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6 14:49최종 업데이트 25.03.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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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유성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탄핵심판 전 정국 주도권을 확실히 잡은 분위기입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1]에 따르면 정권교체론이 55.1%로 지난주보다 6.1%p 상승했고, 여권 대선 후보와 가상 양자대결에서도 이 대표는 처음으로 지지율 50%를 넘겼습니다. 소위 '박스권'을 탈출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훈님이 지난 편지에서 꺼낸, 이 대표의 "중도 보수" 발언은 중요한 기점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중도 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한다"라는 그의 발언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이재명이라는 인물로 이목이 쏠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우클릭 행보도 정치권에선 큰 논란이었지만, 대권 주자로서의 강력한 존재감이 드러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기 대선'으로 판이 전환됐고, 여당 주자들이 대통령 지지세력 때문에 우물쭈물한 사이에 이 대표만 치고 나가는 형국입니다.


2012년 18대 대선 전,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한 이준석 클라세 스튜디오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점도 많았지만, 이 말 하나는 흥미로웠습니다. "선거를 전쟁에 비유해 보자면, 전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우리 땅이 아닌 곳을 전장으로 삼아라'예요. 전쟁에서 이기면 그 땅을 얻고 아니면 원상 복귀 하는 거죠. 비대위 핵심 전략이었어요."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정치공학적인,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대표 또한 '우리 땅'이 아닌 곳을 전장으로 삼고자 합니다. 상속세 완화, 일부 직종의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추진, 기업 감세, 기본사회 정책 보류 등. 노골적으로 그는 오른쪽을 향합니다.

물론 왼쪽도 '민주당의 땅'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문제는 22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한 석도 못 얻을 만큼 진보정당의 힘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진보 진영에서 이 대표를 위협하거나 대적할 만한 대선 주자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지지층이 '왼쪽'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없다고 믿으니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 이 대표에겐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겁니다.

우클릭이라는 '책임 회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류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한국경제인협회 민생경제간담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민주당 대표와 한경협 회장의 공식적인 만남은 2015년 9월 이후 10년 만에 성사됐다.남소연

그런데 이 대표의 우클릭은 '쉬운 길'이기도 합니다. 이 대표가 기존에 추구했던 기본사회 공약의 3대 축 '기본소득·기본주거·기본금융' 같은 경우는 서민과 약자를 위해서 필요하지만, 증세와 분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진보적 정책을 꺼내든 순간 한쪽에서는 시민사회 등의 압박에, 또 다른 한쪽에선 보수세력의 반발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중도 보수'라는 타이틀은 그런 정치적 과제에서 해방시켜줍니다.

선거 국면에서 '중도 보수'로 색깔을 정했다는 것은, 진보적 의제에 대한 책임 회피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이전에도 성평등 정책·장애인 이동권 보장·기후위기 대응·성소수자 차별 금지 등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적어도 개별 의원이나 위원회 차원에서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집권을 하고, 당이 보수화 되면 당내 진보적인 움직임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정훈님, '중도 보수'가 된 민주당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민주당 집권 시기에 만든 주52시간 근무제를 스스로 깨트리고, 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배척한다면, 그건 '내란을 옹호하지 않는' 국민의힘과 흡사해집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나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입장과 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대표는 "국민의힘이 극우 본색을 드러내며 형식적 보수 역할조차 포기한 현 상황에선 민주당의 중도 보수 역할이 더 중요하다"라며 "헌정 회복, 법치 수호, 성장 회복 등 국민의힘이 버리고 떠난 보수의 책임을 민주당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언급한 '헌정 회복'과 같은 가치들은 민주당이 '중도 보수' 역할을 해야만 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보적 의제들과 양립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국민의힘이 하던 일을 민주당이 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윤석열을 넘어선 세상'을 이야기할 때, 이 대표는 '윤석열에 갇힌 세상'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국민의힘과 뜻을 함께한 민주당

2022년 2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15주기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들을 추모하며 반인권적인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유성호

이미 조짐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외국인을 영장 없이 최장 20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재석 의원 274명 중 찬성 268명으로 통과됐습니다. 민주당에서는 박주민 의원만이 기권 표를 던졌습니다.

