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산양
녹색연합
한 해 한 켤레씩 등산화를 갈아 신으며 가장 먼저 현장을 찾고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킨다는 녹색연합 활동가가 있다. 그렇게 백두대간을 누비고, 산양의 똥과 흔적을 찾는 야생동물 담당 활동가라도 산양을 직접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녹색연합 저작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버젓한 산양 사진 한 장 갖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멸종위기종이니까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산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험준한 산속이 아니라, 도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는 펜스를 따라 달리는 산양을 마음껏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근엄하고 지긋한 산양의 정면과 옆모습을 다각도로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반가워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산양의 실물 영접이 쉬워졌다는 것은 산양의 서식환경이 위기에 놓였다는 적신호였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산양의 수난과 죽음이 뒤를 이었다.
울진, 산양의 전 세계 집단 서식의 남방한계선
경북 울진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최남단 집단 서식지이다. 긴꼬리 산양(Long-tailed goral)은 한반도, 중국 북동과 러시아 극동 아무르 지역에 서식해 아무르 산양이라고도 불린다. IUCN(국제자연보호연맹) Red List 중 취약 등급으로 분류됐다. 산양의 집단 서식지 울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게 지정된 생태경관보전지역을 보유하고 있고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생물종 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곳이다.
그러나 2022년 역대 최장 시간 산불이 났다. 최대 면적의 피해를 입힌 울진과 삼척의 산불은 산양의 서식지를 교란시켰다. 2022년 봄 두 차례의 대형 산불은 산림 약 1만 6000헥타르를 삼켰는데, 이 가운데 약 4353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이 산양의 서식지였다. 축구장 6200개 크기다.
산양에게 봄은 겨울 동안 부족해진 영양을 보충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산불로 초목이 타면서 먹이 찾기가 어려워졌다. 먹이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으나, 울진의 36번 신규 도로와 36번 구 도로, 그리고 2021년에 설치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African Swine Fever) 차단 울타리에 가로막혔다. 여기에 폭설까지 내려 산양의 이동에 제약을 더했고, 초봄까지 먹이 부족으로 인해 아사 및 탈진으로 폐사하는 개체들이 늘어났다. 2024년 울진과 삼척에서 폐사한 산양은 74개체나 되었다.

▲2024년 3월 13일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발견된 어린 산양 폐사체
녹색연합
단절되고 파편화된 산양의 서식지
산양의 주요 서식지는 신규로 개설된 36번 국도와 복원되지 않은 구 36번 도로로 인해 이중의 단절을 겪고 있다. 울진읍과 봉화군 사이에 놓인 36번 국도의 직선화가 이루어지면서 기존 36번 국도(금강송면-근남면)를 생태복원하기로 협의한 바 있다.
그러나 복원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북쪽으로 금강송면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남쪽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두 서식지 간 자유로운 이동에 제약이 생겨버렸다. 두 보호지역은 산양의 주요 서식지로 기존 36번 구 도로의 복원으로 하나로 연결되어야 했지만, 연결은커녕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철제 울타리까지 추가됐다.

▲2024년 3월 구 36번 국도를 따라 설치된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울타리 안에서 촬영된 산양
녹색연합
녹색연합은 2024년 3월부터 1년간 구 36번 국도 일대에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하여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 인근의 산양 서식을 관찰했다. 6대의 무인센터카메라에서 20~30차례 산양이 촬영되었다. 산양 외에 고라니, 너구리, 오소리와 같은 야생동물들의 모습도 촬영되었는데, 고라니와 너구리의 경우 수차례 ASF 차단 울타리를 따라 오가거나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다른 개체와 소통하는 모습도 찍혔다.
멧돼지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ASF 차단 울타리는 다른 야생동물의 이동도 가로막으며 서식지를 단절하고 있었다. 이 울타리가 놓인 곳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보호되는 곳이지만 이 울타리로 인해 산양을 비롯한 멸종위기종과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어떻게 단절되고 파편화되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펜스와 안내판
녹색연합
▲개방된 채 오랜시간 방치된 흔적이 보이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펜스 출입문
녹색연합
울타리치기 방식 방역, 이대로 괜찮나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초기에 설치된 차단 울타리가 멧돼지의 이동을 가로막는 효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이미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지금, 울타리는 더 이상 방역 수단이 아니다. 녹색연합은 2024년 12월, 경상북도 울진군 기존 36번 국도를 따라 놓인 25km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울타리를 조사했다.
조사 구간 중 울타리가 끊기거나 훼손되거나 문이 열려있는 곳 18곳을 발견했다. 마을 입구와 구 36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 하천이 위치한 곳은 모두 뚫려있었다. 울타리 유지 관리 예산을 매년 수십억 원씩 쏟아붓고 있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야생동물과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를 단절하는 울타리치기 방식의 방역은 접을 때가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식지 파편화로 서식 환경을 위협하는 실효 잃은 방역 정책의 존속이 아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찾아 개선하고, 긴꼬리 산양의 최남단 집단서식지 울진과 삼척지역의 생물다양성을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는지 전략과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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