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형식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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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지연이 과연 대통령의 고유 권한에 해당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연일 뜨거운 이슈다. 헌법 체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임에도 쟁점이 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그와 관련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던 만큼,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국회에서 선출한 인사의 임명을 대통령이 미루거나 거부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상식적인 사안이었기에, 법이 그 영역까지 세세히 규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본적 상식의 보편성마저 무너지면서, 더욱 세밀한 법적 해석이 요구되는 시대가 됐다. 기본적 상식마저 법의 처분에 맡겨야 한다면, 그 사회는 더 이상 공유된 질서와 신뢰 위에 존속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 지경에 이르렀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법이 모든 질서를 강제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법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과 합의의 기반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원칙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따져봐야 하는가? 대통령의 행위가 어떤 권한에 의거하며, 어떤 의무를 수반하는지, 그리고 입법 권력과 사법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가지는지, 이 모든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볼 수밖에 없게 됐다.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는 어떻게 구분되나
우선,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부터 구분해야 한다.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고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동시에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특히 임명권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임명권자로서 가지는 재량과 헌법적 책무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의 행위가 단순한 권한 행사가 아니라 헌법상의 의무 이행인지조차 불분명해진다.
헌법재판관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 행위는 대상에 따라 세 경우로 나뉜다. ▲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인사를 임명하는 경우 ▲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사를 임명하는 경우 ▲ 국회에서 선출한 인사를 임명하는 경우다.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세 명의 재판관은 대통령의 인사 권한이 직접적으로 발휘되는 영역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조 1항에 따라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인사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임명할 수 있으며, 그의 권한에 대해 법적 논쟁의 여기가 없다.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세 명의 재판관은 대통령의 법적 의무에 가깝다. 헌법재판소법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인사를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이는 대통령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절차로 해석된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지명'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대통령이 형식적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논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지명을 거부한 사례는 없으며, 다수의 헌법학자는 이를 대통령의 임명 의무로 본다.
마지막으로, 국회에서 '선출'한 세 명의 재판관은 대통령의 법적 의무로 분류된다. 헌법 제111조 제2항에 따라 국회가 선출한 인사는 대통령이 반드시 임명해야 하며, 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의해 선출된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임명 과정에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이는 단순한 절차적 행위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에 대한 법적 논쟁의 여지도 없으며,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가능성은 헌법상 배제되어 있다.
임명 지연은 권한 행사가 아닌 의무 불이행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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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권은 이처럼 그 대상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인사는 명백한 권한 행사에 해당하지만, 대법원장 지명 인사와 국회 선출 인사는 대통령의 의무적 행위에 가깝다.
특히 국회에서 선출한 인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통령의 개입이 불가능하며, 대법원장 지명 인사에 대한 거부권 역시 실질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이렇듯 명백한 헌법적 의무 사항임에도 대통령이 이를 의회 권력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을 경우, 헌법은 이를 차단하기 위한 사법적 개입 절차까지 마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국회에서 선출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행위가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며, 헌법 제111조 2항에 따라 이는 단순한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헌법이 부여한 '기속적 의무'라면서 즉각적인 임명을 요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단계까지 왔음에도 현 대통령권한대행은 재판관 임명을 즉각 실행하지 않고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자신의 헌법적 의무를 고유 권한과 혼동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국정 운영의 총체적 난맥은 치유될 수가 없다.
두 번째 문제 역시 대통령(권한대행)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혼동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대부분의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회의 결정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는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 수단으로 마련된 제도다.
그러나 현 정권의 대통령과 그의 뒤를 이은 권한대행들은 자신들의 고유 권한인 거부권을, 반드시 이행해야 할 임명을 지연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권한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반복해서 범하고 있다.
거부권과 임명 지연, 무엇이 다른가
임명 지연과 대통령의 거부권은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입법부가 내린 결정을 다시 심사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이며, 행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반면, 대통령이 국회가 선출한 인사의 임명을 보류하거나 지연하는 것은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로, 이는 권한 행사가 아니라 명백한 의무 불이행에 해당한다. 이는 곧,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기능을 무력화하는 행위다.
대통령의 거부권과 임명 지연은 법적 성격에서도 본질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행정부가 재검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장치로, 입법부와 행정부가 법률 제정 과정에 함께 관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두 권력기관이 상호 견제하며 조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거부권의 본래 취지다.
반면,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이 법률을 심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헌법이 규정한 인사 절차를 수행하는 의무적 행위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회가 선출한 인사의 임명을 지연하거나 거부할 경우, 이는 입법부의 인사권을 무력화하고 행정부가 이를 독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요컨대, 거부권이 입법부와 행정부의 균형을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면, 임명 지연은 오히려 행정부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수단이 된다. 거부권이 삼권분립 원칙을 보완한다면, 임명 지연은 그 원칙을 훼손한다.
헌정 질서의 시험대에 선 한국 사회

▲2월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미임명 권한쟁의심판 사건' 선고가 열리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은 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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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 행위는 단순한 재량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헌법이 부여한 명백한 의무이며, 이를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근본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다.
대통령제에서도 특정한 임명 행위는 형식적 승인에 불과하며, 이는 내각제에서 총리를 임명하는 국가원수의 역할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국회에서 선출한 헌법재판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재량권이 아닌 법적 의무이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입법부의 인사권을 무력화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과거에는 논쟁의 여지조차 없었던 문제가 이제는 법적 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통령이 임명 지연을 권한 행사로 오인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헌법 질서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는지를 보여준다. 법이 기본적 상식을 규율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는 곧 법 자체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의미한다.
법이란 단순한 강제의 수단이 아니다. 법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공동체일 수 없다. 헌법이 강제력을 발휘하기 이전에, 법은 사회적 신뢰와 합의를 바탕으로 작동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과 의무를 혼동하는 순간, 법은 권력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된다. 대통령의 무능, 무지, 무도가 얼마나 빠르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지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1987년 군부독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그랬듯이, 이제 우리는 한계에 도달한 87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근본적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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