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4 16:03최종 업데이트 25.03.0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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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 병원을 짓고 의료인을 배치하면 모두가 건강해질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술과 담배를 끊고 주 3회 이상 운동을 하며 건강한 식단을 하기만 하면 무병장수할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건강이 매우 사회적이고 또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 이에 더해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건강의 비밀, 건강사회구락부(Health Socialist Club)가 전해보겠습니다.[기자말]
건강은 몸에 대한 것일까? 아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건강을 단순히 신체적 질병과 허약함이 없는 상태 이상으로 여기며, 마음도 사회적으로도 잘 지내야 '건강'하다고 정의했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건강이 얼마나 사회적인지 입증하기 위해 애쓰고, 사람들이 의료로 다 채울 수 없는 사회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건강을 사회로 확장해 나간 끝에는 마음과 사회를 같이 생각해야 건강할 수 있다는 지식도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심리사회적 경로'라고 부른다.

2025년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그 '심리사회적 경로'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사업이다. 이름처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우울과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한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2025년 올해도 이 사업은 살아남았다. 사업을 둘러싼 각종 논란을 잠시 미뤄두고 나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국민의 마음건강을 돌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꽤나 고무적이다.

2024년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리플렛. 대상자, 지원서비스 등 사업 개요가 담겨있다.보건복지부

직무 스트레스 동상이몽

2010년 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사업이 도입된 바 있다. '근로자지원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 이 사업은 "근로자의 업무수행 및 개인 생활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등 업무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여 효율적 업무수행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상담‧심리서비스"로 소개하며 올해로 17년째에 접어들었다.

이런 정책을 왜 하게 됐을까? 여러 가지가 섞여 있겠지만 그중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고 불리는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목표도 있다. 대기업 노동자는 회사가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지원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프로그램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이 제도를 통해 300인 미만 중소기업과 소속 노동자들 마음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일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들에게 일터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어려움은 실존의 문제로 이어진다. 상사와의 갈등,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용계약, 임금 동결, 일상적인 젠더차별 등 일터에는 아프지 않을 이유가 더 적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 매일같이 아픈 몸과 괴로운 마음에 대해 애써 말하고, 같이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일종의 진보 과정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관리에 더 진심인 이들이 있다. 노동하는 사람을 고용한 회사의 경영진들 되시겠다. 다만 이들의 관심은 염불보다 잿밥에 있을지 모른다. 직원의 건강보다는 건강한 직원에,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조건보다는 스트레스 자체에 관심을 두고 직원이 겪는 대부분의 어려움을 스트레스의 문제로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직무 스트레스의 문제가 되면 직원에 대한 통제도 한결 쉬워진다. 노동생산성을 낮추는 스트레스를 조직의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회사는 직무 성과 관리의 일환으로 직무 스트레스를 조사하고, 관리 대상 직원을 선별해 심리상담을 지원하면 책임은 끝난다.

마음챙김이라는 허상

직원의 마음을 돌보는 지원은 직원뿐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생색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로 하여금 노동자의 신체적 피로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도록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노동조건을 마련하도록 정하고 있다(제5조 2항). 더욱이 직무스트레스가 건강 문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취하라는 규칙도 두고 있으니(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69조),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흉내도 낼 생각이 없는 고용주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스트레스 관리를 지원하는 회사면 충분할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훌륭하고 자비로운 고용주라고 평가해 주기엔, 이들의 전략은 노동자에게도, 사회에도 해롭다. 마음돌봄 안에서 모든 문제는 직무 스트레스가 되고, 노동자를 둘러싼 모든 관계와 구조적 문제는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문제를 개인의 마음 문제로 바꾸고, 진짜 원인인 노동자와 사업주의 관계를 지우는 데 성공한 결과, 회사의 잘못과 책임도 녹아 사라진다. 직무 스트레스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정부에도 회사에도 직무 스트레스는 개인이 마음을 잘 돌보아 스스로 '다스려야 할' 무엇일 뿐인 셈이다.

2019년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에 실린 '직무 스트레스 다스리는 10가지 습관'
1. 삶의 목표를 설정한다.
2.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는다.
3. 적절한 취미활동으로 긴장을 해소한다.
4.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둔다.
5. 숨을 천천히 내쉬며 안정을 찾는다.
6. 가볍게 몸을 움직인다.
7.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써본다.
8. 마음이 편안했던 때를 생생히 떠올려본다.
9. 스트레스 상황을 달리 해석해본다.
10. 긍정적인 자기대화를 한다.

마음을 다루는 방식도 유행을 타지만, 최근에는 그중에서도 '마음챙김(mindfulness)'이 각광받는 모양새다. 마음챙김은 불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현대심리학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활용하고 있다.

회사에서 마음챙김이 활용되는 방식이 노동자의 외부 환경을 제쳐놓고 마음속으로 침잠하게 하는 명상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하는 이들이 고통을 말하는 대신, 개인의 마음과 영혼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다. "모든 것이 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말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불안정한 조건은 허상이 된다. 그 결과 연대하는 노동자는 사라지고, 오로지 '자기-성장'한 개인만이 남았다.

마음챙김픽사베이

마음챙김에서 정치까지

건강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도 스트레스는 중요하다. 낮은 소득, 교육 수준 아니면 실업 등 개인이 경험하는 삶의 조건이 건강에 가 닿는 길에서 스트레스를 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마음챙김으로 굴러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리질리언스 또는 회복탄력성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열악한 조건의 개선보다는 주로 스스로 잘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해롭다. 직무 스트레스의 또 다른 버전인 감정노동, 소진(번아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콜레라와 결핵, 말라리아가 득세하던 중세 유럽, 어떤 공중보건 학자들은 이와 같은 질병 유행 상황의 원인을 '나쁜 공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나쁜 공기'를 일컫는 고대 그리스어가 미아스마(μίασμα : míasma)였다.

이 '미아스마' 이론은 '백신'으로 유명한 루이 파스퇴르와 현대 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스노우, 무엇보다 질병의 원인이 세균에 있다고 밝혀낸 로버트 코흐에 의해 반박당하며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인간의 고통을 줄인다는 목적 아래 과학이 한 걸음 더 나아간 결과다.

하지만 지금의 건강의 심리사회적 경로가 이해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쁜 공기'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된다 여겼던 중세 유럽 미아스마 이론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 스트레스와 리질리언스 개념이 본디 만들어진 이유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기에 더욱 그렇다. 불합리한 상황으로 인해 병든 이를 두고 개인의 나약함과 취약함을 지적하는 일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라고 유추하는 방식만큼이나 비합리적이다.

건강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말하는 데는 각종 문제의 해답이 '마음챙김을 잘하자'는 결론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는 설득이 내포되어 있다. 예측가능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작업장의 환경, 적절한 업무량과 너무 길지 않은 노동 시간, 정말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로운 휴게 시간과 휴가, 실업과 해고 불안 없는 고용계약, 충분한 노동 소득, 든든한 사회보장,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가 사회적으로 건강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우울한 국민들에게 정신과에 가는 돈을 보태주면 정신질환이 예방되고,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조기 발견되어 국민의 마음건강이 돌봐지고, 끝내는 우리 사회에 평화가 찾아올까. 충분히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팡인'이라 부르고 스스로를 '정병러'라 부르는 이 사회는 과연 질병과 같이 살아가는 삶이 허용된 저항과 해방의 공간일까. 아마 아닐 테다.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사회는 사람들이 언제라도 편안하게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이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ealth Socialist Club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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