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 18일 자 동아일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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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커피 역사에서도 1997년은 새 시대의 출발점이었다. 한 신문의 표현대로 '원두커피 르네상스'를 맞았다(동아일보, 10월 18일 자). 1920~30년대에 유행했다가 사라진 원두커피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징후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해에 보도된 신문 기사에 '커피가 건강에 좋다'는 소식이 유난히 많았다. <경향신문>은 1월 26일 자에서 "술병 난 간엔 커피가 특효약"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일본 규슈대학 의학부 후루노교수팀이 발표한 논문에서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알코올성 간 장애의 지표인 감마 GTP가 감소한다"라는 주장을 인용한 기사였다.
이 신문은 3월 6일 자에서 편두통 환자는 카페인을 매일 일정량 섭취하라고 권하였다. 기사 내용은 제목과 조금 달랐다. 카페인을 끊어서 생긴 편두통에서 벗어나려면 카페인을 섭취하라는 제안이었다. 11월 15일 자에서는 커피가 스트레스 해소, 고혈압과 저혈압 조절 작용을 하는 등 건강에 이롭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에 뒤질세라 <동아일보>는 2월 20일 자 기사에서 미국의 암연구소가 발표한 "커피에 암 예방 성분"인 클로로젠산이 들어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였다. 하루에 3~4잔 정도를 마시면 심장병, 암, 성기능장애 등의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5잔 이상 과도하게 마시는 경우 방광암, 췌장암,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경고도 함께 전했다.
커피가 건강에 이롭다는 보도는 이어졌다. <매일경제>는 4월 17일 자 '갓 끓인 커피 항암효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갓 끓여낸 커피의 경우 항암제로 알려진 산화방지제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는 미국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대학의 시바모토 다카유키교수의 주장을 소개했다. 커피 한잔에 들어 있는 산화방지제는 오렌지 3개에 함유된 양과 같다는 구체적 사실도 적시했다.
커피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소식을 타고 커피를 집에서 맛있게 끓여 마시는 비법을 소개하는 기사도 유난히 많이 등장하였다. <경향신문>은 1월 5일 자 경제면 전체를 원두커피의 종류와 조리법 소개로 채웠다. 첫 문장 "인스턴트커피 대신 원두커피를 즐기는 가정이 많다"가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당시 웬만한 집이면 커피메이커가 생활필수품처럼 여겨졌고 백화점마다 커피 원두 전문 매장을 갖추었다. 이 신문은 8월 28일 자에도 '가을에 쓰는 커피이야기'로 한 면을 채웠다. 키스보다 감미로운 '맛과 향'을 지닌 커피의 모든 것을 다뤘다.
가을이 깊어져 가던 10월 18일 <동아일보>는 '홈&쇼핑' 코너 두 면을 커피 이야기로 채웠다. 주제는 역시 원두커피였다. 직접 볶아 금방 갈아낸 커피를 쓰는 '스몰로스트' 방식의 커피점들이 '원두커피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는 소식을 감미롭게 전하였다. "향은 가을을 적시고, 맛은 가슴을 데운다"는 기사 제목을 보고 커피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커피뿐 아니라 커피를 넣어 만드는 새로운 요리도 기획하였다. 커피를 넣은 바나나튀김, 커피를 섞은 떡볶이, 그리고 커피를 넣어 만든 덮밥 커피하이스가 사진과 함께 독자들을 유혹하였다. 튀르키예식 커피 끓이는 도구인 '이브릭'부터 '에스프레소 포트'라고 소개한 모카포트까지 다양한 커피 기구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원두커피 정보와 커피 상식에 이어 커피계의 유명인과 새로 생긴 커피전문점 소개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커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는 명칭조차 생소한 동원식품 '커피관능검사원' 최상인과장, 커피 볶는 기계 국산화에 성공한 대구 커피명가의 안명규대표, ㈜미원의 커피 코디네이터 김민성씨 등이 등장하였다. 당시 언론은 서울 주변에 새로 문을 연 전망 좋은 카페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나라 카페가 주부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는 데 일조하였다.