정훈님도 이미 아시겠지만, 이번 개정안은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을 외국인보호소에 무기한 수용할 수 있도록 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출입국관리법 63조 1항에 대해 보완입법을 한 것이었습니다. 헌재는 당시 해당 조항이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며, 중립적 기관에 의한 심사 절차가 마련되어있지 않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런데 개정안의 '9개월 원칙, 최장 20개월'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2개월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깁니다. 또한 보호심사를 '중립적 기관'이 아니라 법무부 산하 외국인보호위원회가 통제한다는 것도 헌재 결정 취지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임금체불 피해자, 출국 비용 부족, 난민 심사 및 소송 중이거나 난민 심사 신청을 했는데 불허된 경우, 기타 소송 중이라서 강제퇴거 명령을 받아도 곧바로 출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인보호소에 갑니다. 그러나 '보호'라는 말이 무색하게, 2019년엔 보호소에 수용된 외국인에 대한 새우꺾기 고문이 있었을 정도로 외국인보호소는 인권사각지대입니다. 또한 유엔아동인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이주 아동의 구금을 금지할 것"을 권고했음에도 여전히 아동들이 보호소에 갇히고 있습니다.

민주당에는 구금 기간 상한을 100일로 한정하고, 법원이 구금 심사를 하도록 한 박주민 의원안('대안폐기반영' 되어서 일부 내용만 개정안에 반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내에서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민사회가 줄곧 문제를 제기한 인권 문제임에도, 보호기한의 상한을 36개월(법무부안)에서 20개월로 줄이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을 보고 만족한 셈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징후이기도 합니다. '정파적'이지 않은 의제에선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진보세력이 견제를 못 하고, 국민의힘이 비상식적 행보를 보이는 사이, 민주당의 우경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김대중 정권 이후 줄곧 민주당이 추구하던 것은 '개혁'이었습니다. 기층의 개혁 에너지를 끌고 와서 비전을 보여주고, 이를 정책이나 법안으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변화를 체감케하면서 민주당의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의 <그런 세대는 없다>에 따르면 2010년 이후부터는 노년층을 제외하면 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진보적 정치 성향을 보이는(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을 찍는) '계급성'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는 서민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를 대변했던 민주당의 행보가 효과를 거뒀음을 보여줍니다.

'개혁' 대신 이 대표가 최근 내건 말은 '먹사니즘'과 '흑묘백묘론'입니다. 이런 실용주의적인 슬로건은 비전이 명확할 때 조금 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층의 열망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 보이고, 자신의 주요 지지층을 배반하는 행보 속에서, 무엇을 위해 실용주의적 관점을 택하겠다는 것인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우클릭'의 치명적인 한계... 8년 후 윤석열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지난 3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2025.3.3 [국민의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연합뉴스

한편 이 대표의 공세에 맞서 국민의힘도 보수 대결집에 한창입니다. 지난 4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고, 지난 3일 국민의힘 지도부는 대구 달성군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가 박 전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특히 '박근혜 사저'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높은 층고에 샹들리에가 걸려있는 멋진 집이었습니다.

사저는 2022년 1월에 마련되었으며, 25억 원에 달하는 주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 나섰다고 합니다. 유 의원은 2022년 3월 매일신문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서 사저 매입과정을 설명하며 "일정 부분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도움을 준 게 맞다. 그 돈은 차용한 것으로 차차 갚을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얼마 후면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선고를 받은 지 8년이 됩니다. 그가 탄핵을 당하고 징역 20년을 받았을 때, 우리 모두는 정의가 실현되는구나 여겼습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극우 세력의 도움을 받아 멋진 저택에 살면서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윤석열도?'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앞서 말한 우클릭은 '쉬운 길'이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자본의 편에 서서 '감세'와 '성장'을 외치면 경제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으며, 나아가 혐오나 인권의 문제를 방기하는 것은 사회의 극우화·양극화를 부추깁니다. 윤석열 정권이 그 행보를 걸어왔고, 그 결과 우리는 서부지법 폭동 같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당이 진보의 가치를 포기한 '중도 보수' 정부를 만들고, 응원봉 혁명 속에서 퍼져나온 변화의 열망을 무시하고, 더 이상 소수자·약자의 곁에서 함께 싸우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요. 어쩌면 8년 후엔 윤석열·김건희가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고, 극우세력이 24대 국회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는 저의 기우일 뿐일까요? 정훈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1월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중 물을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덧붙이는 글 [1]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6∼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천506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번 조사는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6.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자세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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