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11 18:28최종 업데이트 25.03.11 18:28
  • 본문듣기
12.7 탄핵 보이콧, 기록으로 남겨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 곱씹어봐야 마땅한 역사라고도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멍해집니다. 초유의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서입니다. 혼돈의 연속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12.7 탄핵박제 105인' 연재 첫 마음을 돌아보려고 합니다.[편집자말]
관저 앞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윤석열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혼돈의 연속이다. 불법적 계엄 선포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구속이 취소됐다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운데,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 평의 역시 원점에서 다시 검토돼야 할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더 혼란스럽다. 불법 계엄 여부를 따져 탄핵 인용 여부를 판단하는 헌재 심판과 피의자 구속 취소는 완전히 별개 사안이다. 그런데도 섞어 버렸다.

혼돈, 마구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갈피, 어떤 일의 갈래가 구별되는 경계점을 뜻한다. 내란 사태의 '갈피'는 명확하다. 애초부터 비상계엄은 불법적이었다. 그 발동 자체가 법적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으며, 선포 과정 또한 심각한 법적 하자가 있었다. 심지어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짓밟으려 했고, 대다수 국민이 이 모든 상황을 똑똑히 목격했다.


국가적 비상 사태에서 갈피를 잡아야 할 1차적 책임은 정치에 있지만, 국민의힘은 갈피를 잡기는커녕 사태 초반부터 반민주적 갈래를 탔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했던 대통령을 탄핵하는 투표에 국회의원 105명이 보이콧을 했다.

만약 국민의힘 의원 105명이 "국가보다 정당을 중시하는 길을 선택(월스트리트저널)"하지 않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같이 갈피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지금과 같은 국가적 혼돈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불법적 계엄 선포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했던 12월 4일 새벽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혼돈의 씨앗은 12.7 탄핵 보이콧이다.

대혼돈의 씨앗, 12.7 탄핵 보이콧

2024년 12월 7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투표하기 위해 앉아 있다.유성호

일부 언론에 의한 이른바 양비론이 본격화된 시점 또한 12.7 탄핵 보이콧 이후다. 그 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국민의힘을 비판하기보다는 기계적 균형을 내세워 그들의 주장을 내보내는 보도들이 많아졌다. 갈피를 잡아야 할 언론 역시 혼돈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양새다. 최근 명태균씨 유에스비(USB) 파일을 <조선일보>가 보도하지 않은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

이에 대해 이은용 전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은 5일 카카오톡 문답에서 "조선일보 스스로 마련한 '윤리규범 가이드라인' 제3장(취재원) 제4조(취재원과의 약속) 3항의 4를 보면 '비보도나 엠바고가 국익과 공익을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비보도나 엠바고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정해뒀다"며 "명씨 동의가 없어 보도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우리는 지난달 19일 마주앉아 12.7 탄핵 보이콧 이후 보도 과정들을 복기했다. 다시 처음부터 바둑돌을 놓다보면 단순히 전달자가 아닌 기록자로서의 책임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매월 회의를 통해 언론보도를 복기하는 곳이다. 또한 그는 위원장으로서 임기를 종료(2월 28일)한다. 복기 상대로 좋았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한 수'부터 다시 놓아봤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5명이 "최악의 선택"을 한 그 다음 날(12월 8일), 그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1년 후에는 다 찍어준다"며 후배 의원을 공개적으로 격려했다. 국민과 정치인 사이에는 언론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일을 상기시켜야 할 책임은 언론에 있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의 말에는 전달자로 머물기 쉬운 우리 언론의 한계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 전 위원장은 그 의도에 초점을 맞춰 풀이했다.

"호도(糊塗, 풀을 바른다)라고 하죠. 벽에 풀을 칠해서 여론을 덮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시적으로 감추거나 흐지부지 덮으려는 거죠. 1년이란 시간에 기대서 궁지로 몰린 본인과 당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 시간을 늘리면 늘릴수록 권력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동아일보의 자정

2024년 8월 5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검찰의 무차별적 통신 이용자 조회 규탄 언론현업단체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은용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이 통보받은 통신 정보 조회 사실 문자메시지와 자료 등을 보여주며 발언하고 있다.이정민

그 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탄핵, 체포, 기소, 헌법재판 심리, 그리고 최근 더 커지고 있는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까지... 일어날까 말까한 사건들이 약 3개월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고, 또 그때마다 이 전 위원장 표현대로 일종의 '호도'가 줄줄이 딸려 나왔다. 객관성이란 포장 뒤에 양비론이 숨기 좋은 환경이다.