특히 전망 좋은 곳에 문을 연 연예인 카페의 인기가 대단했다. 서울 근교 양평과 남양주 주변에 문을 연 개그맨 최양락의 '꽃피는 산골', 배우 김영란의 '베니샤프', 가수 임창제의 '어니언스', 이치헌의 '베니스 가든' 등이 대표적이다. 신도시 분당 주변의 '로그하우스' '쟈스민' '후니쿨라' 등도 언론 소개를 타고 주부들로 넘쳤다. 서울 시내 대학로에는 난다랑의 후신 '밀다원', 압구정동의 '라팔라디오', 청담동의 '하루에', 행주대교 부근 한강변의 '카페 J&H' 등이 신문에 소개됨으로써 커피마니아들을 사로잡았다.
1997년에 들린 커피 소식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스타벅스'의 상륙 소식이었다. 10월 3일 모든 일간 신문이 신세계백화점의 자회사 '에스코코리아'가 미국의 커피체인점 '스타벅스' 국내 1호점을 다음 해 상반기에 서울 강남 지역에 열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스타벅스는 미국에만 1300개의 체인점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일본과 싱가포르에도 진출한 상태였다. 신세계는 1999년까지 10개 이상의 점포를 낼 계획도 공개했다.
커피값을 아끼던 우리 국민의 선택

▲1998년 1월 12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캉드쉬 IMF총재와 나이스 IMF협상대표단장(왼쪽), 박태준 자민련총재 등과 만나 환담을 나눈뒤 식당으로 접견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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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1997년은 이해에 미국 잡지 라이프(LIFE)가 선정한 세계 100대 사건 중 78번째인 커피가 비로소 우리나라에서 르네상스를 맞은 해였다. 원두커피의 인기, 주부들의 카페를 향한 '짧은 여행'의 유행, 커피메이커의 생활필수품 등극 등이 나타난 해였다. 그렇다면 커피 소비는 증가하였을까?
커피 소비는 오히려 감소하였다. 1995년에 시작된 커피 소비 감소가 1996년에 이어 1997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거품 경제는 일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보통 서민들은 자고 나면 오르는 커피 가격 탓에 소비를 줄이고 있었다. 새로 등장한 신용카드로 편하게 커피를 구입하고 즐기는 것은 일부 계층과 대도시 소비 주도층의 이야기였다.
이해에는 유난히 커피 재룟값 상승으로 국내 커피 소비자 가격 인상이 잦았다. 커피 원두 가격이 연초부터 폭등하기 시작하여 연말까지 이어졌고, 이를 반영하여 국내 커피 소비자 가격 인상이 세 차례나 단행되었다. 대통령과 여당은 몰랐거나 모른 척했지만, 다수 국민은 알고 있었다. 커피 소비마저 줄여야 하는 힘든 시기라는 것을. 스타벅스는 국내 진출을 잠시 접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스타벅스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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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계절 10월과 함께 환율 폭등, 물가 들썩, 물가 비상, 외환보유고 바닥 등의 우울한 소식이 쏟아졌다. 그리고 11월 21일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12월 3일 IMF는 우리나라에 구호기금을 제공할 것,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 주권을 IMF가 갖게 되었음을 발표하였다.
불과 한 달 전에도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 위기를 이야기하는 야당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허위사실 유포'라고 질타하며 엄정 대처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렇다고 계엄령이나 계몽령을 선포하지는 않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대통령, 그의 호언장담에 부화뇌동하던 정치인과 관료들이 불러온 외환위기는 모두에게 고통이고 수치였다.
이런 고통과 수치를 극복한 주체는 국민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은 국민이었다. 커피값을 아끼던 우리 국민은 12월 18일 대통령 선거에서 20년간 빨갱이 소리를 듣던 야당 후보 김대중을 선택했다. 여당과 언론이 쏟아내던 색깔 논쟁에 끌려가지 않고, 실정에 대해 책임을 준엄하게 물은 국민이었다. 국민의 올바른 선택으로 4년 만에 우리는 경제 주권을 되찾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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