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 1사단 11연대의 제1 로켓포대가 야간 포격을 하고 있다(1953. 4. 15.).
NARA/박도
포성이 멎고 판문점에서는 포로교환 준비에 부산했다. 포로 송환은 8월 5일 시작해 9월 6일 완료했다. 유엔군 측에서 7만5823명을 송환했다. 중국인이 5640명, 한국인이 7만183명이었다. 중국측은 포로 1만2733명을 송환했다. 미국인 3597명, 한국인 7862명 그 외 다른 국적자들도 일부 있었다.
6월 18일의 반공포로 석방에서 탈출하지 않았던 한국인 포로를 포함한 송환거부 포로는 2만2604명이 있었다. 이들은 9월 23일 비무장지대의 중립국 송환위원회에 인도됐다. 중국측에서 인도한 송환거부 포로는 359명으로 대부분 남한 출신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양측이 자군 포로를 대상으로 송환을 설득하는 절차는 10월 15일 시작됐다.
그러나 반공포로들의 조직적 저항에 설득 절차는 원활치 진행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12월 23일 90일이란 시한이 만료됐다. 137명은 마음을 바꿔 송환에 응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중국인 포로는 90명, 한국인 포로는 47명이 그렇게 추가로 송환됐다.
나머지 송환거부 포로들은 다시 정치회담에 넘겨 30일 이내애 처리하기로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정치회담 자체가 전망이 불투명했다. 중립국 송환위원회는 이들을 원래의 수용 지휘부로 돌려보냈다. 미국은 유엔군 포로수용소로 돌아온 이들을 석방해 버렸다. 중국측은 이를 비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국인 송환거부 포로들은 본국이 아닌 타이완으로 송환했다. 송환이 아닌 송환이었다. 1954년 12월 1일 중립국 송환위원회는 해산했다. 한국전쟁을 마무리하는 정전협정에서의 포로교환은 이렇게 끝났다.
이제 정전협정이 규정한 마지막 절차는 정치회담이었다. 1953년 10월 26일 예비회담을 시작했으나 12월 12일 무기휴회하고 말았다. 중국측은 소련과 인도를 중립국으로 참여시키는 원탁회의로 정치회담을 하자고 주장했고 미국은 양측의 대좌로 하자고 했다. 서로 합의될 수 없는 차이였다.
1954년 1월 25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개국 외상회의에서 제네바 정치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해 4월 27일부터 6월 15일까지 남한과 북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한 유엔군 파병 15개국과 중국 소련 등 19개국이 참석했다. 미국은 유엔 감시 하에 남북한 총선거로 한반도를 통일하자고 했다. 중국측은 남북한이 외부의 간섭 없는 독자적인 선거 또는 중립국이 감시하는 선거로 하자고 대립했다.
중국측은 집요하게 유엔을 공격했다. 유엔이 한국전쟁의 당사자이고 적군인데 어떻게 유엔 감시 하에 총선거를 치를 수 있냐는 주장이었다. 또한 유엔은 중국과 북한도 가입시키지 않는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비판했다. 미국은 유엔에 공격이 집중되자 회의를 종결시켰다. 회의의 결론은 없었다. 남한과 유엔군 참전국들이 한국 문제를 유엔총회에 넘긴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끝났다.
한국전쟁은 1953년 조인한 정전협정으로 전면전이라는 전투행위는 중지됐으나, 전쟁 후의 체제를 구축하는 강화조약이나 평화조약은 성립되지 않았다. 미소의 냉전체제가 한반도를 냉전의 전장으로 압도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그날 밤 10시 포성이 멈추기는 했지만 한국전쟁은 종결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2025년 3월까지 70년이 훌쩍 넘었건만 전쟁은 계속됐다. 서로 '저놈이 나쁜 놈'이고 '저놈 때문'이라는 격렬한 정치적 구호와 몸부림 속에 권력은 더욱 탄탄하기만 했다. 북한에서는 세습 3대의 신공이라고나 해야 할 정도니 더 이상 뭐라 말할 게 없다. 남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쟁 속에서 또는 전쟁을 핑계로 독재와 탄압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의 노고 속에 경제발전을 이뤘고,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희생을 감수하고 투쟁한 끝에 힘겹게 정말 힘겹게 민주화도 이뤘다. 민주화는 한때 불가역적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외피를 이리저리 바꿔 민주화를 수시로 흔들었다.
지금도 '저놈 나쁜 놈'이라는 저주와 '나쁜 놈은 죽여도 된다'는 한국전쟁의 공포와 망령이 남한 내부에서 내부를 겨냥하여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 2024년 12월의 계엄령 사태가 그것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은 그 외연을 달리하고 있을 뿐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적인 우경화와 극우의 득세 속에 '더 큰 전쟁'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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