하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국민 정서와 헌법 가치에 부응해야 한다. 미국의 워싱턴 DC, 독일의 베를린, 캐나다 오타와, 호주 캔버라, 브라질 브라질리아, 튀르키예 앙카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리토리아 같은 세계의 행정도시(수도)도 국론분열을 이겨내고 어렵게 탄생했다. 최근 100년 새 30개국 이상이 수도를 옮겼고, 40여 개국이 수도 이전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수도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균형발전 추진, 지역혁신체계와 혁신주도형 지방경제 구축, 지방 우선 육성과 수도권의 계획 관리 등을 내세워 추진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 헌법을 인정하면서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조치법'을 위헌으로 규정했다. 이후 '행정수도' 얘기는 선거 때만 반짝 타오르는 정치꾼들의 땔감용에 그치고 있다. 중원지역 표심을 잡기 위한 불쏘시개였던 것이다.

대통령실 세종시 이전은 지역 구조 타파하는 상징적인 일

2022년 5월 9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두고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서울 용산구 옛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휘장이 부착돼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이번엔 상황이 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등 거취와 상관없이 대통령 용산 집무실은 존재가치가 흐려졌다. 이미 내란의 소굴로 변질돼 차기 대통령이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 때문에 다음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대한민국의 균형 있는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공간에서 일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지금의 서울 용산 대통령실은 2022년 대선에서 '청와대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 대통령이 숱한 논란 속에서 밀어붙였다. 하지만 입지 결정 과정의 정당성 부족, 내란을 일으킨 공간이란 부정적 인식, 영빈관과 관저 등 시설 부재 등으로 정상적 대통령실 기능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 대통령실 세종시 이전은 야권 대선주자들이 선제적으로 쟁점화하고 있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캐스팅보트' 역할인 충청권 표심을 잡겠다는 복안으로 여겨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지도부 회의에서 대통령실의 세종 이전 가능성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행정수도 이전까지 민주당의 로드맵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도 대통령실의 세종시 이전으로 '행정수도 완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동연 지사는 '2025년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특강에서 "대통령실과 국회는 세종시로, 대법원과 대검찰청은 충청권으로 이전해야 한다"며 개헌을 주장했다. 또 "다음 대통령은 당선 즉시, 부처가 있는 세종에서 업무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불법으로 쌓아 올린 '내란 소굴' 용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대권 주자인 김경수 전 지사도 '행정수도 세종 이전의 추진방안과 과제' 토론회에서 "대통령실의 세종시 이전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었던 행정수도를 완성하는 길이자, 국가균형발전을 향한 새 정부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필요한 개헌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균형발전은 고사하고 '서울공화국'만 더욱 강고해진 상황에서 지방 소멸을 막는 방법은 강력한 권력의 진원지를 옮길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을 세종시로 옮기는 것은 서울을 정점으로 계급화된 지역 구조를 타파하는 상징적인 일이다.

헌법 개정 통해 수도 이전 가능하도록 명문화 필요

2024년 9월 27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세종시 국회세종의사당 예정부지 현장을 찾아 개발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종시는 여러모로 서울과 닮았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산과 물이 닮았고, 세상을 품는 정기가 닮았다. 서울은 동서축으로 한강이 흐르며 강남과 강북을 얼싸안고, 세종은 금강을 사이로 강남·북이 나뉘어있다.

서울 북악산이 경복궁의 푸른 아침을 호위하듯 세종은 원수산이 강북의 푸른 호수를 위무한다. 원수산 바로 아래에는 국무총리 관저가 있고, 전월산 방향으로 세종의사당 예정부지와 국립수목원이 위치해있다. 총리 관저는 옛 청와대 자리처럼 산을 배경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

세종의사당은 63만 1000㎡(약 19.1만 평) 면적으로 여의도 국회(약 33만㎡, 10.1만 평)의 약 2배 규모다. 11개 상임위와 예결위,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국회도서관 등이 이전하는데 2028년 준공 예정이다. 대통령 제2집무실은 올 상반기에 마스터 플랜을 위한 국제 공모를 시작할 계획인데, 이르면 2027년 완공한다.

서울과 세종은 이제 먼 이웃이 아니다. 74분이면 도착하는 고속도로가 내년이면 뚫린다. 사업비 6조 7000억 원 규모에 비춰 제2경부고속도로로 회자되고 있다. 앞으로 경제 부흥을 촉진하고 국가균형발전의 새 전기를 마련할 것이란 기대를 모은다. 중장기적으로 고속도로 개통 이후 수도권 인구가 지방으로 분산될 기회도 될 것이다.

세종시는 이미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행정수도'의 입지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대도시협의회(World Association of the Major Metropolises) 이사회에서 새로운 회원 도시로 정식 가입됐다. 협의회는 세계 대도시들이 직면한 공통적인 경제·환경, 삶의 질 향상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창설된 국제기구로, 인구 100만 이상 또는 수도인 곳만 가입할 수 있다. 현재 베를린, 파리, 북경 등 51개 도시를 포함한 147개 회원 도시가 활동 중이다.

앞서 세종시는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동북아자치단체연합(NEAR), 아시아태평양 도시정상회의(APCS) 등 다양한 국제회의에서 대한민국 행정수도(Administrative Capital)로서 역할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왔다.

세종 국회의사당이 준공되면 입법부, 행정부가 세종에 모이게 된다. 여기에 대통령실까지 자리 잡는다면 국가 균형 발전에 확실한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헌법 개정을 통해 수도 이전이 가능하도록 명문화가 필요하다. 국회와 대통령실의 완전 이전도 지역 의제가 아닌 국가적 의제다.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만드는 것은 천도가 아니다. 서울의 힘을 빼겠다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고루한 법 해석으로 옛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법도 세상의 속도를 반영해야 한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개헌하는 것이 옳다. 두려운 것은 오직 민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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