"기계적 양비론은 공정이 아닙니다. 비겁한 언론관이죠. 기계적 균형은 예를 들어 A는 이렇게, B는 이렇게, 혹은 좌는 이렇게, 우는 이렇다고 같은 양으로 맞추는 겁니다. 홍보지나 기관지 역할 정도를 하는 건데, 이를 언론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알고도 양비론을 강조한다면 비겁하게 숨는 것뿐이고요."

그리고 이 전 위원장은 지난 1월 20일자 보도를 복기했다. 서부지법 폭동사태 다음 날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사법 절차 진행 과정의 문제점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안다"며 "민주노총 앞에서는 한없이 순한 양이었던 경찰이 시민들에게는 강약약강(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말로 폭동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사실을 바로잡거나 분석기사를 바로 붙이거나 했어야 하는데, 일부 언론은 (발언 전달만으로) 멈추고 상당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단 말이죠. 이게 바로 스피커죠. <경향신문> 경우는 문제 있다고 바로 짚었거든요. <동아일보>도 '폭력시위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했어요. 최소한 문제 있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한 줄이라도 보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정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언론이 어떤 일의 갈피를 잡아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전달에 그칠수록 '호도'의 힘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일종의 악순환의 고리에서 더 커진 힘이 일으킨 사건이 곧 서부지법 폭동사태인데도, 혼돈의 소용돌이는 힘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지는 상황이다.

조선일보의 위험

2025년 1월 8일,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 마포대로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과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일부 언론의 헌재 흔들기는 그래서 더 위험하다. 헌재는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이 전 위원장은 우려가 컸다. 1월 30일자 <조선일보> '내가 제일 왼쪽(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정치 편향 논란에 빠진 헌재'란 제목의 기사를 그 예로 들었다.

"헌재 심판 과정은 이미 국회에서 결의해서 정해진 거잖아요. 법에 따라 탄핵이 마땅한지 판단하는 과정입니다. 재판관들의 왼쪽, 오른쪽 성향을 따질 상황이 아니란 겁니다. 헌법에 비춰서 윤 대통령 탄핵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면 된다고 알리는 게 언론의 역할입니다. 이걸 전하지 않고 논란처럼 쓰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행위가 될 수 있어요. 이런 사례들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 몇 매체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스스로 반성하고 자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재를 둘러싼 논란이 거셀수록 언론은 해당 논란의 갈피 즉, '구성원칙과 기능'을 제대로 짚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전 위원장이 강조한 반성과 자중은 '경도(기울어짐)'나 양비론이 어떤 목적이나 의도에 의한 것인지 구성원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 전 위원장은 <매일신문> 사례를 그 예로 들었다.

"<매일신문>이 요즘 지적을 많이 받고 있잖아요. 계엄 전부터 꾸준히 윤 대통령에 경도된 보도들이 이어졌습니다. (계엄 후에는) 윤 대통령을 지키려는 게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내부에서 참다 못한 기자들의 성명이 나왔습니다. 전해들은 바로는, 편집 방향을 결정하는 책임자들이 '극우 편향 보도에도 매출이 일어난다', '이런 보도를 통해 매일신문 유튜브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게 바로 시장이고 매출이다'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매일신문> 복도의 대자보

경찰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에 최고 수위 비상근무인 '갑호 비상'을 발령한 가운데 지난 3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경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서고 있다.이정민

어느새 복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전 위원장은 언론사 내부 공정보도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단순한 전달자 뿐 아니라 기록자로서 언론 노동자가 놓치지 말고 계속 품어야 할 문제의식이자 자세"를 혼자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기자나 PD 한 명이 맞서기 어렵습니다. 부장 뒤에는 국장, 국장 뒤에는 사주가 있고, 또 그 뒤에는 또 다른 배경이 서 있을 수 있어요. 혼자 견딜 게 아니라 공정보도위원회 등 사내 견제기구,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론을 펼치는 공정보도체계를 갖추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의 제기를 안에서만 할 게 아니라 밖으로도 알려야 합니다.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한편 너무 당연한 말이었지만, 마구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이기에 그의 말은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지난 2월 10일 <매일신문> 3층 편집국 복도와 대표이사실 복도에 붙어있었던 기자들의 성명서와 대자보 내용 또한 그랬다.

그들은 "일방적 주장만을 어떤 반론도 없이 따옴표에 넣어 전달한다"며 반성했고, "누군가 듣기 좋을 말만 늘어놓는 것은 현재 이익을 위해 장래 설 자리를 잃는 결정이 되고 말 것"이라며 자중을 요구했다. 혼돈의 고리 안에서 언론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갈피'가 무엇인지, 그들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신문을 도구로 삼을 게 아니라 좋은 신문을 만드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

12.7 탄핵박제 105인 연재 바로가기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