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 핵물질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에 총력을 집중해 비약적인 성과를 낼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여당인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도 '핵 잠재력' 확보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민의힘 유력 정치인들이 핵무장이나 그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전부터 했지만, 최근에는 한동훈 전 대표도 가세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과 정책 자문 그룹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고개를 들면서 민주당 대선 공약에 이 주장이 담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핵 잠재력은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 시설을 확보해 단기간 내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전자는 이란이, 후자는 일본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핵 잠재력이라는 표현이 핵무장을 시도한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떻게 표현하든 한국이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오고 있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잠재적인 핵무장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 ▲ 국내에서 점증하는 핵무장 여론을 관리한다는 측면 ▲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추진에 대비하자는 측면 ▲ 핵연료 주기를 완성해 원전 확대를 도모하자는 것 등이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는 희미해지고 핵무장론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핵 잠재력 확보 주장은 절충적인 대안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따져봐야 할 문제가 수두룩하다. 우선 역대 정부가 견지해 온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남과 북이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이 이들 시설은 물론이고 핵무기까지 개발·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이 선언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10년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
문제는 한미관계에 있다. 한국이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를 하려면 한미원자력협정의 개정이 필수적이다. 또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이들 시설 보유 금지 조항이 담긴 데는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하면, 미국은 한미가 견지해 온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고 나올 공산이 크다.
미국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동의해도 핵 잠재력 확보는 쉽지 않다. 우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핵 잠재력 확보의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재처리이다. 약 1만 8000톤에 달하는 사용후 연료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를 재처리하면 빠른 시간 내에 다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의 사례를 보면 비용부터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로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은 건설비만도 30조 원이고, 완공 후 가동 시 40년간 운영비로 100조 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초반 재처리 재개를 저울질했던 미국도 약 28조 원의 건설비와 연간 운영비로 수조 원이 들어간다는 비용 추산이 나오자 재처리 재개 방침을 접었다.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갖추고 운영하는 데에도 막대한 비용과 전력이 들어간다.
설사 한국이 이들 시설을 갖추더라도 단기간 내 여러 개의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1만 기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대규모 농축 시설에서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100kg(핵무기 4〜5개 분량)을 생산하는 데만도 5년 안팎이 걸린다. 이에 더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 걸리는 시간, 자체적으로 원심분리기를 개발·생산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건설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10년 이상은 족히 걸린다고 봐야 한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졸저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 참조).
경제적·외교안보적으로 현명한 대안 아냐

▲울산시 울주군 새울원자력본부 신고리 4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 보관소 모습.
연합뉴스
한국이 보유한 사용후 핵연료에 들어 있는 플루토늄의 성분은 239의 비율이 80% 이하, 240의 비율이 18% 이상이어서 무기로서의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무기급 플루토늄은 Pu-239가 90% 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플루토늄을 생산해도 핵무기 제조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핵실험이 필수적인데, 이는 더더욱 큰 정치적·외교적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핵 개발에 있어서 잠재력은 '돌파 시간'과 연관이 있다. 돌파 시간이란 어떤 나라가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결심할 때부터 실제로 핵무기 제조에 성공할 때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이 돌파를 작심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협력기구(IAEA), 그리고 한미원자력협정과 핵공급그룹(NSG)에서 탈퇴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제재와 금수조치를 수반하는 '고통의 시간'을 감내야 한다는 뜻이다. 돌파 시간이 짧을수록 고통을 줄일 수 있지만, 상기한 것처럼 한국의 돌파 시간은 매우 길다.
결론적으로 핵 잠재력 확보는 경제적으로나 외교안보적으로 현명한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이미 한반도에선 미국 핵과 북핵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한국의 비핵 군사력도 세계 5위 수준에 올라섰을 만큼,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대북 억제 결핍감에서 벗어나 단기적으로는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군비 통제와 군축을, 장기적으로는 비핵무기지대(비핵지대) 창설을 대안으로 삼는 것이 현명하다.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 -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한민국의 선택은?
정욱식 (지은이), 갈마바람(202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